#인구 22만 오산시보다 못한 제주도의 위원회 운영

제주특별자치도 산하 각종 위원회의 회의록 공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제주도의회에서 나왔다. 고현수 도의원은 지난 15일 열린 행정자치위원회 행정사무감사에서 도 산하 위원회 수가 300개가 훌쩍 넘지만 회의내용을 있는 그대로 공개하는 회의록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비판했다. 제주도정이 도민의 알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렇다. 서울특별시, 경기도, 강원도 등 회의록을 적극적으로 공개하며 주민들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있는 지자체들과 비교하면 제주도가 도민 알권리를 대하는 수준이 더욱 부각된다. 제주도의 회의록 공개 수준은 이 같은 광역자치단체들만이 아니라 인구수 20만 명이 조금 넘는 오산시보다도 못한 정도다.

(자료=오산시청 홈페이지)
경기도 오산시는 홈페이지에 각종 위원회에서 어떤 발언이 오갔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회의록을 공개하고 있다. 위원회에 참석한 위원들이 안건에 대해 어떤 고민과 판단을 하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귀한 자료다.(자료 출처=오산시청 홈페이지)

제주도는 지난해까지 위원회 명단조차 공개하지도 않았다. 위원회 운영이 어렵다는 핑계를 댔다. 다른 지역이 투명한 행정 운영을 위해 일찍이 위원회 명단을 공개했지만, 제주도정은 한참 늦어졌다. 지난해에 비로소 위원회 명단이 공개됐다. 그마저도 한눈에 알아보기 쉬운 상태가 아니며, 위원들의 소속을 제대로 밝히지 않는 경우도 있다. 명단을 공개하는 모양새는 간신히 취하고 있다. 지난해 4월 홍명환 도의원의 발의로 위원회 명단을 공개하도록 조례가 개정되자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위원회 명단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15일 행정사무감사에서 고현수 의원은 “위원회 회의 결과를 홈페이지에 공개한 실적을 요청했더니 다 공개되어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내용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면서 “회의록을 아예 탑재하지 않거나 회의 요약 내용조차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다고 말했다. 이어 고 의원은 “지난번에 회의록을 공개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자고 제안했고 기획조정실장은 검토하고 고민해보겠다고 하는데(그 후로 개선된 게 없다)”라고 지적했다. 허법률 기획조정실장의 답변이 가관이다. 그는 “점검해서 개선방안을 찾아보고 경기도 사례를 잘 참고하겠다”고 말했다. 그간 뭐했나?

#도의원 지적 무시하며 배짱부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고민하고 점검하고 개선방안을 찾아보고 다른 자치단체의 사례를 참고하는 과정이 이렇게 오래 걸릴 일이 아니다. 도의원의 지적에 제주도정이 느긋한 이유가 있다. 회의록 공개를 강제하는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제주특별자치도 각종 위원회 설치 및 운영 조례’를 보면 “위원장은 회의 개최일시, 장소, 출석위원, 심의안건, 발언내용 등을 기록한 회의록을 작성하여 보관하여야 한다.”고 적시했을 뿐이다.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것은 조례로 정해두지 않았다.

“회의록을 아예 탑재하지 않거나 회의 요약 내용조차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는 고현수 도의원의 지적은 옳다. 하지만 이는 이미 언론도, 시민사회도 지적해온 일이다. 이제 도의원이 할 수 있는 분명한 역할을 해야 한다. 회의록을 제대로 공개하도록 '제주도 각종 위원회 회의록 공개 조례'를 제정하거나 ‘제주특별자치도 각종 위원회 설치 및 운영 조례’를 개정해야 한다.

조례는 구체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기왕 제정 혹은 개정하기로 한다면 제주도정이 회피할 수 있는 이런저런 구멍이 있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각종 위원회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속기록 작성이 필요하다. 현재 제주도정은 회의록을 요약해서 홈페이지에 올리는 경우가 잦다. 위원회에서 오고 간 내용 중 누락되는 내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는 회의록에 대한 불신을 초래한다.

내용의 누락 없는 속기록을 작성해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 음성 녹음 파일이나 영상 파일을 보관하도록 해서 정보공개 청구 시 열람 및 청취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행정의 신뢰를 높이는 한 방법이다. 이런 조치는 위원회에 참여하는 위원들의 명예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위원들은 본의 아니게 불투명한 위원회에 참석하고 있다는 불명예를 뒤집어 쓰고 있다.

#서울시, 경기도, 강원도의 경우

서울시와 경기도, 강원도의 조례를 참고할 만하다. 경기도는 ‘경기도 위원회 회의 및 회의록 공개 조례’에서 “위원회 회의록은 다른 법령 또는 조례 등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회의내용을 속기로 작성하며 다음 각 호의 사항을 속기록으로 보존하여야 한다.”고 명시했다. 서울시는 ‘서울특별시 각종 위원회의 설치·운영에 관한 조례’를 통해 회의록과 함께 속기록 또는 녹음기록 중 어느 하나를 통하여 위원회 회의 내용을 기록하도록 하고 있다. 서울시는 위원회 운영 현황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도록 홈페이지를 구축했다. 그에 비하면 제주도 홈페이지는 한심한 지경이다.(관련 기사☞[포커스]제주도청 홈페이지 개편? 서울시 반만이라도 따라가야)

물론 회의록 공개 날짜는 빠를수록 좋다. 강원도의 경우 ‘강원도 각종 위원회 구성 및 운영 등에 관한 조례'를 통해 "위원장은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의 규정에 의한 비공개 사유가 없는 한 회의종료 후 10일 이내에 회의의 주요 내용과 결과 등을 도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해야 한다."고 공개 시한을 정했다.

다시 말하지만 서울시와 경기도 뿐 아니라, 인구수 22만 명인 오산시도 하는 일이다. 오산시 수준으로 행정 운영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역량을 갖추지 못하겠다고 볼멘소리를 낸다면 제주도정은 특별자치도 지위를 누릴 자격이 없다. 제주도의회도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타지역의 위원회 회의록 관련 조례들을 가져오기만 하면 된다. Ctrl+C, Ctrl+V만으로 도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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