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4·3 수형 희생자 특별재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유족들이 만세를 외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달 4일 오후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4·3 수형 희생자 특별재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유족들이 만세를 외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2023년 4·3항쟁 75주년을 앞둔 최근에 여러 의미 있는 일들이 있었다. 우선, 4·3 당시 억울하게 유죄 선고를 받았던 많은 생존 수형인들이 재심을 통하여 무죄판결을 받았다. 물론 이는 지난 2017년부터 최근까지 무려 5년 6개월에 걸쳐 점차적으로 이루어져 온 일이다. 

둘째, 4·3 희생자 300명에 대한 첫 국가보상금 지급이 이뤄진다. 이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야 할 과제이고, 후유장애등급에 따른 차등지급이라는 문제도 남겼다. 셋째, 4·3연구 학문후속세대 양성을 위한 석·박사 과정이 운영될 예정이다. 여전히 우려되는 지점이 있지만 일단 환영할만한 일이다. 넷째, 4·3 상흔을 간직한 다랑쉬굴 토지 매입이 완료되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곳은 4·3비극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기에 역사적·교육적 가치가 큰 유적지로 자리 잡을 것이다.  

네 가지가 모두 의미 있는 일들이지만 완료가 아니라 출발 단계라는 점에 유념하고, 향후 실천 과정에서 제기될 수 있는 장애와 한계를 보완하고 극복해 나가야 한다. 생존 수형인들이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이후의 권리구제 문제가 남아있고, 희생 수형인들의 재심청구 및 그에 따른 여러 문제들도 산적해있다. 

대검찰청은 지난해 11월 24일 광주고검 산하 '제주4·3사건 직권재심 권고 합동수행단(단장 이제관)'을 출범, 제주도에서 현판식을 개최했다.  (사진=박소희 기자)
대검찰청은 지난해 11월 24일 광주고검 산하 '제주4·3사건 직권재심 권고 합동수행단(단장 이제관)'을 출범, 제주도에서 현판식을 개최했다.  (사진=박소희 기자)

4·3 희생자에 대한 국가보상금 차등 지급 문제는 즉각 해결돼야 하고, 가능하면 많은 희생자가 보상금을 받을 수 있도록 희생자 범위를 확대해 가야 한다. 4·3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석·박사과정 운영은 제주대학교가 맡기로 한 이상 제대로 된 교육과정의 구성과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전공교수 채용, 나아가 배출될 인력의 활용 방안에 대해서도 미리 숙고해야 한다. 다랑쉬굴은 역사적·교육적 가치가 잘 드러날 수 있도록 유적지 정비를 해나가야 한다. 

이외에도 남은 과제들이 있지만, 특히 2023년 4·3항쟁 75주년을 앞둔 시점에서 연구와 교육의 분야에서 남겨진 과제가 무엇일까? 가장 큰 연구과제로는 미국의 책임규명과 정명의 문제가 아닐까 한다. 이 방면의 비전문가인 논자로서 이에 대해서는 관련 전문가들과 앞으로 양성될 학문 후속세대의 몫으로 넘길 수밖에 없다. 

4·3정신이란 무엇인가? 질문을 던져보자

교육의 과제라면 말할 것도 없이 4·3정신의 계승 문제를 들어야 할 것이다. 4·3정신이 무엇인지 규정하는 것도 연구과제라는 점에서 논자가 섣불리 나설 수 있는 주제가 아니지만, 독자들에게 생각거리를 던지는 의미에서 그동안의 4·3교육을 돌아보며 논자의 관점을 제기해 본다.

7일 오전  제주 4·3평화교육센터에서 4·3희생자 첫 보상금 지급 기념식이 열렸다.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7일 오전 제주 4·3평화교육센터에서 4·3희생자 첫 보상금 지급 기념식이 열렸다.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4·3교육이 학교에서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난한 세월 동안 진상규명 운동을 벌인 활동가와 연구자들이 있었고, 그 운동의 성과물을 교육적 차원에서 실천해온 뜻있는 교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1990년대 후반부터 4·3교육을 시도해온 ‘제주사랑 역사교사 모임’ 소속 교사들의 노력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도교육청도 감히 나서지 못하던 4·3교육을 제한적이나마 실천했던 분들이기 때문이다. 

