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발’들

*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지금 파악을 하고 있다.”  - 행정안전부 장관 이상민

* "저희는 전략적인 준비를 다 해왔다. 구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다 했다." - 박희영 용산구청장

* “지금은 추궁의 시간이 아닌 추모의 시간” -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 “사고 책임은 경찰과 지방자치단체뿐 아니라 공적 기능을 담당해야 할 공영방송사에도 있다” -박성중 국민의힘 국회의원

* “부모도 자기 자식이 이태원 가는 것을 막지 못해놓고” - 김성회 전 대통령실 종교다문화비서관

* “이런 사고가 났다는 것 자체는 일단은 문재인 정권에 책임이 있는 것” - 정미경 전 국민의힘 최고의원

망발이다. 속이 다 뒤집힌다. 차라리 가만히 있었으면 그들 요구대로 차분히 추모부터 했을지 모르겠다. 아픔에 대한 공감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책임 회피뿐이다. 더하여 국무총리 한덕수는 사이코패스다운 행태까지 보여줬다. 외신 기자간담회에서 실실 웃어가며 말장난식 농담을 해댄 것이다. 물론 사흘 만에 장관 사과, 엿새 만에 대통령 사과가 있었지만, 억지의 공허함만을 풍겼다.

상징 조작

책임 회피는 자연스레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지침’으로 이어졌다. 인용 자료는 행정안전부의 공문 ‘이태원 사고 관련 지역단위 합동분향소 설치 협조’다.

먼저 정부가 정한 명칭을 보자. 분향소 제단 중앙에 “이태원 사고 사망자”라 쓰라는 내용이 나온다. ‘참사’를 ‘사고’라며 축소와 은폐를 시도하고 있다. ‘사고’는 일상의 것이지만, 참사는 이례적인 것이다. 규모가 크고 참혹할 때 쓴다. 이건 사고가 아니라 참사가 맞다. 외신 기자간담회에서 총리 한덕수는 사건(Incident)라는 단어를 고집했고, 반면 외신기자들은 참사(Disaster)라는 단어로 질문했다.

윤석열 정부는 이태원 참사 발생 12시간도 안 돼 중대본 회의를 열어 ‘사고’, ‘사망자’로 용어를 통일한 뒤 전국 지자체에 이를 통보했다. (뉴스타파 갈무리)
윤석열 정부는 이태원 참사 발생 12시간도 안 돼 중대본 회의를 열어 ‘사고’, ‘사망자’로 용어를 통일한 뒤 전국 지자체에 이를 통보했다. (뉴스타파 갈무리)

‘희생자’를 단순히 ‘사망자’라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망’ 역시 일상의 일이다. 병들어 죽고, 노환으로 죽고, 단순 사고로도 죽는다. 이게 ‘사망’이다. 반면 억울하게 죽은 상황에서는 ‘희생자’라 한다. 그 억울함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는 추모하고, 공적으로 기억하려 한다. ‘사망’과 구별하여 굳이 ‘희생’을 공적으로 말함은 바로 이 때문이다. ‘억울함의 재발 방지’.

그런데도 아니 그러기에 정부는 말을 비튼다. 이와 같은 정부의 상징 조작은 그 ‘공적 의미’를 제거하려는 시도이다. ‘사적인 일상의 사고, 일상의 죽음’으로 처리하여 그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다.

“영정사진 및 위패는 생략”하라는 지침 역시 마찬가지다. 희생자 156명의 신원은 모두 파악되어 있다. 그런데도 드러나지 않게 만들었다. 이는 ‘구체적 죽음’을 ‘추상적 죽음’으로 만드는 기획이다.

희생자가 누구이고, 그가 어떤 삶을 살았으며, 가족과 지인은 또 어떤 사람이며, 그가 마지막 남긴 말이 무엇인지 생생하게 드러날 때, 우리는 그 죽음에 구체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 정부는 그걸 막은 것이다. 분노를 잠재우고, 책임 묻기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다.

