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고사리. (사진=송기남)
땅에서 올라오는 아기고사리. (사진=송기남)

고사리과 식물은 지구상에 그 종류도 어마무시하게 많으며 지구에 살아온 역사도 놀라울 만큼 긴 세월을 자랑한다. 3억 6000만년 세월을 지구에서 변화무쌍한 지질 운동과 반복되는 빙하기와 해빙기를 지켜보며 살아남은 원시식물이다.

고사리과 식물들은 꽃을 피우지 않거나 꽃을 피우는 종류 중에도 열매를 맺지 않고 씨앗을 퍼뜨리며 번식한다. 이것은 지구상에 날아다니는 곤충들이 나타나기 훨씬 전에 탄생한 식물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 본능을 가지고 나와 지금까지 진화하지 않고도 충분히 번식하여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세계에 1만2000여종이나 되는 양치 식물류 중에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고사리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많지 않다. 그럼에도 전 세계에 자생하는 고사리를 먹어보는 실험(?)을 했다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죽어보지 않아도 죽음은 삶의 끝이라는 걸 누구나 알고 있듯이 초식동물이나 벌레들조차 굶어 죽어도 먹지 않는 양치식물들을 인간이 목숨 실험용으로 먹어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야생채소로 먹는 고사리에는 시안(cn)이라는 독소가 들어있어서 이것을 생풀로는 그냥 먹을 수도 없다. 고사리의 독은 초벌로 익혀서도 남아있으므로 찬물에 한나절쯤 담가놓고 독을 우려낸 뒤 다시 조리해서 먹어야 한다. 단 삶아서 건조할 것은 찬물에 담그지 않아도 된다.

고사리 장아찌. (사진=송기남)
고사리 장아찌. (사진=송기남)

특히 어린 고사리에 시안(cn)이라는 독이 아주 강하다. 그래서 제주사람들은 고사리를 꺾으면 반드시 고사리 어린순을 손바닥에서 문질러 털어버리고 줄기만을 채소로 먹는데 이걸 ‘고사리 손보빈다’라고 했다. 어린 고사리의 돌돌 말린 이파리가 독이 강하다는 걸 모르는 분들은 고스란히 말린 것을 선호한다.

옛날 제주사람들은 손을 보벼 털어내고 말린 고사리는 손을 털어내지 않고 말린 고사리에 비해 가격이 1.5배 정도 비싸게 거래를 했었다. 이것은 고사리손을 털어내는 데 수고로움과 무게가 줄어드는 만큼의 가격을 더 보장해주는 것이다.

제주에 할머니들은 고사리를 채취할 때보면 매번 한 줌씩 꺾을 때마다 머리 부분을 가지런히 맞춰서 손바닥에 대고 시계방향으로 빙빙 돌리면서 손을 보벼낸다. 이것을 이해 못하고 이파리째 그대로 먹는 도시 소비자들에게 우리 할머니들은 “그사람들 멍챙이들”이라고 비웃기도 하셨다.

나중에 도시사람들을 자주 접하면서 알게 되고는 판매용 고사리와 가족소비용 고사리를 구분하여 말려둔다. 제사용으로 채취할 때는 손을 보벼버리고 품질도 최고 좋은 것으로 장만해서 보관해둔다.

냉동 고사리. (사진=송기남)
삶아서 냉동한 고사리. (사진=송기남)

‘고사리밭은 씨어멍 메노리 간에도 안 골아준다(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도 안 알려준다)’는 말이 있다. 고사리는 고부간이 다툴 정도로 봄철 제주사람들은 중요하게 치루는 행사이기 때문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같이 고사리 꺾으러 가서도 돌아올 때 채취한 것을 서로가 비교해가며 시어머니는 며느리것이 많아보이고 며느리는 시어머니것이 많아 보여 배가 아플 지경이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보다 많이 꺾으면 며느리한테서 기가 살아 우쭐해지고 며느리가 많이 꺾었으면 시어머니한테서 기가 살아 며느리가 우쭐해진다.

고사리철이 되어 전날쯤 비라도 촉촉이 내리는 날이면 시골에 여인들은 그날 밤부터 잠을 이루지 못한다. 1970년대의 제주도 시골에서는 새벽닭 우는 시간에 밥을 지어먹고 보리밥 도시락을 챙겨 작은 보자기에 싸서 구덕에 담는다.

어림잡아 집에서 약 2킬로미터쯤 떨어진 들로 산으로 캄캄한 새벽길을 나선다. 도로포장이 안됐던 시절 자갈길을 한참 걷다 보면 먼동이 지평선에 눈부셔 오기 시작하고 전날 밤 내린 비에 풀밭은 참이슬이 그렁그렁하다. 얼추 한 시간쯤 꺾노라면 뒤따라 올라오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왁자왁자 해진다(떠들썩해진다).

고사리를 꺾으러 다니다가 숲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거나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고사리가 많이 나는 곳을 발견하면 욕심이 생긴다. 같이 간 일행들이 불러도 대답 없이 혼자 다 꺾겠다고 오로지 고사리만 보면서 꺾는다.

바로 근처 보이지 않는 곳에서 꺾는 줄도 모르고 일행들은 친구를 찾아 먼 곳으로 이동해버린다. 이때 그곳에 있는 고사리를 모두 다 꺾고 주위를 둘러보면 아무도 없고 혼자 남아있게 된다. 산속에서 당황하다 보니 동서남북 방향감각마저 혼동하게 된다.

겁이 많거나 치매증세가 조금이라도 있는 노인분들이라면 위험에 빠질 수가 있다. 그래서 고사리를 꺾을 때는 함께 간 벗들에게 중간중간 불러서 멀리 떨어지지 않도록 확인하는 것이 사고 예방을 위해 좋다.

※고사리 이야기는 다음 편에도 이어집니다.

송기남.
송기남.

서귀포시 중문동에서 출생
제민일보 서귀포 지국장 역임
서귀포시 농민회 초대 부회장역임
전농 조천읍 농민회 회장 역임
제주 새별문학회 회원
제주 자연과 역사 생태해설사로 활동중
제주 자연 식물이야기 현재 집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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