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국제자유도시라는 신자유주의 정책 실험장이 된 제주. 제주의 현실은 주류사회가 추구해온 미래 모습이 아닐까? 청년들이 바라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제주투데이는 제주 청년 보배와 육지 청년 혜미가 나누는 편지를 통해 그동안 주류사회가 답하지 못한 자리에서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제주대안연구공동체 협력으로 진행되는 [보혜미안편지]는 음악·영화·책 등 다양한 텍스트를 중심으로 10회 연재된다. 이들이 끌고온 질문에 우리 사회가 책임있는 답을 하길 바라며. <편집자주>

보배님 안녕하신가요. 저는 코로나에 걸려 일주일을 넘게 앓고 있네요. 격리해제가 되어도 꽤 후유증이 길게 가는 것 같아요. 젊을수록 안 아프다고 하는 건 분명! 잘못된 정보인 것 같아요. 보배님은 아직 코로나를 만나지 않으셨다면 평생 거리두시기를 바랍니다.

일주일동안 보배님이 지난 편지에서 이야기하신 ‘소년심판’을 잘 봤어요. 덕분에 심심하지 않았네요. 말씀하신대로 정말 잘 만든 드라마더라고요. 

촉법소년 문제를 다루는 것을 넘어서서 그간 한국 사회에서 부조리하고 부정의했던 일들을 연상하게 하는 일화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저는 특히 ‘고위공직자 자녀들 대상 시험지 유출 사건’에 대해 풀어낸 6~7화가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사과하고 반성하는 어른을 아주 오랜만에 본 것 같달까요. 

그렇게 ‘소년심판’에 몰입해서 보다보니, 역설적으로 정치의 역할에 대해서 더 고민이 되더라구요. 분명 드라마는 사법부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말이에요. 곧 대통령이 되실 분이 검사출신이라 그랬을까요. 그러나 비슷한 법복을 입었던 윤석열 당선자는 소년심판 속 법조인들과 생각이 많이 다른가봐요. 유행하는 미디어는 보통 현실을 반영한다고 하는데, 우리 정치는 어떤 현실을 보고 있는 것일까요. 

이런 의미에서 저는 오늘 영화 <킹메이커> 얘기를 하고 싶어요. 김대중 영화로도 유명하죠. 

영화를 보며 정치인의 ‘말’과 좋은 정치가, 지도자 옆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에 대해 생각했어요. 영화 속엔 정치인 김운범과 그를 지지하는 전략 참모 서창대가 나옵니다. 이미 김운범은 네 번 낙선한 이력이 있는 사람이었고, 그의 말과 신념은 분명 옳고 대단했으나 사람들은 늘 ‘빨갱이' 라고 부르며 그에게 투표하지 않습니다. 한편 그의 지역구에 살던 서창대가 김운범의 연설을 듣고 그를 찾아가 ‘세상 바뀌는 꼴'을 보고 싶다며 돕겠다 말합니다. 

그런데 둘은 참 달랐습니다. 김운범은 시민들과 유권자들을 설득하려 할 때, 서창대는 늘 ‘이기는 것' 에 집중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지요. 덕분에 김운범은 몇 번의 선거에서 승리하기도 하지만, ‘대통령 선거’ 라는 어쩌면 가장 큰 선거를 두고, 불미스러운 폭발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러면서 둘은 헤어지게 됩니다. 서창대는 김운범을 대통령을 만들지 못했지만, 결국 김운범은 대통령이 되는 결말입니다. ‘서창대’ 없이 말이죠. 국민을 향한 그의 진심이 통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묘수보다는요.

작금의 한국정치를 돌아보게 만듭니다. 이제 선거에서 ‘감동적인' 정치 연설은 듣기 정말 어렵지 않나요. 분명한 세상의 비전을 품은 정치가의 언어를 듣던 사람들은 아마 지금의 정치가 신물날 것 같단 생각도 해요. ‘이기기’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비판을 넘은 비방과 갈라치기가 난무하는 토론회에서 더 나은 사회를 상상하기란 정말 어렵잖아요.

‘이기기 위해’ 나온 공약이 저는 ‘여성가족부 폐지'와 ‘청와대 집무실 이전'이었다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여성 권리에 대한 사회적 적대감을 만들고, ‘대통령제’에 대한 숙고를 막는 그 공약들이 세상에 어떤 긍정적 변화를 줄 수 있을까요. 또한 그 옆에서 그런 정치를 부추기던 것이, 같은 정당 대표였다는 사실도 우울합니다. 결국 감동있는 정치인의 말과 약속이 유실된 자리에, 무엇이 남은 걸까요. 

영화가 끝으로 가면 지금 한국의 ‘지역주의' 원인에 대해서 풀어냅니다. 호남과 경상도 간의 지역 감정이 결국 1971년 대선에서 시작됐다고 영화는 말해요. 국민의힘 이준석 당대표의 혐오정치가 ‘젠더갈등’을 촉발시켰다는 평가를 인정하기 어려운 것처럼, 저는 이 결말에 동의하긴 어렵습니다. 보배님 지난 편지 제목처럼 ‘구조적 문제를 고민하지 않는 죽은 정치’가 남긴 프레임일 뿐이니까요.

하지만 정치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기는 하더라구요. 제주 4·3도 같은 맥락에서 떠올랐고요. 어떤 정치 약속과 어떤 정치 언어가 사회에 존재하느냐가 유권자와 시민의 사고와 선택에 많은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대선이 끝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곧바로 지방선거가 시작되며 또다시 정치인들은 수많은 약속을 걸겠지요. 그 약속의 말들이 진정성뿐만 아니라 품격을 찾기를. 정치의 본령은 결국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니까요. 

김혜미

2022년 마지막 이십대를 보내는 사람. 활동가와 사회복지사 두가지 정체성을 끌어안고 사는 사람. 평소엔 '파이리'나 불의를 보면 '리자몽(입에서 불 뿜음)'으로 변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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