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깃돌 바위에 스며든 여신의 지문

하늘과 땅이 하나로 붙어 있었던 혼돈의 태초, 홀연히 나타난 엄청난 거인이 하늘을 떠받치고 땅을 떠밀며 갈라놓으니 틈이 크게 벌어지며 세상이 자리 잡을 공간이 만들어졌다. 이 거인을 일러 누군가는 도수문장이라고 부르고, 다른 누군가는 설문대라고 부르며 저마다 창조주를 찬양한다. 섬사람들이 말하는 창조주가 누구였든 세상을 만드는 일은 단숨에 만물을 지어낸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을 갈라놓는 빅뱅을 시작으로 해와 달과 뭇별을 만드는 단계로 이어졌다. 이렇게 우주가 만들어진 뒤에 비로소 대지와 만물을 빚어냈으며, 그 뒤에 사람을 비롯한 생명들을 탄생시켰다.

세상이 어느 정도 완성되었을 때 설문대는 망망한 바다 위에 섬 하나를 만들 작정을 했다. 바다를 휘저어 흙을 끌어 모아 섬과 산을 만들고 오름을 만들었다. 수많은 오름들을 징검다리처럼 디디며 걷는 걸음에서 분화구와 산정호수, 그리고 계곡과 연못들이 생겨났다. 이를 섬사람들은 설문대의 키 자랑이라는 이야기로 꾸려 기억 속에 저장했다. 신의 창조행위란 거룩하고 엄숙할 것이라 여기기 마련이지만 키 자랑이라는 말이 내비치는 것처럼 때때로 즐거운 놀이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창조가 놀이였다니. 그럴싸한 증거가 남아있었다. 물음표가 여장을 꾸려 찾아간 곳에는 과연 그 증거들이 있었다. 물어물어 찾아간 해안동의 무수천 계곡에서, 상가리의 고내오름자락에서, 애월리의 하물 줄기 끝에서 물음표는 덩치 큰 바윗돌들과 맞닥뜨렸다. 세 마을 토박이들의 귀를 타고 입을 거치며 전해오는 이야기에는 이 바위들 모두가 설문대의 공깃돌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이야기를 쫓아간 끝에 공깃돌과 만난 물음표는 바위의 표면을 매만졌다. 여신의 지문도 온기도 남았을 리 만무했지만 긴 세월 비바람이 새겨놓은 문양과 용암의 가쁜 숨결이 드나들던 현무암의 곰보 자국만으로도 전율이 일렁였다. 물음표의 손에 와 닿은 전율은 함께 데려온 의문부호 하나를 건네 왔다. ‘하필이면 공기놀이였을까?’

(사진=한진오 제공)
해안동 공깃돌 바위(사진=한진오 제공)

창조의 손짓 공기놀이

해안동, 상가리, 애월리에 남아 있는 설문대의 공깃돌 바위는 마치 선사시대의 고인돌이나 선돌 같은 모습을 보인다. 고인돌이나 선돌과 겉모습은 매우 닮았지만 뚜렷한 차이가 있다. 그것은 사람의 손을 탔느냐 안 탔느냐다. 알다시피 고인돌과 선돌은 선사인들이 만들어낸 거석문화의 산물이다. 커다란 바위를 굴려 무덤을 만들었는가 하면 기둥처럼 세워놓기도 하고, 줄을 맞춰 일정한 도형을 만들었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영국의 스톤헨지의 환상열석이나 프랑스 카르낙의 열석이 대표적인 선돌이다. 고인돌을 말하자면 고창과 화순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정도로 한반도는 고인돌의 왕국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옛사람들은 무슨 이유로 어렵사리 고인돌과 선돌을 세웠을까?

그 답은 주술적 사고에 있으며 설문대의 공깃돌 바위와 이어져있다. 인간이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의 존재가 있음을 깨달았던 먼 옛날, 그들은 보이지 않는 힘을 보이는 것에 덧씌워놓았다. 보이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을 둘러싼 자연이었다. 뿌리는 지하세계로 뻗어가고 몸통은 지상에 우뚝 서 있으며 줄기와 가지는 천상세계까지 닿아 세상 모든 곳을 관통하는 나무를 우주로 보았다. 하늘과 땅을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새를 보고 나무처럼 세상 모든 곳을 드나들 수 있는 놀라운 존재라며 숭배했다. 바위도 그런 존재 중 하나였다. 불길에 휩싸여도 타지 않고 비바람에도 끄떡없는 힘을 가진 대단한 존재였다. 더욱이 바위는 깊은 굴을 품고 있어서 사람들에게 보금자리를 선물하는 생명의 공간이기도 했다. 다시 말하면 자연 자체를 숭배하는 물활론에서 바위를 숭배하는 관념이 생겨난 것이다.

이러한 거석숭배는 시간이 흐르는 사이 자연물 자체가 아닌 초월적 존재가 세상을 조정하는 힘을 지녔다는 새로운 사고와 만나며 변화의 길목으로 접어들었다. 초월적인 신은 따로 있고 바위는 그 신의 영력이 담긴 창조물이라는 또 다른 생각의 길이었다. 이즈음에 이르러 사람들은 설문대 같은 신을 떠올렸으며 바위를 비롯한 자연에 그들의 신성한 권능이 깃들어 있다고 여기게 되었다. 바위에 신의 이야기를 붙여놓고 찬양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거룩한 신성이 깃든 바위를 통해 신과 만나려고 죽은 자의 무덤을 만들고 줄지어 세워놓고 바위기둥을 달력 삼아 신과 만나는 시간을 가늠하게 되었다. 고인돌이 신과 만나는 공간의 창조였다면 선돌은 신과 만나는 시간을 창조하는 주술적 행위였던 셈이다.