도교육청과 각급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4·3교육을 시작한 것은 아무래도 2003년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가 정부차원에서 채택된 이후라 하겠다. 물론 이후에도 부침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제 4·3교육은 제주의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평화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전수하는 교육과정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 과정에는 전 이석문 교육감의 기여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는 유명무실했던 ‘4·3평화교육 활성화에 관한 조례’(2013.4.10.제정)의 개정(2015.10.2)에 나서는 한편 학교현장에서 4·3교육의 제도화와 활성화에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평화와 인권의 가치만이 4·3의 정신인가?

도교육청과 각급 학교들은 매년 ‘4·3평화인권교육 주간’을 운영하는 등 다양한 4·3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그러나 그동안의 교육프로그램들을 돌아보면 한마디로 ‘4·3의 역사적 교훈을 평화·인권교육으로 확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고 할 수 있다. 

4·3 71주년 추념식 현장 모습(3일 새벽 6시 10분 촬영, 사진: 제주투데이)
4·3 71주년 추념식 현장 모습(3일 새벽 6시 10분 촬영,. (사진=제주투데이DB)

역사적 흐름에 토대하여 4·3사건 인식하기, 4·3사건으로 빚어진 아픔과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잘 이해하고 소중히 여기기 등이 4·3교육의 핵심목표이고 내용들이었다. 그래서 4·3교육은 대체로 역사와 사회과 교사들이 담당하였고, 여기에 문학이나 예술과 교사들이 보조 역할을 해왔다. 현장체험이나 창의적 활동, 명예교사 및 유가족 초청행사의 교육 내용도 이러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교사 직무연수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물론 이러한 교육목표와 내용상의 접근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4·3교육은 마땅히 4·3사건의 발생 배경과 전개 과정에 대한 역사적 인식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역사적 이해를 바탕으로 여기에 함의되어 있는 교훈적 가치를 찾아내야 하고 그것을 교육내용으로 삼아야 한다. 여기서 논자가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은 역사적 교훈, 이른바 4·3정신이 평화와 인권의 가치로만 국한되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여기에 화해와 상생을 덧붙이고 있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3의 역사적 교훈 찾기는 더욱 확대하고 심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여긴다. 이를 위해 논자는 4·3의 발생과정, 전개과정, 치유과정으로 그 과정을 구분하고 각 과정마다 함의된 정신과 교훈적 가치를 찾아내야 한다고 여긴다. 

1947년 3·1기념대회 슬로건에 주목하라

4·3의 발생과정은 8·15해방 이후부터 4·3발생까지로 잡을 수 있다. 특히 4·3의 기점이 되는 1947년 제28주년 3·1절 기념대회 슬로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3·1혁명 정신을 계승하여 외세를 물리치고 조국의 자주통일 민주국가를 세우자.”(안세훈의 기념사)는 것이었다. 이러한 기조가 4·3무장봉기 슬로건으로 이어졌음은 말할 것도 없다. 

지난 2017년 3월1일 관덕정 앞에서 나부낀 '태극기'. (사진=제주투데이DB)
지난 2017년 3월1일 관덕정 앞에서 나부낀 '태극기'. (사진=제주투데이DB)

그렇다면 4·3발생과정에 함의된 정신적 교훈은 민족, 민주, 자주, 통일이라는 4가지 가치로 집약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2020 한국사 교육과정에도 반영되어 ‘4·3은 8·15광복 이후 자주적 민족통일국가 수립과정에서 일어난 민족사적 사건’으로 규정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4·3교육에는 이러한 가치들이 적극적으로 교수-학습 요소로 자리 잡아 가야 한다.  

4·3의 전개과정은 4·3발생일로부터 좁게는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이다. 그러나 길게 보면 전개과정이 끝나는 시점은 2003년 진상보고서가 채택되기까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 4·3의 상처가 보듬어지지 못한 채 이때까지 지속되어왔기 때문이다. 4·3이 전개되는 동안 제주사회는 그야말로 미증유의 악이 횡행하는 시공간이 되었다. 

흉년, 전염병, 습격, 공격, 계엄, 통행금지, 진압, 검열, 구금, 구타, 고문, (성)폭행, 살해, 방화, 죽창사살, 집단총살, 질식사, 소개, 예비검속, 수형, 연좌제 등이 악을 증거하는 사실적 언표들이다. 이러한 악들은 권력자들의 잘못된 정치로부터 기인한 제주도민들이 당한 악들이었다. 

