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악산 반대운동 포스터
송악산 반대운동 포스터

34년 전에도 제주공항은 포화였던 모양이다

“제주공항의 포화로 공군 및 민간 공항 건설은 관광개발에 고무적이다.”

“공군기지 설치도 경제적으로 유익하다.”

“군사기지의 용도는 한국 공군기지와 민간여객기용일 뿐, 미군기지는 아니다.”

성산에 짓겠다는 제2공항 이야기가 아니다. 벌써 34년 전 워딩이다. 1988년 9월 13일, 모슬포 송악산 공군기지 건설반대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자, 간담회에서 당시 제주도지사가 했던 발언이다.

34년 전에도 제주공항은 포화였던 모양이다. 군사 목적을 애써 외면하며 경제적 이득을 강조하던 행정관료의 처지가 딱해 보인다. 민간여객기도 구색을 맞추려면 필요하다. 그래도 군사기지임이 명백하니, 미군과 무관함을 언급하는 것으로 답변의 궁색함을 면하려 한다.

그렇다. 강정의 해군기지도 공식 명칭은 ‘제주민군복합형관광미항’이다. 그럼에도 도민들은 안다. ‘민간’도, ‘복합’도 ‘관광’도 ‘미항’도 아닌 그냥 해군기지임을.

게다가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한국군 기지의 독자성을 무력하게 만든다. 조약 4조 “상호적 합의에 의하여 미합중국의 육군 해군과 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 내와 그 부근에 배치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이를 허여(허용)하고 미합중국은 이를 수락한다”에 따라 미군은 얼마든지 한국의 해군기지와 공군기지에 군사를 ‘배치’할 수 있다.

서귀포시 대정읍 소재 알뜨르 비행장 활주로. (사진=강정효)
서귀포시 대정읍 소재 알뜨르 비행장 활주로. (사진=강정효)

장기지속의 역사

나는 모른다. 성산에 짓겠다는 제2공항이 군사기지인지 아닌지를. 하지만 역사를 공부한 나로서는 짙은 우려를 가질 수밖에 없다. 프랑스 아날학파 2세대의 대표 학자 페르낭 브로델은 ‘장기지속의 역사’를 말했다. 지리 환경적 요소가 거의 절대적으로 역사를 규정한다는 주장이다. 지리 환경은 거의 변하지 않기에 장기지속으로 동일한 역사가 이어진다.

이 장기지속의 역사에서 내가 주목하는 건, ‘군사기지로서의 제주’다. 강정에 해군기지를 만들고 또 성산에 제2공항을 집어넣으려는 시도 역시 장기지속의 역사로 살펴야 한다. 최근에야 제주도가 군사기지로 주목받는 게 아니다. 오래되었다.

한반도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충돌지다. 원(몽골)의 일본 원정, 정명가도(征明假道)를 내세운 일본의 한반도 침략 즉 임진왜란, 청일전쟁, 러일전쟁, 한국전쟁 등이 이를 보여준다. 우리민족의 의지와 무관하게 주변 강대국에 의해 한반도는 전란을 겪었다. 현재와 미래도 마찬가지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대립이 이어지면 ‘군사기지로서의 제주’는 계속된다.

스위스나 오스트리아 같은 영세중립국이 부럽다. 물론 우리 역사 안에도 있었다. 조선 광해군은 명과 청 사이에서 중립외교를 구사했다. 개화기 지식인 유길준도 ‘한반도 중립화론’을 피력했다. 하지만 사대주의에 찌든 기득권층의 훼방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오늘 우리 역시 현명한 대처가 필요하다.

 

지난 1988년 10월 제주 모슬포 군 비행장 설치 백지화를 외친 송악산 군사기지 철회투쟁. 대정 안덕 지역주민과 도내 시민사회 단체, 재경학우회, 재경도민회, 지역 청년, 학생들이 연대했다. (사진=송동효 작가)
지난 1988년 10월 제주 모슬포 군 비행장 설치 백지화를 외친 송악산 군사기지 철회투쟁. 대정 안덕 지역주민과 도내 시민사회 단체, 재경학우회, 재경도민회, 지역 청년, 학생들이 연대했다. (사진=송동효)

군사기지로서의 제주도 역사

군사기지로서의 제주도 역사가 확인되는 것은 고려시대부터다.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가 남송 정벌과 일본 정벌을 위한 전진기지로 제주도를 활용하려고 했다.

근현대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1885년 영국이 거문도를 점령하자 러시아가 이에 맞대응 했다. 제주도를 바라본 것이다. 당시 일본의 <마이니찌(每日)>신문은 “조선정부, 노서아에 제주도 차용 허락(朝鮮政府, 露西亞에 濟州島 借用 許諾)...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내용의 기사를 싣는다. 러시아가 제주도를 노렸고, 이에 일본까지 가세하려 했던 것이다.

일제 강점기의 제주군사기지 역사는 이제 상식이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중국 본토 공격을 위한 경유 기지로 제주도 알뜨르를 활용했다. 한때는 나사사키의 오무라 해군항공부대가 알뜨르로 이전하기도 했었다. 제주에서 출격한 비행기는 연 600대가 되며, 난징 공습만도 36회나 되었다. 일제말기에는 본토결전 대비지역으로 활용하려 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결7호 작전’이다. 이때 제주 주둔 일본군은 7만 가까이에 이른다.