설문대의 사연을 그럴싸하게 증명하는 전설지 중에 바위가 많은 것도 거석숭배의 관념에서 유래한 것이며 그만큼이나 오래된 선사의 신앙이라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 해안동, 상가리, 애월리의 공깃돌도 거석숭배에서 비롯된 것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물음표의 질문처럼 하필이면 공깃돌일까 하는 점이 궁금해진다. 해답은 공기놀이 자체에 깃들어있다. 공기놀이는 몇 개의 공깃돌을 갖고 노느냐에 따라 다양한 방식이 있다. 하지만 여러 방식을 관통하는 공통적인 점이 있으니, 겨루기를 벌여 단계를 거칠 때마다 매기는 점수를 헤아릴 때 ‘몇 년’, ‘몇 살’ 등의 용어를 사용해 시간을 대입시킨다는 사실이다. 공기놀이란 것이 시간을 만들어가는 놀이인 셈이다. 커다란 바위를 공깃돌 다루듯 이리저리 내던지며 제주섬이라는 공간을 만들고 또한 한 해 두 해 시간까지 엮어내는 창조의 놀이라고 절묘하게 풀이한 것이다. 이렇게 설문대의 저 바위들은 공깃돌이라는 이름을 얻어 시간과 공간 창조의 상징물이 되었다. 

사라져가는 창조주의 자취

제주섬이라는 우주의 시공간을 만들어낸 설문대의 창조놀이를 상징하는 공깃돌들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까? 제주시내와 애월읍을 가르는 무수천 계곡에 있는 해안동 공깃돌 바위는 육중한 위용을 내보이며 높다란 곳에 앉아있다. 둥그런 모양을 보면 거대한 손으로 집어 들기에 안성맞춤인 공깃돌답다. 무수천 다리 위아래로 꿈틀대는 계곡을 따라 광령팔경이라는 명소들이 줄줄이 포진해 있는데 그 중 한 곳인 청와옥이 채 100미터도 안 되는 지척에 있으며, 우선문이라고 불리는 창곰돌레도 멀지 않다. 아쉬운 점은 무수천 다리 곁의 안내판에 광령팔경은 또박또박 설명되어 있는데 공깃돌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다리 가까이 있어서 쉽게 보이는 데도 말이다.

(사진=한진오 제공)
상가리 공깃돌 바위(사진=한진오 제공)

상가리 공깃돌은 고내오름자락의 도로변에 있다. 애월리와 상가리를 잇는 도로의 마지막 커브길 한가운데 집채만 한 바위 다섯이 줄지어 선 모습이다. 급커브로 아찔한 도로 한복판에 안전구조물처럼 줄지어 선 모습은 아무래도 부자연스러운 인상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공깃돌들은 애초부터 이 자리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워낙 공깃돌 바위들은 고내오름 등성이에 있었는데 도로가 생겨날 당시 오름이 깎이며 길 주변에 나뒹구는 신세가 되었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상가리 청년들이 나서서 지금의 자리에 세워놓기에 이른 것이다. 설문대의 신성을 기리는 마음이 공깃돌 바위들을 살려냈지만 다소 아쉬운 점은 도로 한복판에 놓였다는 점이다. 내력에 대한 안내문조차 없어서 이 길을 지나는 사람들은 급커브길의 안전장치로만 여길 것만 같은 인상이다.

(사진=한진오 제공)
애월리 공깃돌 바위(사진=한진오 제공)

애월리 공깃돌은 마을 안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다. 토박이들의 말에 의하면 상가리처럼 다섯 덩이가 있었는데 도로공사를 비롯한 각종 마을개발이 일어나며 하나둘 자취를 감춰서 둘 뿐이다. 하나는 애월리사무소 앞마당에 있고, 다른 하나는 애월초등학교 교정에 남아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개인 주택 안에 하나가 더 남아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몇 개가 남아있던지 이 곳 역시 설문대의 공깃돌 바위라는 해설은 전혀 없다. 

이처럼 세 마을에 남아있는 설문대의 공깃돌 바위들은 오늘날 제주가 처한 현실은 단적으로 드러낸다. 앞만 돌진해온 개발지상주의가 이제 기후위기의 티핑포인트를 목전에 둔 오늘, 여전히 우리는 옛사람들의 황당무계한 이야기라고 여겨 설문대를 찾지 않는다. 저 공깃돌 바위를 움켜쥔 거대한 손이 다시 한번 천지개벽을 일으키지나 않는 한.

굿 퍼포먼스 전 마음을 가다듬고 있는 한진오.(사진=김재훈 기자)
한진오

한진오는 제주도굿에 빠져 탈장르 창작활동을 벌이는 작가다. 스스로 ‘제주가 낳고 세계가 버린 딴따라 무허가 인간문화재’라고 너스레를 떤다. 그는 자신의 탈장르 창작 활동에는 굿의 ‘비결정성’과 ‘주술적 사실주의’가 관통한다고 소개한다. 저서로 제주신화 담론집 ‘모든 것의 처음, 신화’(한그루, 2019), 희곡집 ‘사라진 것들의 미래’(걷는사람, 2020)가 있고 공저로 ‘이용옥 심방 본풀이’(보고사, 2009) 등 다수가 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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