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락 한 알 속의 우주-무위당 장일순의 이야기 모음》
장일순, 녹색평론사

나락 하나에 우주가 있다. 나락은 무엇인가. 벼 이삭이다. 풀 한 포기에도 우주가 있고 벌레 한 마리에도 우주가 있다. 장일순이 한 말이다.

그는 1928년에 태어나서 1994년에 죽었다. 67년을 살았다. 그의 말은 2021년 오늘 더욱 빛이 난다. 지금은 자연이 더러워져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목숨붙이들이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장일순은 잘못된 정권에는 협력하지 말고, 폭력을 쓰지 말고 맞서야 한다고 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그렇게 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장일순은 1960~70년대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에서 맞서다가 3년 가까운 옥살이를 했다. 그 뒤로 강원도 원주에서 쭉 살면서 정권에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뿐 아니라 가난하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과 술을 마시며 그들을 몸과 마음을 다해서 보듬어 안았다. ‘한살림’이라는 협동조합을 만들어 땅을 살리고 농사꾼을 살리는 일에 나섰다. 땅에 화학비료를 주지 않고 농사를 짓는다. 그렇게 지은 먹을거리를 도시 사람들에게 바로 준다. 도시 사람들도 농사를 짓는 곳에 와서 땅을 살리는 일에 힘을 보탠다.

장일순은 자연이 자연 그대로 살아있고, 남북이 평화롭게 하나가 되고, 사람들 사이에 따뜻한 정이 돋아나려면 계급폭력혁명으론 되지 않는다고 한다. 자본주의사회는 물론이거니와 사회주의사회도 자연을 더럽혀서 경제를 성장시키고, 권력을 차지하려는 마음을 갖게 되면 하나뿐인 지구는 모든 생명들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바뀐다. 이 말은 점점 진실이 되고 있다.

사회변혁운동을 하지 않고, 사람들 하나하나가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를 모시며 살면 세상이 아름다워질 것이라는 말이 좀 뜬구름 잡는 듯하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 산다면 희망이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사람들이 경제를 살린다고 자연을 더럽히고,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고 핵무기를 만들고, 서로를 미워하고 헐뜯는다면 평화는 없다.

지구에 있는 모든 것들에는 마음이 있다. 풀, 벌레, 꽃, 나무, 돌, 바다, 강, 산에는 영혼이 있다. 개와 고양이, 돼지, 소, 말도 사람처럼 잠을 푹 자고, 맛있는 것을 먹고 싶어 하고, 자유롭게 살고 싶어 한다. 이 모든 생명들이 조화롭게 사는 길은 무엇일까. 장일순은 말한다. 나와 네가 따로 있지 않다고. 나와 우주는 하나라고. 우주와 지구에 있는 모든 목숨붙이들은 하나라고. 잘 나고 못 난 것이 없다고. 아무리 나를 괴롭힌 사람들도 사랑으로 보듬고 가라고.

1980년 광주 사람들을 학살하고 정권을 빼앗은 전두환도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한다. 그래야 한국전쟁을 일으킨 김일성도 용서할 수 있다고. 참으로 힘든 일이다. 학살자들과 그에게 힘을 실은 사람들이 반성도 하지 않고 버젓이 살아있다. 그들을 용서하고 사랑하라니. 지금 나는 그 말엔 함께하긴 힘들다. 장일순은 어떤 마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을까. 단지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는 단순한 생각은 아닐 것이다.

장일순은 밤에 길을 걷다가 들리는 풀벌레 소리에 스스로 삶을 뉘우친다. 풀 하나와 벌레 한 마리가 선생님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야말로 자연을 아름답게 하고 우주를 품고 있다고.

나도 요즘 새로운 선생님이 나타났다. 바로 우리 집 개다. 이름은 광복. 2019년 8월 15일 광복절에 우리 식구가 되었다. 떠돌이 개였다. 광복이가 오기 앞서서 내 스승은 25살 된 아들이었다. 내가 살아가는 데 힘이 되고, 내가 제대로 살도록 이끌어주고,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찾아주었기 때문이다. 지금 아들보다 더 큰 선생님은 광복이다. 아들은 말을 하면서 나를 가르치지만 광복이는 말을 하지 않고 눈빛만으로도 나를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장일순도 내 스승이다. 그에겐 미워하는 사람도 없고, 있어도 사랑하라고 하니.

은종복
은종복.

글쓴이 은종복 씨는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 위치한 인문사회과학 책방 '제주풀무질'의 일꾼이라고 자기 자신을 소개한다. 책과 사회를 또박또박 읽어내려가는 [또밖또북] 코너로 매달 마지막 목요일에 독자들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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