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덕정 전경. (사진=신동원 제공)
관덕정 전경. (사진=신동원 제공)

 

며칠 후면 102주년 3·1절입니다. 최근 한 외국대학교 교수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왜곡된 논문을 발표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일제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만세운동을 벌였던 3·1의 의미를 새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조금 가벼운 분위기로 돌아와서 올해 3·1절은 월요일입니다. 국가 공휴일인 3·1절이 더욱 은혜롭게(?) 다가오는 또 다른 이유입니다. 근데 그거 아시나요? 3·1절은 제주4·3과도 깊은 관계가 있는 날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의 방아쇠를 당긴 것이 사라예보의 총성이었다면, 제주4·3의 도화선이 된 것은 관덕정의 총성이었습니다. 이날이 1947년 3월 1일, 바로 제28주년 3·1절 기념대회가 열린 날이었습니다. 

저는 수많은 시민들과 함께 길거리로 나왔던 경험이 두 번 정도 있습니다. 하나는 4강 신화를 썼던 2002년 월드컵 때였고, 다른 하나는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 촉구 촛불집회 때였습니다. 더 또렷이 기억에 남는 건 역시 촛불집회 때입니다. 1만 명이 넘는 인파가 제주시청 광장에 모여 각자 꿈꾸는 나라에 대해 말하기도 하고 노래도 부르다가 길거리를 행진했던 그 경험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강요배 작가의 3.1대시위(1991).
강요배 작가의 3.1대시위(1991).

그렇다면 74년 전 3·1절 행사는 어떠하였을까요? 기념식은 제주북초등학교(당시 북국민학교)에서 열렸는데, 무려 3만여명이 참여했다고 합니다. 당시 제주 인구가 28만 명 내외였다고 하니까 촛불집회와 비교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념식에 참여했는지 유추해 볼 수 있을 듯합니다. 

이들은 북초등학교에서 기념식을 열고 동쪽과 서쪽으로 나눠 시위를 전개했습니다. 그런데 서쪽 행렬이 관덕정 앞을 지날 때 어린아이가 기마경찰의 말발굽의 치이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이 경찰은 아무 조치도 없이 지나치려 했습니다. 이에 격분한 군중들이 거세게 항의했고 경찰은 실탄을 발사해 6명이 죽고 8명이 다치게 됩니다. 

바로 이 일이 제주도민 95%가 동참한 3·10 민관총파업으로 번지고 미군정이 이를 강경하게 진압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형국이 되어버리게 된 것이죠. 결국 이듬해 4월에 4·3이 발발하게 됩니다.

물론 단순히 이날 단 하루의 사건이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건을 결정지었다고 보긴 어려울 것입니다. 오히려 항쟁의 기저에는 해방 이후 한강 이남을 점령한 미군정의 거듭된 실정(失政)이 있었습니다. 대흉년과 해방 후 귀향민 증가에 따른 식량 부족 상황에서 미군정의 미곡정책 실패는 민생을 신음하게 했습니다. 

친일 경찰들은 친미주의자 제복으로 갈아입고 다시 고위직에 등용됐죠. 미군정의 부정부패도 민중들의 분노에 불을 지폈습니다. 이렇듯 여러 요인이 얽힌 상황에서 3·1절 발포사건이 터진 것입니다.      

관덕정 전경. (사진=신동원 제공)
관덕정 전경. (사진=신동원 제공)

조선 세종 때 건립된 관덕정은 현재 제주도 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꼽힙니다. 원래는 병사들을 훈련시킬 목적으로 지어졌다고 합니다. 수백 년 동안 여러 차례 중·개축되었지요. 일제강점기인 1924년에는 일제가 15척 이상 나온 처마를 2척 이상 잘라 외형이 크게 손상이 되었다고도 합니다. 해방 직후 관덕정은 새 나라를 꿈꾸던 건국준비원회청년동맹의 사무실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무장대 이덕구 사령관의 시신이 걸린 곳도 이곳입니다. 

제주시 원도심 골목 이곳저곳을 구경하다가 관덕정 안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은 제 즐거움 중 하나입니다. 여유가 된다면 올해 3·1절에는 관덕정 주위를 거닐며 그날의 함성을 상상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74년 전 3·1절 당시 민중들이 염원했던 나라의 모습을 담은 민주주의민족전선의 ‘건국5칙’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건국5칙》
-기업가와 노동자가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세우자!
-지주와 농민이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세우자! 
-여자의 권리가 남자와 같이 되는 나라를 세우자!
-청년의 힘으로 움직이는 나라를 세우자! 
-학생이 안심하고 공부할 수 있는 나라를 세우자!

 

민주주의민족전선 건국5칙. (사진=김종민 전 4·3중앙위원회 전문위원)
민주주의민족전선 건국5칙. (사진=김종민 전 4·3중앙위원회 전문위원)

 

신동원.
신동원.

 

신동원. 
비생산적인 지식이 정말 재밌는 지식이라고 생각하는 청년. 철학과 자연과학 등 다방면에 관심이 있다. 남에게 웃음을 주는 사람을 동경한다. 지금은 비영리단체 ‘제주다크투어’에 적을 두고 있다. 다크투어란 전쟁이나 테러, 재난 등 비극적 역사 현장을 찾아 성찰을 얻는 여행이다. 제주에는 신축항쟁, 일제강점기, 4·3 등과 관련한 유적이 600~800곳에 이른다. 매달 한 차례에 걸쳐 아프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야기를 품은 곳들을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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