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들을 위한 자리(사진=요행)
손님들을 위한 자리(사진=요행)

제주는 인구수 대비 전국에서 동네책방이 가장 많다고 한다. 무려 약 200곳이라고. 나는 책방은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책방이 많으면 책을 직접 만지고 볼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친숙해지면 지갑이 보다 쉽게 열린다. 

은종복 책방지기는 제주에 책방이 많은 이유를 세 가지로 꼽았다. 사람들이 책을 정가로 산다는 점,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을 품은 곳에 책방이 자리해 있다는 점 그리고 책방의 개성이 뚜렷하다는 점이다. 

책을 정가로 산다는 건 제주는 완전도서정가제가 힘을 발휘하는 곳이라는 의미다. 고무적인 현상이다. 종복씨는 제주 책방만의 개성이 마을과 잘 어우러져서 그곳을 찾는 이들에게 도서 정가 구매에 대한 거부감을 없앤다고 보고 있다. 책방은 휴식과 치유를 목적으로 찾는 이들이 많다. 물론, SNS에 올릴 사진을 찍기 위해 찾는 이들도 있다. 책방을 책방 자체로 사랑하고 응원하는 이들이 늘어나면 사진을 목적으로만 찾는 이들은 자연스레 줄어들 것이다. 
 

동네책방이 유지되기 위한 4가지 조건 

은종복 책방지기는 또한, 제주 동네책방이 계속해서 자리를 지키려면 반드시 충족돼야 할 조건 4가지도 제시했다. 

첫째, 완전도서정가제가 정착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독자에게 친숙한 것은 10% 할인된 금액으로 책을 구입하고 5%는 적립하는 식의 부분정가제다. 하지만, 이 부분정가제는 대형 서점과 온라인서점의 배를 불렸고 다들 잘 알다시피 이는 전국에서 책방들이 하나, 둘 사라지게 하는 역효과를 불러왔다. 

책방이 있는 마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자부심을 획득한다. 언제든 책을 가까이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책방이 있는 마을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한다. 미래지향적인 마을, 교양이 있는 마을, 쉼이 있는 마을 등등. 우리가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치들이 책방이 있는 마을의 정체성이 될 수 있다. 

이곳은 여전히 수기로 장부를 기입한다(사진=요행)
이곳은 여전히 수기로 장부를 기입한다(사진=요행)

둘째, 출판사는 모든 책방에 똑같은 가격으로 책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관행으론 도매상이나 대형 서점, 온라인 책방에 출판사는 정가의 50~60% 가격에, 동네 책방은 정가의 70~80% 가격으로 책을 판매한다. 동네책방이 얼마나 열악하고 치열한 출발선에 서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종복씨에 따르면 유럽에 있는 많은 나라들은 완전도서정가제를 하면서 책값 이익금으로 40%를 서점이 갖도록 하고 있다고 한다. 당연히 출판사는 모든 책방에 같은 가격으로 책을 판매한다. 독일의 경우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40%의 이익금을 주고 온라인책방에는 20%의 이익금을 주는데 이때 택배비는 구매자 몫이라고 한다. 정책적으로 오프라인 책방을 우선하고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책방에 사람들이 오도록 애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손님들이 좋아할 다양한 책을 구비해 놓고 책방에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책방일꾼은 책을 많이 읽어 양질의 정보를 전하는 것이 책방지기의 기본 자질이라 말했다. 

넷째, 책방 안에서 모임을 잘 꾸려야 한다는 점이다. 동네 책방은 마을의 쉼터이자 사랑방 같은 곳이기 때문에 그 특성을 십분 발휘하고 활용한 모임을 지속적으로 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책방의 역할에 대한 애정 어린 시각이다. 
 

버겁지만 그래도 책방지기를 꿈꾼다

여러분에게 책방은 어떤 곳인가? 은종복 책방지기에게 책방은 ‘메말라 가는 마음을 촉촉하게 해 주는 곳’이자 ‘먹거리를 가져와서 함께 먹기도 하는 따뜻한 정을 나누는 쉼터’이며 ‘돈을 중심에 놓지 않고 생태와 평화, 인권, 나눔을 생각하는’ 곳이다. 

풀무질의 지난날에 대한 기록들(사진=요행)
풀무질의 지난날에 대한 기록들(사진=요행)

종복씨는 경기도의 한 책방이야기를 들려줬는데 올해 3월 말에 문을 닫았다고 한다. 그곳의 책방지기는 책방 문을 열고 6년 동안 무려 200회가 넘는 문화 행사를 열었다. 책방을 유지해야 하는데 책 판매금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해서 국가기관 지원사업에 응모해 온 것이다. 

