뎅유지. (사진=송기남 제공)
뎅유지. (사진=송기남 제공)

‘뎅유지’라 하면 당유자를 가리키는 제주말이다. 당나라에서 건너왔다 하여 ‘당유자’라 하는데 제주사람들의 발음상 ‘뎅유지’가 됐다. 나무는 운향과 식물이며 어린 나뭇가지에는 날카롭고 단단한 가시가 있다. 

오랜 옛날부터 제주도 민가에서 한두 그루씩 재배해오고 있으나 최근에는 거의 멸종되다시피 재배를 하지 않는다. 1970년대까지도 제주도 농가에는 보통 너덧 집 건너서 한 집꼴로 한두그루의 뎅유지 나무가 있어서 동네서는 서로 필요한 집에 몇 개씩 나눠주던 인심 과일이다. 

뎅유지는 귤 종류 중에도 껍질이 가장 두꺼우며 신맛이 최고 강한 과일이다. 한번 먹어본 사람은 보기만 하여도 잇몸에서 신물이 줄줄 흐르게 하는 식초처럼 신맛이 강한 열매다. 껍질은 두껍고 단단하여 손톱으로 벗길 수 없고 칼로 꼭지 부분을 한번 잘라내고 돌아가며 세로로 칼집을 내어 벗기면 쉽게 벗겨진다.

속살은 다른 귤처럼 단단하지 못하여 쉽게 터지면서 물이 줄줄 흐르게 되므로 넓은 접시를 받혀서 손질을 해야 한다. 껍질이 약재이므로 곰팡이가 피지 않도록 여러 날 잘 말려서 딱딱해질 때까지 마르면 밀봉이 잘되는 통에 담아 보관했다가 약재로 쓰거나 차로 끓여 마시면 좋다.

시중에 나오는 일반 유자는 크기도 작고 인위적으로 품종을 개량해서 만들어졌지만 뎅유지는 전혀 다른 품종으로서 크기는 한라봉보다 더 크고 껍질이 우락부락하며 번식은 씨앗 번식을 하는데 요즘은 탱자나무나 다른 귤나무에 접을 붙여 만들어낸 것들이 많아서 옛날 원종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

뎅유지. (사진=송기남 제공)
뎅유지 나무. (사진=송기남 제공)

원종이 아닌 것은 씨앗을 심어 나무가 자라도 열매를 맺지 않는 것이 있으므로 씨앗 번식은 100년 전이나 200년 전 옛날 품종이라야 열매를 수확할 수가 있다. 우리에게 토종 종자가 얼마나 소중히 지켜야 할 자원인지를 일깨워주고 있다.

품종을 개량하지 않은 원종일수록 병해충에 강하기 때문에 농약을 치지 않고 재배할 수 있다. 특히나 껍질을 약재로 쓰는 뎅유지는 바람에 열매가 상처를 잘 입어서 껍질에 일부 흠이 있어도 농약을 쓰지 않아 제대로 약이 된다.

옛날 내가 어린 시절 자라던 동네에는 귀막은 하루방(귀가 어두운 영감님)네집을 비롯하여 20여 가구가 살았다. 동네 안에는 네 집에 다섯 그루의 뎅유지나무가 있었다. 겨울철이면 아이들이 감기를 달고 살았다. 아이들이 콧물을 흘리고 기침을 콜록거리면 어머니들은 뎅유지가 있는 집에 가서 몇개 얻어다가 감기약을 달였다. 

보통 뎅유지 껍질과 곶감, 쪽파 뿌리, 배, 생강 등을 넣고 달여 주셨는데 배와 대추와 곶감이 들어가서 맛이 달았다. 감기가 다 나아도 가끔 뎅유지 감기약이 먹고 싶으면 어머니 앞에서 일부러 기침을 해가면서 감기에 걸렸다고 울어버리곤 했다. 어머니는 자식이 뭔지 그렇게 약을 달여주곤 했었다. 지금도 감기 기운이 있으면 옛날 어머니가 해주시던 민초의학을 기억하면서 곶감, 대추, 배, 생강, 계피, 뎅유지 껍질을 넣고 달여서 종합 감기약으로 처방한다.

당나라에서 왔다는 당유자가 제주말에서 ‘뎅유지’ 또는 ‘뎅우지’로 불리고 있는데 어느 말이 진짜 제주말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어렸을 때 외할머니가 치아가 모두 빠져 ‘뎅유지’의 ‘유’ 발음이 안 돼 ‘뎅우지’라고 발음했다. 

뎅유지. (사진=송기남 제공)
뎅유지. (사진=송기남 제공)

그때 어머니는 뎅유지를 얻어다가 할머니한테 보이면서 “뎅유지 3개 서녘집이서 빌어와수다”고 하셨다. 그러니 나의 경험상으로는 치아가 온전하셨던 어머니는 ‘뎅유지’라, 치아가 없는 외할머니는 ‘뎅우지’라고 부른 것으로 보인다.

나의 외할머니 김해김씨 김회수께선 1970년 풋보리 이삭이 막 피어오르는 4월에 돌아가셨으니 그로부터 두 번의 겨울 전이었나. 나는 1961년 늦가을 생인데 그때 내 나이는 일곱여덟살쯤일 것이다.

당나라 시대와 탐라국 시대는 연대 차이가 너무 커서 시기적으로 교류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후에 탐라시대나 조선시대에 제주에 유입되어 재배된 것이라면 그 묘목을 처음 가져온 누군가는 당나라에서 나던 것이라고 전하지 않았을까.

예전 우리나라 민간인들에겐 중국이 당나라로 오래도록 각인이 됐을 것이다. 그래서 중국이 명나라나 청나라였던 조선시대 민간인이 중국을 가리킬 때 당나라로 불렀던 게 아닐까. 그래서 지금까지 제주에 ‘뎅유지’라는 이름이 남아있는 게 아닐까.   

옛 사람들은 목관이나 현감, 판관 등 벼슬 감투를 쓰게 되면 ‘유지’라 하였는데 제주에서는 흔히 볼 수있는 뎅유지에 빚대어 뎅유지라 농담반 진담반, 놀림반 진심반 한다.

그러고 보니 제주도는 넘쳐나는 관광객들과 부동산 투기 개발로 인하여 공기오염, 쓰레기오염, 지하수오염, 매립장부족, 농지부족, 산림자원 부족 사태까지 부르게 될 종합 감기 질병에 걸려있다. 올해 6월 1일 ‘뎅유지’를 잘 선택해 제주를 치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

송기남.
송기남.

서귀포시 중문동에서 출생
제민일보 서귀포 지국장 역임
서귀포시 농민회 초대 부회장역임
전농 조천읍 농민회 회장 역임
제주 새별문학회 회원
제주 자연과 역사 생태해설사로 활동중
제주 자연 식물이야기 현재 집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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