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넘은 서점 내 '궁금한 서재'.(사진=요행)
주제 넘은 서점 내 '궁금한 서재'. (사진=요행)

방 한 칸 정도의 이 책방에는 약 300권의 책이 진열돼 있다. 눈썰미 좋은 분들은 바로 알아차리시리라. 그림책의 비율이 상당하는 것을. 김문규 책방지기가 책방을 운영하면서 가장 바라는 점은 ‘책방에 들어왔을 때와 나갈 때 그 사람의 마음이 달라지는 것’이다. 물론,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마음으로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눈길을 붙드는 책이 있어야 한다. 이곳의 책방지기는 그림책이 그 역할에 탁월하다고 강조했다. 손님들이 책방에 머무는 짧은 시간에 메시지를 가장 분명하게 그리고 부담없이 전달해 줄 수 있는 것이 그림책이라는 것. 이 칼럼에서도 소개한 적이 있는 그림책 전문책방 ‘제주사슴책방’에서 선보이는 책들과는 또 다른 매력의 그림책들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큐레이션 못지않게 이곳의 책방지기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매대에 진열할 책 목록과 위치, 배열 순서다. 이곳을 찾는 분들이 단 한 권이라도 가슴에 품고 갈 수 있는 책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지금은 잠시 쉬고 있지만 한동안은 책방 도슨트 역할을 자처하기도 했다. 책방에 오신 분들에게 이곳의 내력과 큐레이션 기준, 진행 중인 큐레이션 주제와 선정 책에 대한 것들을 약 30분에 걸쳐 설명하곤 했다. 호응이 좋았다. 일부러 사람들이 해설을 듣기 위해 찾을 정도였다. 하지만 시간을 꽤 많이 차지하는 일이라서 지금은 좀 쉬고 있다고 한다. 이후에 재개된다는 소식이 들리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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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넘은 서점 내 '궁금한 서재'. 책장에 김문규 책방지기 가족의 책들이 가득하다. (사진=요행)

궁금한 서재 

책방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출입문 외에 또 하나의 문이 있다. 그 문을 통해 들어가 보니 책방보다 규모가 큰 서재였다. 그곳도 책방의 일부인가 했는데 책방지기 가족들의 공유 서가라고 한다. 가족들이 소유한 책들이 정리돼 있는데 책방의 책보다 훨씬 많다. 1층만으로는 정리할 공간이 모자라 2층에도 책장이 마련돼 있고, 책들도 가득하다. 

이 가족 공유 서가는 ‘궁금한 서재’라는 이름으로 예약제로 개방되고 있다. 대여는 할 수 없지만 정해진 날짜와 시간에 이곳에서 마련된 책을 읽을 수 있다. 별도의 비용이 들지 않고 책을 구입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책이 읽고 싶은데 방해받지 않을 공간이 필요한 이들에게 또, 차를 타고 나가야만 도서관을 갈 수 있는 마을 주민을 위해 열어두는 것이다. 

친절한 책방지기로부터 책을 추천받을 수도 있다. 여기도 주제가 있다. ‘나에게 집중하는 주제’라든지 ‘내 삶에 진심인 편입니다’처럼 큰 주제 속 더 세부적인 몇 가지 질문에 답을 고르면 책방지기가 책을 골라준다. 이용자의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주기 위해서 책방지기는 몇 종류의 질문지를 직접 써 두기도 했다.

이곳을 찾아왔을 때는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 것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 그래서 그 걸음을 가볍게 해 주고 싶은 책방지기의 사려 깊은 마음이 질문지에 담겨 있다. 내용을 보면 인생을 어떻게 살면 좋을지, 삶을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지를 묻는 것 같다. 마음이 울적한 날 이 질문지를 펼치고 있노라면 뭔가 모르게 울컥할 것 같다. 그만큼 심금을 울리는 질문들이다. 질문지의 문항을 일일이 생각하고 작성하기까지 책방지기의 어떤 노력들이 따랐을지. 독자의 입장에서 그 마음이 참 고맙다. 

 

(사진=요행)
주제 넘은 서점 내 '궁금한 서재'의 질문지. 큰 주제 속 더 세부적인 몇 가지 질문에 답을 고르면 책방지기가 책을 골라준다. (사진=요행)

책은 인생의 길라잡이 

질문지는 책방에도 있었다. 이전에 진행한 큐레이션 주제별로 또, 책의 장르별로 준비해 둔 질문지였는데 바쁜 일상에 쉼표를 찍게 하는 내용들이다. ‘나에게 어떤 시간이 흐르고 있나요?’라는 주제의 질문들을 예를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1. 평일 하루, 나를 위한 시간은 얼마인가요? 
2. 나를 위한 시간에 주로 무엇을 하나요?
3. 나를 위한 시간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4. 현재의 시간과 돈을 바꿀 수 있다면요?
5. 나에게 돈보다 시간이 중요한 나이는 언제쯤이라고 생각하나요?
6. 짧은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요?
7. 나를 위한 시간에 꾸준히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나도 이 질문에 답을 해 봤다. 오랜만에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질문들을 통해 반성했고, 대부분의 감정은 이런 질문을 받게 돼서 느껴지는 고마움이었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서 누군가 나를 붙잡고 이렇게 깊은 질문을 던진 적이 언제였던가.