4·3정신에 공동체·생태·정체성 포함돼야

이러한 맥락에서 함의된 교훈을 찾아낸다면 논자는 평화, 인권, 공동체, 생태, 정체성이라 규정한다. 즉 4·3의 전개 과정 동안 제주에서는 평화가 깨어지고, 인권이 유린되고, 공동체가 파괴되고, 자연과 생태환경이 위협받고, 제주 정체성의 상실을 가져왔던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4·3교육에는 이러한 가치들에 주목하고, 교수-학습의 요소로 삼아야 할 것이라 여긴다. 

지난 2003년 10월31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제주평화포럼 참석차 제주를 방문, 제주라마다호텔에서 열린 도민과의 대화에서  4·3 당시 일어난 국가폭력에 대해 정부 차원의 첫 공식 사과를 하고 있다. (사진=제주투데이DB)
지난 2003년 10월31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제주평화포럼 참석차 제주를 방문, 제주라마다호텔에서 열린 도민과의 대화에서  4·3 당시 일어난 국가폭력에 대해 정부 차원의 첫 공식 사과를 하고 있다. (사진=제주투데이DB)

4·3의 치유과정은 상처를 수면 위로 드러내기 시작한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이후 당겨 잡을 수도 있지만, 본격적인 치유과정은 아무래도 2003년 진상보고서가 채택되고 대통령의 사과가 있었던 이후로 삼을 수 있다. 

4·3의 치유는 현재도 진행 중에 있기에, 이 과정의 기한은 4·3문제가 완전한 해결이 될 때까지로 잡아야 한다. 4·3의 치유와 완전한 해결은 모든 상처와 상흔이 해원되고, 이를 바탕으로 관련된 모든 주체들 간에 화해와 상생이 이루어져야 가능한 일이다. 

또한 화해와 상생이 보다 높은 수준에서 완전한 해결이 되려면 희생자들의 명예회복과 함께 4·3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들이 정의롭게 합의되고 정명이 부여되어 제주의 미래비전과 미래세대에게까지 역사적·실천적 교훈으로 자리잡아가야 한다고 여긴다. 

따라서 치유과정에 바탕을 둔 4·3교육의 내용을 논자는 화해, 상생, 정의, 정명으로 규정한다. 이미 화해와 상생은 초보적 수준에서 실천되고 교육적 가치로도 포함되었다. 수형인 재심과 무죄판결, 국가보상금의 지급 등으로 정의의 가치도 실현 중에 있다. 아직 정명의 과제는 요원하지만 4·3교육의 토론거리로 얼마든지 다룰 수 있다. 

지난 2018년 4월2일  제주문예회관 가설 무대에서 제주시민단체 등이 주최한 예술제에서 김석범 선생(오른쪽 두 번째)이  '4·3민중항쟁'이라고 쓰여진 백비 옆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제주투데이DB)
지난 2018년 4월2일 제주문예회관 가설 무대에서 제주시민단체 등이 주최한 예술제에서 김석범 선생(오른쪽 두 번째)이  '4·3민중항쟁'이라고 쓰여진 백비 옆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제주투데이DB)

4·3정신의 계승을 위한 교육은 내용적으로 확장되고 심화되어야 하지만, 이제 전국화와 세계화도 모색해야 한다. 2020 한국사교육과정에 부분적으로 반영되어 전국화의 시발점이 되었지만 아직 한계가 있다. 4·3교육은 역사나 사회과 교사들만의 책임이 아니라 모든 교과교육과정과 잠재적 교육과정에도 반영되어야 한다. 

전국화를 위해서는 도외 교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직무연수도 중요하고, 교재와 교수-학습 자료의 제작보급도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세계화를 위해 외국어판 교재도 제작될 필요가 있다. 전국대학에서 4·3교육 방안도 강구되어야 한다.

강봉수 교수 (사진=박소희 기자)

강봉수(姜奉秀). 제주시(애월읍 어음리)에서 태어나 제주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동양철학과 도덕교육학을 전공하여 문학석사와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제주대학교 사범대학 윤리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재야연구단체인 사단법인 제주대안연구공동체의 연구원장직을 맡아왔다. 때로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좌를 열었고, 한국(제주) 사회와 교육의 민주화를 위해 시민운동진영에도 기웃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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