'이태원 참사를 추모하는 제주시민들'은 5일 오후 6시 34분 제주시청 광장에서 '제주시민 촛불문화제'를 개최했다. (사진=독자 제공)
'이태원 참사를 추모하는 제주시민들'은 5일 오후 6시 34분 제주시청 광장에서 '제주시민 촛불문화제'를 개최했다. (사진=독자 제공)

허약한 정부라서 그렇다. 이는 민의 지지가 없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모습이다. 얼마나 자신이 없었으면, 얼마나 떳떳하지 못하면 이런 상징 조작을 저지르고 있는가. 정권 보위의 의도는 알겠다. 하지만 마지막 떠나는 길마저 ‘이름 없는 혼령’으로 만드는 일은, 희생자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않겠다는 아주 막돼먹은 짓이다.

그나마 오영훈 도정이 늦게라도 올바른 조치를 취했다. 지난 3일, 기존의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 명칭을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로 바꾼 것이다. 국민의힘 제주도당도 정부의 공식 용어와는 다르게 ‘이태원 사고 희생자’라 하였다. 어정쩡한 이름이다. 아픔에 대한 공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여론의 화살을 벗어나고픈 꼼수로만 보인다. 여전히 그들에겐 책임 회피가 우선이다.

추모와 책임 묻기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 헌법 제34조 6항

“행정안전부는 국정 운영의 중추 부처이자 재난안전 총괄부처입니다. (…) 또한 각종 재난으로부터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전국을 골고루 함께 잘 살게 만드는 데 앞장서는 부처입니다.” - 행정안전부 홈페이지에 기재된 주요 업무

국가의 존재 이유가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행정안전부는 무엇을 하는 부서인지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명확히 밝히고 있다.

그렇기에 이번 이태원 참사의 책임은 어디에 있는지 명백해진다. 정부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 출퇴근에 700명의 경찰 인력을 소비한 것이다. 정부 비판 시위에 필요 이상의 경찰 인력을 투입했던 것이다. ‘지지율 끌어올리기’라는 정치적 목적으로 마약 사범 검거에만 주력했던 것이다. 결국 그들이 한 일은 ‘국민 보호’가 아니었다. 그저 ‘정권 보위’에만 매달렸을 뿐이다.

영국 BBC 'Itaewon crush: Shock and anger as Seoul grieves for its young' 기사 내용 중. 
영국 BBC 'Itaewon crush: Shock and anger as Seoul grieves for its young' 기사 내용 중. 

외신들도 일제히 정부의 책임을 지적하고 있다. 영국 BBC는 “이것은 인재다. 만약 정부가 공공질서를 통제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책임은 정부에 있다. 나이 든 세대도 책임이 있다. 그들이 잘못 투표했기 때문이다(This is a human disaster, it wouldn’t have happened if the government had controlled public order. The government is responsible for this. The older generation is also responsible, they have voted wrongly).

블룸버그 오피니언 코너에는 “할로윈의 비극은 세계에서 가장 비호감인 대통령에 대한 시련이 되고 있음(Halloween Tragedy Is a Test for the World’s Most-disliked Leader)”이라는 타이틀의 글이 실렸다.

CNN도 비슷한 논조다. 책임 묻기를 선동으로 몰아가고, 망각의 관제 추모만을 강요하는 한국의 ‘기레기’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어쨌거나 대통령도 사과했고, 장관도 사과했고, 서울시장도 사과했다. 스스로 잘못을 인정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 말뿐인 사과가 아니라 그에 따른 책임을 물어야 한다. 책임 묻기가 없으면 또다시 이런 참사는 반복된다. 세월호 참사 책임 묻기 실패가 이태원 참사로 이어진 것 아니던가.

이태원 역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사진=김재훈 기자)
이태원 역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사진=김재훈 기자)

추모는 책임 묻기가 제대로 될 때 의미가 있다. 최소한 ‘왜 희생되었는지’라도 밝혀져야 억울함을 덜 것 아닌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있어야 참사의 재발을 막을 것 아닌가. 그래야 진정한 추모가 된다. 서둘러 봉합하고 망각을 강요하여 이뤄지는 관제 추모는 추모가 아니다. 희생자를 두 번 죽이는 짓이다.

그런데도 책임 묻기를 정치 선동이라 몰아간다면, 나는 차라리 그 선동을 계속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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