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직필: “사관의 권한이 막강하도다!”

중국 춘추시대 진(晉)나라 영공은 어린 나이에 재상이던 조돈에 의해 겨우 보위에 올랐다. 조돈이 국정을 거의 섭정하였고, 진영공은 어린 대부들과 놀기만 하며 국사를 배우려 하지 않았다. 성인이 되었어도 그는 더욱 무도한 일을 벌일 뿐이었다. 도원을 짓고 음행과 음주가무를 즐기고, 가무를 구경하기 위해 모여든 백성들에게 탄환을 발사하여 죽이기 ‘놀이’를 하고, 맹견을 키워 데리고 다니며 사람을 물려 죽이기도 서슴지 않았다.

조돈 등 신하들의 간언도 듣지 않았다. 오히려 간언을 하는 조돈이 미워 그를 쫓아냈다. 그런데 조돈은 도망하였지만 국경을 넘지 않았다. 조천 등의 신하들이 모의하여 진영공을 도원에서 시해하자, 조돈은 도망에서 돌아와 공자 흑둔을 보위에 올렸다.

사관 동호. (사진=바이두백과)
사관 동호. (사진=바이두백과)

어느 날 조돈은 군주를 시해하고 새로 보위를 정한 데 대한 역사 기록이 마음에 걸려 사관으로 가서 태사 동호를 만나 간책을 보여 달라 했다. 간책에는 “가을 7월 을축일, 조돈이 도원에서 자신의 임금 이고를 시해하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깜짝 놀라 동호에게 이것의 부당함을 말하자, 동호는 말했다. 

“당신은 상국의 지위에 있었고, 도망을 치면서도 국경을 넘지 않았고, 도성으로 돌아와서도 역적을 주살하지 않았소. 그런데도 이 일에 대해 당신이 주모자가 아니라고 한다면 누가 그 말을 믿겠소?”

조돈이 고쳐 달라했지만, 동호는 사관이란 옳은 것은 옳다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해야 하는 직책이라며 거부했다. 이에 조돈은 “아! 사관의 권한이 경상보다 막강하도다.”하면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동호직필(董狐直筆)은 여기서 나왔다.
 

태사직필: 기록에 목숨을 걸다

춘추시대 제(齊)나라 장공의 상경인 최저가 자신의 후처인 당강과 사통(불륜)한 제장공을 시해하고 제경공을 세웠다. 전 상경이던 경봉을 제치고 최고의 권력자가 된 최저는 임금을 시해한 자신의 역사기록이 걱정되었다. 그래서 그는 사관인 태사에게 제장공이 학질로 죽은 것으로 기록할 것을 강요했다.

이를 거부하자 최저는 태사 백을 죽였다. 그러나 태사 백뿐만 아니라 태사 직을 이어받은 그의 아우들인 종과 숙도 요구를 거부하다가 죽었고, 막내인 계마저 거부하자 어쩔 수 없이 최저는 요구를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태사직필(太史直筆) 혹은 병필직서(秉筆直書)는 여기서 나왔다.

동호직필(董狐直筆), 태사직필(太史直筆), 병필직서(秉筆直書)는 사관의 추상같은 기록 정신과 역사기록의 엄정성을 일깨우는 성어가 되어 오늘까지 회자되고 있다. 또한 오늘날 이 성어들은 언론방송이나 기자들의 직을 건 정론직필을 거론할 때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논자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이 성어들을 다시 소환한 이유는 며칠 전 모 방송 TV뉴스를 시청하다가 귀를 의심할만한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보도인즉슨, 제주도가 행정시와 산하 공공기관에 언론사의 취재 사안을 자세히 보고하라는 공문을 내려보냈다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공문에는 언론사의 취재 사항 전반에 대하여 취재요청 언론사명, 취재기자의 이름과 연락처, 취재의도, 비판보도 예상 시 조치계획까지 양식에 따라 정리하여 보고하도록 되어있다고 전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오영훈 도정이 언론통제에 나서겠다는 의도로 보기에 충분하다. 최종보고를 받는 사람이 도시사로 명시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언론이 갈등 제공자인가”

