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만개한 도두봉 중턱. (사진=신동원 제공)
벚꽃이 만개한 도두봉 중턱. (사진=신동원 제공)

저는 집 근처 용담 해안도로에서 달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용담에서 서쪽으로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나지막한 봉우리가 나옵니다. 바로 도두봉이라는 곳인데요. 높이가 만만해 아버지와 자주 찾는 오름직한 동산입니다. 

봄철이면 벚꽃이 만개해 장관을 이루기도 합니다. 봉우리 중턱에는 소소한 운동기구들이 설치되어 있어 관광지라기보다는 동네 뒷산이나 약수터 같은 느낌을 풍깁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산책을 하거나 운동기구를 돌리던 이곳에 어느 날부턴가 젊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심지어 줄까지 서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맛집도 없는 봉우리 정상에 줄이 생기다니. 제가 또 궁금한 건 못 참아서 무슨 일인가하고 알아봤더니 글쎄 봉우리 꼭대기 부근에 작은 숲터널이 인스타그램 포토존으로 유명해진 것이었습니다.

터널 모양이 동명의 초콜릿 제품과 비슷하다고 해서 ‘키세스존’이라 불린다고 합니다. 얘기를 듣고 보니 나무로 우거진 터널과 그 뒤로 펼쳐진 바다 전경이 멋지게 보였습니다.

도두봉 정산 부근 '키세스존'. (사진=신동원 제공)
도두봉 정산 부근 '키세스존'. (사진=신동원 제공)

#삐라 갖고 있다고 참수 

‘키세스존’이 있는 도두봉 정상에서 73년 전 4·3 당시 민간인 학살이 자행되었다고 하는데요. 아마 대부분 처음 들어보셨을 거예요. 사실 저도 이런 사실을 몰랐었다가 최근에 자료 정리를 하면서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자주 가던 산책로여서 더욱 놀랐습니다. 제민일보 4·3취재반이 쓴 <4·3은 말한다> 3권을 보면, 당시 이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제주시 가장 북쪽에 위치한 도두마을은 좌·우익청년단이 첨예하게 대립하며 긴장 상황이 이어지는 부락이었습니다. 4·3이 발발하고 5·10 선거가 불발되면서 분위기가 한층 흉흉해지던 1948년 5월 20일, 급기야 경찰과 서북청년단 등으로 이뤄진 토벌대가 도두봉에서 주민들을 학살한 이른바 ‘도두봉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사건이 처음 일어난 때는 이날 오후 1시쯤이었습니다. 토벌대 100여 명이 지금의 사수동인 도두2구를 급습하고, 이어 도두1구를 덮쳤습니다. 토벌대는 도망가는 주민들을 향해 총격을 가했고 숨어 있는 주민들을 찾아내 취조도 없이 발포했습니다. 이날 숨진 것으로 확인된 사람은 총 5명입니다. 희생자 중 1명은 주머니에서 삐라(전단)가 나왔다는 이유로 도두봉에 끌려가 참수를 당했습니다. 

당시 국민학생의 나이로 학살 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분의 증언에 따르면 참수를 당한 희생자는 담배를 말아 피우기 위해 종이로 삐라를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주장은 묵살되었죠.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삐라를 갖고 있다는 이유가 재판도 없이 살해당해야 했을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도두봉 정상에서 바라본 제주국제공항 전경. (사진=신동원 제공)
도두봉 정상에서 바라본 제주국제공항 전경. (사진=신동원 제공)

#칼로 난도질하고 총으로 쏘고…

같은 날 비극은 또 일어납니다. 학살이 벌어지던 당시 도두 앞바다에서 오징어를 잡던 배가 표적이 된 것입니다. 원래 토벌대는 이날 자신들이 마을을 습격할 때 이 사실을 주민들에게 알린 소년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는데요. 결국 허탕을 치고 맙니다. 

이에 대한 화풀이인지 토벌대는 도두 앞 바다에서 오징어잡이 어선 2척에 공포(空砲)를 쏘아 뭍에 배를 대도록 강제했습니다. 겁에 질린 어부들이 오징어를 갖다 바쳤으나 오징어를 먹던 토벌대는 돌연 어부 5명을 도두봉 중턱으로 끌고 가 학살했습니다. 

이때 희생된 사람 중 한 명은 등 뒤에 4발의 총탄이 박히고 칼로 난도질당한 뒤에도 숨이 붙어 있어 마을 주민들에 의해 집까지 옮겨졌으나 끝내 숨을 거뒀다고 합니다.

마을 주민들은 이 억울한 죽음에 대해 진정을 넣었으나, 토벌대는 희생자들에게 엉뚱한 혐의를 뒤집어씌우고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했다고 합니다. 한 증언자에 따르면 토벌대는 ‘도두리에서 배 타고 나가 이북에 무전치던 놈들을 잡았다’는 식으로 소문을 퍼트렸다고 합니다.        

도두봉 중턱에 남아있는 일제 진지동굴. (사진=신동원 제공)
도두봉 중턱에 남아있는 일제 진지동굴. (사진=신동원 제공)

#도두봉에 얽힌 다른 역사
 
도두봉에는 또 다른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바로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진지동굴인데요. 여전히 봉우리 중턱에 흉터처럼 남아 있습니다. 현재는 안전상의 이유로 입구를 막아 놓은 상태입니다. 산책로를 오르다 보면 중간에 일제 진지동굴을 볼 수 있는데요. 이 굴을 지나칠 때마다 오묘한 기분이 듭니다. 

이외에도 도두봉 정상에서는 제주국제공항이 한눈에 보입니다. 비행기를 자주 접하지 못한 분들이 활주로를 오가는 비행기를 보며 감탄하는 모습을 자주 봤습니다. 그런데 이 제주공항도 사실은 4·3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학살터입니다. 공항과 관련한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될 때 정식으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세계와 조우하는 것을 여행이라고 한다면, 일상처럼 마주하던 도두봉의 새로운 면을 보게 된 것도 여행이라 할 수 있을까요. 이번 여행은 어떠셨는지 모르겠네요. 너무 어두운 이야기만 해서 약간은 침울해지셨을까요. 좋아하는 장소를 더욱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우셨을까요. 

서두에 말씀드렸듯 도두봉은 만만한 동산입니다. 여유가 되신다면 도두봉을 오르면서 4·3 당시 이곳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신동원.
신동원.

신동원. 비생산적인 지식이 정말 재밌는 지식이라고 생각하는 청년. 철학과 자연과학 등 다방면에 관심이 있다. 남에게 웃음을 주는 사람을 동경한다. 지금은 비영리단체 ‘제주다크투어’에 적을 두고 있다. 다크투어란 전쟁이나 테러, 재난 등 비극적 역사 현장을 찾아 성찰을 얻는 여행이다. 제주에는 신축항쟁, 일제강점기, 4·3 등과 관련한 유적이 600~800곳에 이른다. 매달 한 차례에 걸쳐 아프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야기를 품은 곳들을 안내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