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제주지역 29개 시민사회단체·정당은 화물연대의 총파업을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사진=박성인)
지난달 30일, 제주지역 29개 시민사회단체·정당은 화물연대의 총파업을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사진=박성인)

‘안전운임제’는 전체 시민을 위한 사회안전망

지난달 30일, 제주지역 29개 시민사회단체·정당은 화물연대의 총파업을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안전운임제의 안정적 제도화 및 확대 적용 요구’를 정부가 수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도대체 안전운임제가 무엇이기에 형사 처벌과 손해배상, 가압류 협박에도 그들은 파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화물노동에 대한 최저임금제라 할 수 있다. 화물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운임을 보장하지 않을 경우 과로, 과속, 과적은 필연이다. 이것은 비단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과적, 과속을 동반한 졸음운전은 도로의 안전을 위협한다. 불특정 시민에게도 예기치 않은 불행을 가져올 수 있다는 말이다.

이처럼 중대한 사회안전 장치이기에 2020년 ‘안전운임제’는 도입되었다. 이 제도의 성과는 아주 긍정적이었다. 안전운임제 시행 이전과 이후를 비교해 보면 확연하다. 과적은 24.3%에서 9.3%로, 과속은 32.7%에서 19.9%로, 과로로 인한 졸음운전은 71.8%에서 53.3%로 감소했다. 한국안전운임연구단이 작년에 조사해 발표한 통계다.

화물연대 총파업을 지지하는 제주지역 시민사회단체·정당 29개는 30일 오전 제주항 6부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반헌법적 업무개시명령을 규탄하고, 화물연대의 총파업을 지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박지희 기자)
화물연대 총파업을 지지하는 제주지역 시민사회단체·정당 29개는 30일 오전 제주항 6부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반헌법적 업무개시명령을 규탄하고, 화물연대의 총파업을 지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박지희 기자)

문제는 불완전한 상태로 시행되었다는 점이다. 대상이 컨테이너 차량과 시멘트에 한정되었다. 그러다보니 전체 영업용 화물차 44만 대의 6.1%만이 이 제도의 보호를 받았다. 물동량 기준으로는 14.3%에 불과했다. 게다가 2년 동안만 한시적으로 적용되는 제도다. 즉 올해 말이면 끝난다는 얘기다.

그래서 지난 6월 그들은 정부와 협의를 가졌다. 그때 정부는 안전운임제의 지속 추진, 대상 품목 확대 논의를 약속했다. 물론 논의만 약속했을 뿐, 구체적인 내용에서의 합의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 그런 상태로 이제 곧 이 제도의 종료가 다가온 것이다. 다급해진 것은 화물노동자들이다. 정부가 나중에 내놓은 대책은 ‘화주의 책임을 묻지 않는 안전운임제’뿐이었다.

30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가 총파업에 돌입한지 이레째 접어든 가운데, 화물연대 총파업을 지지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제주항 6부두 앞에 걸려있다.(사진=박지희 기자)
30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가 총파업에 돌입한지 이레째 접어든 가운데, 화물연대 총파업을 지지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제주항 6부두 앞에 걸려있다.(사진=박지희 기자)

하지만 이것은 대책이 아니다. 최저 운임이 보장되지 않는 ‘안전운임’은 말장난이다. 게다가 대상 확대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논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채 강경대응으로 일관한 것이다. 정부의 관심은 오로지 화물 주인인 기업의 이익 보장에만 머문다.

정부의 잔인하고 저열한 대응

경유 가격 인상과 금리 인상도 화물노동자들을 옥죄었다. 안전운임제 시행 전인 2019년에는 경유 가격이 평균 1193원이었다. 그런데 올해 9월말 가격은 1847원이다. 55%가 오른 것이다. 그러니 운송을 하면 할수록 적자라는 비명이 나오고 있다.

금리 인상으로 인한 타격도 크다. 2억원이 넘는 화물차를 할부 없이 구매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자 상환 압박이 이전에 비해 두 배를 넘어섰다. 할부금을 갚지 못하면 당장 차압이 들어온다. 과적, 과속, 졸음운전을 재촉하는 요소들이다.

이제 생계뿐 아니라 생존까지 위협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호소에 사람들은 관심이 없다. 그렇기에 단체로 나서 호소하는 것이다. 그게 파업이다.

원희룡 페북 갈무리
원희룡 페북 갈무리

그런데도 그런 절박함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잔인하다. 6월 협의 약속을 깬 것만으로도 비난받을 만한데, 오히려 모든 책임을 화물노동자들에게로 돌리고 있다. 최소한 고금리, 고유가 대책이라도 내놔야 했다. 하지만 전혀 없다. 화물연대의 파업을 죄악시, 범죄시할 뿐이다.