동 보도는 갈등이 예측되는 취재사안을 보고받아 갈등 현안을 초기에 파악해 대응하겠다는 취지에서 공문을 시행한 것이라는 제주도 관계자의 인용을 전했다. 이러한 취지의 긍부를 떠나 여기에는 근본적으로 언론을 갈등의 제공자로 보려는 도정의 인식이 깔려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오영훈 도정의 행보를 보면서 도민들 사이에는 지난 원희룡 도정과 차이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있는 터이다. 이에 더하여, 앞으로는 오 도정이 언론 갈라치기를 하는 윤석열 대통령 따라한다며 조롱하는 비판이 이어질까 우려된다.

오영훈 제주도지사(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오영훈 제주도지사(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우리가 아는 한 제주의 수많은 갈등 사안들은 예나 지금이나 언론이나 민간단체가 아니라 오히려 국가나 도정이 갈등의 제공자였던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강정해군기지, 제주제2공항, 월정리오폐수처리장, 의료민영화와 영리병원, 비자림로 확장, 선흘2리 동물테마파크, 제성마을 왕벚꽃나무, 오등봉공원개발 등, 이 중에 국가나 도정이 갈등 제공자로 개입되지 않은 사안이 있는가?

사회갈등의 조정자 역할을 하는 것이 중앙이든 지역이든 정치와 행정의 역할이 아닌가? 그런데 윤석열의 중앙정부에 이어 이제 오영훈 도정마저 언론을 갈등의 제공자로 여기면서 그들을 길들이려하고 있으니 개탄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언론, 나쁜 피가 될 것인가, 맑은 피가 될 것인가”

언론사나 기자들의 측면에서 보면, 이러한 암울한 상황이 이른바 ‘기레기’와 사이비 언론방송사가 누구인지 더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우리 몸에 피가 돌지 않으면 마비가 오고, 만물 사이에 기(氣)가 소통되지 않으며 죽음을 부르듯이, 민주사회에서 언로(국민이 국가에 의견을 올리는 길)가 막히면 독재와 파시즘을 부른다.

활자 자료사진. (사진=플리커닷컴)
활자 자료사진. (사진=플리커닷컴)

생명을 살리는 것이 인(仁)이고, 마비시키고 죽이는 것은 불인(不仁)이다. 언로를 통제하여 언론을 죽이는 것 또한 불인(不仁)이다. 그것은 사람들 간의 소통을 막고, 민주주의의 후퇴를 가져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레기’의 보도나 사이비언론방송도 언로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피가 돌지만 나쁜 피가 도는 것이요, 기가 소통하지만 사악한 기가 소통되는 꼴일 뿐이다. 이 역시 불인(不仁)이다.

국가나 도정의 통제에 순응하여 나쁜 피가 되고 사악한 기가 될 것인지, 아니면 맑은 피가 되고 의로운 기가 될 것인지 여부는 기자와 언론방송사의 태도에 달렸다. 이것이 지금 대한민국과 제주의 기자와 언론사에게 놓인 선택지이다. 부디 제주의 언론사와 기자들은 정론직필의 기자정신을 가져주기 바란다.

닫는 글

지난 1년간 매월마다 글발도 없고 시류에도 어두운 논자가 제주투데이의 논설위원으로 제주시평의 공간을 메워왔다. 이제 이 글을 끝으로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자 한다. 그동안 정들었던 언론사이기에 제주투데이가 앞으로도 동호직필(董狐直筆), 태사직필(太史直筆), 병필직서(秉筆直書)의 기자정신으로 무장한 제주의 참 언론으로 남아주기를 바란다. 그동안 졸고를 읽어준 독자 제위에게도 감사를 표한다.

강봉수 교수 (사진=박소희 기자)

강봉수(姜奉秀). 제주시(애월읍 어음리)에서 태어나 제주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동양철학과 도덕교육학을 전공하여 문학석사와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제주대학교 사범대학 윤리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재야연구단체인 사단법인 제주대안연구공동체의 연구원장직을 맡아왔다. 때로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좌를 열었고, 한국(제주) 사회와 교육의 민주화를 위해 시민운동진영에도 기웃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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