쳇바퀴 돌 듯 돌아가는 삶에서 스스로는 물론이고 주변에 ‘당신을 위한 삶을 살고 있나요? 당신의 시간의 흐름은 안정적인가요?’ 등과 같은 질문을 던질 새가 없다. 사실 이런 질문이 떠오르지조차 않는다.

생각의 틀이 깨지게 되는 일. 책방지기는 그 일을 가능케 하는 것이 책이라는 걸 다시금 상기시켰다. 책을 통해 매번 새로운 세상을 배우고, 그로 인해 자신의 우주를 살찌우는 책방지기. 그의 인생은 책들로 움직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퍼뜨리면서 말이다. 

“인생이라는 것은 사실 생활 루틴이 있으면 무의미하게 지낼 수 있어요. 하루하루 반복되는데 이를 달리 말하면 하루하루 발전은 없다는 거예요. 우리가 가던 길만 가지 않고 우연히 잘못 들어선 길에서 멋진 곳을 발견하게 되는 일들이 있잖아요. 잘못 들었지만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들어섰다가 새로움을 깨닫게 되는 그런 길들을 저는 많이 만들고 싶어요.” 

여기에 김문규 책방지기는 한 마디를 더 얹었다. 

“책을 읽을 때는 어떤 목적이 있을 수 있어요. 그 순간의 재미를 위해서,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생각을 좀 하고 싶어서 등등이요.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우리가 깊이 인식하지 않을 뿐이지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온전히 나를 위한다는 거예요. 온전히 스스로를 위한 선택이고 시간이에요. 그러니까 책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나를 사랑한다는 의미이고 나를 잘 알고 싶다는 거예요.”

주제 넘은 서점 내 '궁금한 서재'. (사진=요행)<br>
주제 넘은 서점 내 '궁금한 서재'. (사진=요행)

세계 보이그룹의 정상에 올라선 BTS는 데뷔부터 지금까지 줄곧 한 가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love myself’, ‘스스로를 사랑하라’. BTS의 음악은 그들의 또래보다 20, 30대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무한경쟁 시대에서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자아가 길을 잃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사랑하고 자아를 되찾는 일. 김문규 책방지기가 일관되게 하는 말에 따르면 그 방법은 하나다.  책을 읽는 것, 책방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김문규 책방지기의 추천책

1.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프랑스의 유서 깊은 문학상인 ‘공쿠르 상’은 한 작가가 두 번 수상할 수 없는 규칙이 있다. 그러나 이를 깨고 유일하게 이 상을 두 번 수상한 이도 있다. 바로 에밀 아자르. 즉, 로맹 가리이다. 그는 1956년 <하늘의 뿌리>로 이 상을 수상했는데 1974년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그로칼랭>을 발표, 문단에 큰 화제를 불러왔다. 그리고 이듬해 <자기 앞의 생>을 발표해 이 책으로 공쿠르 상을 수상했다. 소설가 조경란씨는 서평을 통해 이 책의 줄거리를 이렇게 설명했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열네 살 소년 모모가 부모가 버린 아이들을 맡아 키우는,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아우슈비츠에 강제로 수용된 끔찍한 기억을 갖고 있는 로자 아줌마와 함께 지내던 자신의 생 중 어느 한 시기에 관한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다.’

모모의 관점에서는 돔볼의 주체와 객체가 바뀌는 것과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 사랑 없는 삶이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정리된다. 삶과 죽음 그래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2.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그는 이 책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주인공인 조르바는 카잔차키스가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 꼽는 실존 인물로 책에서는 호쾌한 자유인으로 표현된다. 

'이야기는 젊은 지식인 ‘나’가 크레타 섬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다가, 60대 노인이지만 거침이 없는 자유인 조르바를 만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친구에게 ‘책벌레’라는 조롱을 받은 후 새로운 생활을 해보기로 결심, 크레타 섬의 폐광을 빌린 나. 그에게 조르바는 좋은 동반자가 된다. 나와 조르바가 크레타 섬에서 함께한 생활이 펼쳐진다.' (인터넷 교보문고 책 소개 내용 발췌.)

※ 주제 넘은 서점은 제주시 애월읍 하가로 172에 위치해 있고요. 
오전 서점으로 매주 월~토 오전 8시~12시까지만 운영돼요. 
다른 시간에 책방과 궁금한 서재 방문을 희망하시는 경우
서점으로 문의해주세요. 

요행

제주의 시골에서도 책방을 볼 수 있는 요즘입니다. 반가운 일입니다. 책방은 책방지기의 성향에 따라 여러 장르의 책들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책방에 들어설 때마다 새로운 세상으로 초대받곤 합니다. 책방지기의 사심이 가득한 책방은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책방지기의 삶을 바꾼 책 한 권과 책방의 탄생기를 들으면서 우리도 인생 설계의 방향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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