일제가 패망하고 한 달이 지난 9월에, 제주도 주둔 일본군은 별도의 항복문서에 서명했다. 무장해제도 한반도와 별개로 진행되었다. 미군 역시 군사기지로서의 제주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한 정부가 수립되기 전, 조급했던 이승만은 1948년 3월에 ‘제주도를 미국의 영구 군사기지로 제공’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군사적 가치를 알고 있었기에 미국의 환심을 사려고 했던 것이다.

국공내전에서 밀려 대만으로 도주했던 장제스는 1949년에 ‘중국 본토 회복 작전을 위한 전진기지로 제주도를 임대해 줄 것’을 한국정부에 요청하기도 했었다.

태평양전쟁을 마무리 짓는 1951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제주도를 별도로 기재한 것도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 및 거문도와 제주도까지 반환”이라는 문구가 그것이다. 제주도를 한반도와 분리하여 인식하고 있으며, 언제가 확보해야 할 전략적 요충지로 여기고 있음을 암시한다.

1968년, 박정희 정권은 오키나와 미군부대의 제주 유치를 계획했었다. 1973년 예정된 오키나와의 일본 반환을 앞두고, 미군부대가 오키나와를 떠날 경우 그 미군을 제주도로 데려오겠다는 발상이었다.

이런 장기지속의 역사가 있기에 경계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대륙세력(러시아, 중국)과 해양세력(미군, 일본)의 대립이 이어진다면 제주 땅은 주변 4강국의 군사각축장으로 전락할 수 있다. 제2공항만이 아니다. 덕천리에 들어서는 ‘국가위성통합운영센터’와 1,100고지 옆 삼형제큰오름 정상에 설치되는 ‘항공로레이더’ 역시 마음을 불편케 한다.

환태평양 합동 연습(Rim of the Pacific Exercise; RIMPAC), 약자로 림팩은 세계 최대의 국제 해군 훈련이다. 사진은 2000년 하와이 호놀룰루로 향하는 미해군 에이브러햄 링컨 호와 오스트레일리아·칠레·일본·캐나다·한국의 군함들. (사진=위키백과)
환태평양 합동 연습(Rim of the Pacific Exercise; RIMPAC), 약자로 림팩은 세계 최대의 국제 해군 훈련이다. 사진은 2000년 하와이 호놀룰루로 향하는 미해군 에이브러햄 링컨 호와 오스트레일리아·칠레·일본·캐나다·한국의 군함들. (사진=위키백과)

림팩(RIMPAC) 참가와 국토부의 셀프 용역

그 불편함은 확장된다. 지난 6월 29일 시작되어 8월 4일까지 이어지는 ‘환태평양훈련(RIMPAC·림팩) 2022′ 때문이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태평양 일대에서 벌이는 군사 훈련이다. 물론 군사훈련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불안과 갈등을 유발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안전과 평화와 공존을 위한 것이라야 한다.

이 훈련이 중국을 겨냥한다는 건 상식이다. 미국도 이를 굳이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드러내 과시하려 한다. 때문에 중국의 반발은 당연하다. 중국 편을 들자는 것이 아니다. 미국에 대해 쏟아내는 중국의 항변에는 흥미가 없다. 나의 관심은 오로지 우리나라와 관련된 것에 국한된다. 한국군은 이번 훈련에 역대 최대 규모의 전력을 파견했다.

중국 관영 매체 <글로벌타임스>는 이런 한국을 거론하면서 “미·중 사이에서 유지해온 중립 입장을 이탈하는 위험한 행보”라고 평가했다. 또한 “이러한 움직임이 한국의 경제와 안보 이익을 해칠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역내 대립과 분열을 불러 사태를 악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은 정치·군사적으로 미국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경제에서는 중국이 최대 명줄이다. 그런 만큼 현명한 대처가 필요하다.

이 와중에 국토부는 제2공항 강행을 위한 수순을 밟아 간다. ‘제주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 보완가능성 검토 연구 용역’을 발주해서 긍정 결과를 얻어내고 있다. 환경부에서 ‘안 된다’고 했던 것인데, 그것을 다시 ‘되게 할 수 있나’ 타진하는 용역이다. 최종 발표 전에 살짝 간 보는 행태로 ‘되게 할 수 있다’는 결론으로 끌어가고 있다. 셀프 용역의 당연한 결과다.

역시 현명한 대처가 필요하다. 건설 경기로 인한 이익은 순간이다. 반면 부작용은 제주땅에 오랜 상처를 남길 것이다. 역사는 또한 이를 기록하여 후세에 전할 것이다. 누가 제주를 지켰고, 누가 제주를 파괴했는지를. 누가 공익을 위해 싸웠고, 누가 사적 욕망 추구에 매달렸는지를.

이영권

역사사회학을 전공하고 《새로 쓰는 제주사》, 《제주역사기행》 등을 저술한 이영권 박사는 제주4.3연구소, 제주참여환경연대 등에서 활동한 바 있고, 일선 학교현장에서 역사 교사로 오랜 시간 교편을 잡았다. 올해부터 제주투데이 논설위원으로 위촉된 이영권 위원의 칼럼은 매달 두번째 금요일 게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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