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락하두)
(사진=락하두)

2023년의 달력은 어느덧 12월 한 달 마지막 페이지만을 남겨두고 있다. 흐르는 것은 강물만이 아니라는 것을 중년의 나이에 이르러 깨닫게 되더라. 시간이라는 무형의 실체는 나이의 숫자만큼 비례해 무심하고도 빠르게 흘러간다.

올해 마지막 이야기의 주인공은 ‘제주 인디(JEJU INDIE)’다. 이곳은 사설 공연장 겸 펍(Pub)이다. 주인장은 과거 1990년대 중후반에 제주인디 음악씬에 혜성처럼 등장하여 대중들로부터 큰 화재를 몰고 다녔던 전설의 밴드 ‘에로스’의 보컬 이력을 소유한 인물이기도 하다.

(사진=락하두)
WITH LIQUOR. (사진=락하두)

제주도심 생활권 30분 이내의 시내 번화가에 제대로 된 라이브 공연장을 만들어 보겠다는 주인장의 굳은 신념과 소명의식으로 10년 전 제주시청 벽화 광장 뒤편 골목에서 지금의 ‘제주 인디’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제주 인디’의 태동부터 1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셀 수 없을 만큼의 밴드들, 솔로 싱어송라이터, 힙합 크루, 직장인 밴드들의 공연과 무대가 정기적 또는 비정기적으로 펼쳐졌다. 때론 육지부 유명 뮤지션들의 공연이 성사되기도 했다.

뮤지션들에게 이곳에서의 공연 무대는 일종의 통과의례와 같았다. 홍대거리로 상징되는 인디문화의 이미지를 제주에 안착시킨 곳이다.

(사진=락하두)
JOON LEE. (사진=락하두)
어쩌다 밴드. (사진=락하두)
어쩌다 밴드. (사진=락하두)

하지만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위치가 아무래도 시내 중심가이다 보니 최초부터 방음에 신경 쓴 무대였지만 공연 소음으로 민원이 발생했다. 때문에 비슷한 조건의 사설공연장 보다 몇 번의 방음 공사로 공연장 소음을 최소화해야만 했다.

또한 공연장 관람객들의 높아진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PA 및 조명, 무대 효과 장비들에 대해 수시로 업그레이드가 이뤄졌고 그때마다 주인장의 눈물 머금은 지출이 발생했다고 한다.

C.CLE. (사진=락하두)
C.CLE. (사진=락하두)
바나나 문. (사진=락하두)
바나나 문. (사진=락하두)

그렇게 ‘제주 인디’는 주인장의 굳은 결기로 인해 육지부에 내놔도 손색없는 공연 시절을 갖추게 됐다. 제주의 뮤지션들이 선호하는 사설 라이브 공연장으로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이다.

한편으론 ‘제주 인디’는 외롭고 쓸쓸한 곳이기도 했다. 과거만큼의 음악감상과 공연문화에 대한 소비가 이뤄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공연이 없는 날 이곳을 찾으면 주인장만 홀로 있거나, 또는 다섯 손가락으로 셀 만큼의 손님들만이 테이블을 채우고 있는 모습이 목격되는 횟수가 상당히 많았다.

ZEN ALONE. (사진=락하두)
ZEN ALONE. (사진=락하두)
사우스카니발. (사진=락하두)
사우스카니발. (사진=락하두)

그렇다면 공연이 잡힌 날의 모습은 어떠할까? 공연이 없는 날보다는 최소 20명에서 최대 100명 이상의 관객들이 입장해 공연을 즐기는 훈훈한 모습이 연출된다. 그러나 공연이 끝나면 관객들은 말그대로 썰물처럼 순식간에 빠져나가 버리고 당일 공연팀과 주인장만 남아서 소소한 회식을 푸는 형세의 반복이었다.

불경기로 자영업 하시는 분들의 힘듦의 정도를 내 어찌 가늠할 수 있으랴. 그럼에도 과거 90년대 음악다방, 락 카페, 공연장 문화의 황금기를 기억하고 있는 나는 ‘제주 인디’의 숨어 있는 눈물의 깊이를 예감할 수 있었다. 주인장은 주머니의 현실보다 인디 문화에 대한 헌신의 길을 택했다. 의지를 놓지 않고 언덕길을 힘겹게 오르는 주인장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제주인디 10주년 기념 공연은 2023년 12월 23일 토요일 저녁 6시부터 이뤄졌다. 공연에 참가한 팀은 다음과 같다. 

01-WITH LIQUOR

02-JOON LEE

03-어쩌다 밴드

04-C.CLE

05-바나나 문

06-ZEN ALONE

07-사우스카니발

08-UNBEATS

09-ROCK N’ ROOL DADDY

10-SWELL CITY

11-감귤서리단

근래 제주에서 볼 수 없었던 무려 11개 팀의 라인업이다. 한 팀당 최소 3곡, 많으면 5곡을 연주한다면 단순 계산으로만 33곡에서 55곡이 무대에서 연주된다는 것이다. 1곡당 3~4분이라고 했을 때 나는 공연장에서 최소 5시간 이상을 버텨야 했다.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UNBEATS. (사진=락하두)
UNBEATS. (사진=락하두)
ROCK N’ ROOL DADDY. (사진=락하두)
ROCK N’ ROOL DADDY. (사진=락하두)

주인장의 전언에 따르면 11개팀 말고도 공연에 참여하겠다는 팀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많은 팀들이 ‘제주 인디’의 10주년을 축하해 주려 앞다투어 기념 공연에 참여하기 위해 경쟁했다는 것인데, 공연장의 상징성, 그리고 존재의 의미를 생각해 볼만한 대목이다. 

그러나 걱정이 무색하게 5~6시간 동안의 공연이 마치 1시간인냥 훌쩍하고 지나가 버렸다. 참가팀은 팀대로 관객들은 관객들대로 이 의미있는 무대를 희열가득 벅차게 즐겼다는 방증일 것이다(공연영상 link).

SWELL CITY. (사진=락하두)
SWELL CITY. (사진=락하두)
감귤서리단. (사진=락하두)
감귤서리단. (사진=락하두)

특히 주인장의 아내는 공연팀의 무대를 보며 흐느껴 울었다. 그녀의 눈물에는 10년이라는 세월이 있기까지의 희노애락 응축되어 있는 것만 같아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또한 코가 찡해졌다.

마지막으로 ‘제주 인디’ 주인장에게 전하고 싶다. “10년을 버뎌줘서 고맙수다!”

 

Rock음악을 하두 좋아해서 

락하두라 스스로를 자칭하는 

평범한  중년의 제주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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