사업에 응모하기 위해서 매년 3~4월이면 컴퓨터 앞에 붙박이처럼 앉아있어야 했다고. 어느새 국가기관 사업을 홍보하는 곳으로 변해버린 자신의 책방과 그렇게 해야 책방 월세를 낼 수 있는 스스로가 비참해서 6년 동안 애지중지 키워온 책방 문을 닫았다는 이야기였다.  

그 책방지기도 여느 책방지기들처럼 자신이 선별한 책으로 손님들과 소통하고 동네 사람들과 정을 나누는 삶을 꿈꿨을 것이다. 오늘은 어떤 손님을 맞을지, 오늘의 낮과 밤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며 책방 문을 여는 나날들을. 

종복씨의 말을 좀 더 들어보자. 

국가기관이 동네책방들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사업에 이용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동네책방을 살리고 싶으면 가까운 책방에서 정가로 책을 사면 돼요. 책을 딱 한 권만 사도 좋습니다. 한 번이 어렵지 물꼬가 트이면 정착까지는 시간문제거든요. 도서관과 학교 사서 일꾼들은 발품을 팔아서 동네책방을 찾아와서 책방 일꾼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동네에서 문화를 일구는 일에 나서주어야 해요. 저는 아직 이런 꿈을 버리지 않았어요. 제가 꿈꾸고 바라는 동네책방은 동네 사람들이 느끼는 슬픔을 나누고 기쁨을 함께하는 아름드리나무요, 목마른 사람들이 찾아가는 샘터요, 세상을 올곧게 바꾸는 씨앗을 심는 텃밭입니다.

현대사회는 너무 바쁘다. 한 권의 책보다 소셜네트워크, 유튜브, TV 등을 통해 정보를 소비하는 편이 훨씬 시간이 절약되고 편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는 생각하는 힘을 후퇴시킨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째는 쉽다. 가까운 동네 책방에 가서 제목이 끌리든, 표지가 맘에 들었든, 아니면 베스트셀러이든 책 한 권 사서 글의 위로를 받아보길 바란다. 

책이 주는 사고의 확장을 경험하고 전혀 몰랐던 세상으로의 초대를 기꺼이 즐기길 바란다. 만약 정말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책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방대한 정보를 갖고 있는 책방지기들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제주풀무질에는 책 못지않게 음악CD도 많다. 스트리밍 서비스 이용법을 배우지 않았다며 지금도 종복씨는 CD를 구입한다. 어떤 곡을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김민기씨의 ‘아침이슬’이라고 답했다. 가수 양희은씨가 부른 곡의 원곡인데 운 좋게 그 자리에서 들을 수 있었다. 

긴 밤을 지새운 날 나를 맞이해 준 진주보다 고운 아침이슬. 내 맘에 설움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배우는 작은 미소. 서럽고 힘들지만 그래도 거친 광야로 나아가겠다는 다짐. 

많은 사람들에게 서슬 퍼런 시절의 민중가요로 익숙하다. 하지만 80년대 생인 나에게 이 노래는 삶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한 사람의 세상에 대한 사랑 노래로 들린다. 

내 인생의 긴 밤을 지새우거나 아니면 그 긴 밤을 아직 걷고 있다면, 또는 요즘 우리를 밤낮으로 괴롭히는 뜨거운 태양의 입김이 삶에도 불어서 괴로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면, 세화리 ‘제주풀무질’에서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그곳에 ‘아침이슬’ 같은 책방지기인 은종복씨가 여러분을 기다리다가 환하게 맞이해 줄 것이다. 

※참고로 은종복 책방지기는 제주투데이 칼럼 필진 중 한 명이다. 매달 마지막 주 목요일 <또밖또북>으로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제주풀무질 책방지기의 추천 책 

월든(헨리 데이빗 소로우), 탈성장 개념어 사전(자코모 달리사 외), 바다, 우리가 사는 곳(핫핑크돌핀스), 정원가의 열두 달(카렐 차페크), 탄소 사회의 종말(조효제), 소로의 문장들(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흙(데이비드 몽고베리), 2050거주불능지구(데이비드 월러스 웰즈),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김종철), 우리들의 하느님(권정생) .

제주풀무질은 제주시 구좌읍 세화합전2길 10-2에 위치해 있고요.
영업부장인 광복이와 함께 
매주 월~화, 목~일 오전 11시부터 저녁 6시까지 문을 연답니다. 
수요일은 휴무에요. 

요행

제주의 시골에서도 책방을 볼 수 있는 요즘입니다. 반가운 일입니다. 책방은 책방지기의 성향에 따라 여러 장르의 책들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책방에 들어설 때마다 새로운 세상으로 초대받곤 합니다. 책방지기의 사심이 가득한 책방은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책방지기의 삶을 바꾼 책 한 권과 책방의 탄생기를 들으면서 우리도 인생 설계의 방향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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