벌금 물리겠다, 감옥 보내겠다, 운전면허를 취소하겠다며 겁박하고 있다. 대통령부터가 그랬다. “법을 지키지 않으면 지킬 때보다 훨씬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알아야”한다는 표현은 협박이다.

국토교통부 장관 원희룡은 SNS에 “민폐노총이 되어버린 민노총”이라는 글을 올렸다. 해당 장관의 표현으로는 아주 저열하다.

국민의힘 비대위장 정진석은 “국가 물류를 볼모로 삼은 정권 퇴진 운동”이라며, “민주당과 민주노총이 주축이 된 대선불복 좌파연합이 체제전복 기회만 노리고 있다”라고 했다. ‘좌파연합’, ‘체제전복’이 여기서 왜 나오나. 역시 저열하다.

게다가 정부는 주유소 ‘품절’ 안내문에 어떤 문구를 써 붙이라고 지침을 내렸다. ‘화물연대 파업 탓’이라는 문구다. 졸렬하고도 졸렬하다. 실제 그렇게 써 붙인 주유소들이 꽤 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화물연대의 파업을 “이태원 참사하고 똑같이 사회적 재난으로 분류”한다는 발언을 했다. 이쯤이면 할 말을 잊는다. 참사 직접 책임자인 이상민 장관 입에서 ‘이태원 참사’라는 말이 그리 함부로 나와도 되는가.

무지한 발언도 이어졌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은 안전운임제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이런 제도를 시행하는 나라는 전혀 없다”라든가 “세계적으로 없는, 희한한 제도”라고 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호주의 뉴사우스웨일즈(NSW)주, 캐나다의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브라질 등은 이미 이와 유사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단지 노동자의 고통과 국민의 안전을 외면하는 자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뿐이다.

업무개시명령은 정당한가

윤석열 대통령은 화물연대의 운송거부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하게 대응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불법이 아니다. 대부분의 화물노동자들은 지입차주들이다. 자기 차를 가지고 운송노동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평소에 정부나 회사측은 그들을 노동자가 아니라고 했다. 자기 차를 가지고 일하기 때문에 개인사업자라는 논리다. 그 논리를 가지고 노조법 적용에서 제외했던 게 정부이며 기업이다.

12월 3일 서울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퇴진 시위. (사진=이영권)
12월 3일 서울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퇴진 시위. (사진=이영권)

개인사업자 즉 자영업자는 적자가 누적되면 사업을 그만두고 가게 문을 닫는다. 그건 불법이 아니다. 그런 그들에게 정부가 나서서 ‘얼른 출근해서 가게 문 열어. 적자가 나도 계속 장사해’라고 말하면 그게 정상적인 정부인가. 지입차주들을 자영업자 취급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불법 타령인가.

실제 운송거부 자체가 불법이 아니라는 것은 그들도 안다. 자영업자가 자신의 영업을 그만두겠다는 것이 불법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동원한 것이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 제14조 규정이다. ‘국토부 장관은 운송사업자나 운수종사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화물운송을 집단으로 거부해 국가 경제에 매우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거나,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업무개시를 명령할 수 있다. 이를 거부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라는 조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운송거부가 불법행위가 되려면 조문 그대로 “정당한 사유 없이” 진행되는 것이라야 한다. 화물연대의 ‘정당한 사유’는 차고도 넘친다.

오히려 책임은 협상과 논의를 진척시키지 않은 정부에게 있으며, “민주당이 민주노총의 하청 집단이냐”라면서 국회 국토교통위 교통법안심사소위에 불참, 파업하는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에게 있다.

그런데도 검찰정부는 그들의 특기를 앞세워 법조문을 자기 입맛대로 해석한다. 자영업자에게 업무개시를 명령하고, 따르지 않으면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영업을 이어갈지 접을지 결정할 자유도 없이, 그저 기득권 세력의 명령에 따라 노동해야 한다면, 그건 자유 시민이 아니라 강제 노역을 하는 노예이지 않은가.

윤석열 정부는 마침내 노예제를 부활시키겠다는 것인가.

이영권

역사사회학을 전공하고 《새로 쓰는 제주사》, 《제주역사기행》 등을 저술한 이영권 박사는 제주4.3연구소, 제주참여환경연대 등에서 활동한 바 있고, 일선 학교현장에서 역사 교사로 오랜 시간 교편을 잡았다. 올해부터 제주투데이 논설위원으로 위촉된 이영권 위원의 칼럼은 매달 두번째 금요일 게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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