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국제자유도시라는 신자유주의 정책 실험장이 된 제주. 제주의 현실은 주류사회가 추구해온 미래 모습이 아닐까? 청년들이 바라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제주투데이는 제주 청년 보배와 육지 청년 혜미가 나누는 편지를 통해 그동안 주류사회가 답하지 못한 자리에서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제주대안연구공동체 협력으로 진행되는 [보혜미안편지]는 음악·영화·책 등 다양한 텍스트를 중심으로 10회 연재된다. 이들이 끌고온 질문에 우리 사회가 책임있는 답을 하길 바라며. <편집자주>

혜미님, 서로 편지를 주고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마지막 편지군요.

바쁜 시간을 보내면서도 편지를 받고, 또 쓸 때마다 쉽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다시 한번 생각들을 가담을 수 있어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시인 고정희님의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를 마지막 편지에서 읽으니,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우리의 편지가 여기서 끝을 맺지만, 그 과정에 담긴 우리의 고민들은 어떻게 될까. 충분히 고민을 남겼나 아쉬움이 남기도 합니다. 부족한 생각의 나눔일 수 있지만 어떻게든 여백이 남아 변화로, 아니 또 다른 고민으로 사람들 마음에 남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곳곳에서 유세가 펼쳐지고,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문자가 날라오고, SNS엔 선거 정보가 끝없이 담벼락을 장식하고 있네요. 한없이 뜨거운 시간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또 공허하기도 합니다. 과연 이 시간이 어떤 변화를 만들지, 아니 변화는커녕 오히려 퇴보하지는 않을지 확신할 수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분명히 이 시간 속에서 누군가는 사람을, 공약을, 정당을, 문제의식을 기억하겠죠. 그리고 또 다른 변화의 시간을 기다릴 것입니다.

쫓겨나고 사라지는 것들을 붙잡는다는 말이 안타깝기도 했지만 그러한 사람들이 남아 또 다른 씨앗을 남기고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꽃이 진다고 해도 잊히는 것은 아닐 테니까요.

그런 의미로 마지막으로 이해인 시인의 산문집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를 추천합니다. 다양한 수필과 시들이 담겨 있지만 그 중에서도 ‘잎사귀 명상’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편지도 끝이 아닌 또 다른 발견이고, 시작이길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꽃이 지고 나면
비로소 잎사귀가 보인다
잎 가장자리 모양도
잎맥의 모양도
꽃보다 아름다운
시가 되어 살아온다

둥글게 길쭉하게
뾰족하게 넓적하게

내가 사귄 사람들의
서로 다른 얼굴이
나무 위에서 웃고 있다

마주나기잎 어긋나기잎
돌려나기잎 무리지어나기잎

내가 사랑한 사람들의
서로 다른 운명이
삶이 나무 위에 무성하다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강보배

전국을 노마드처럼 다니며 청년을 연결하는 제주 토박이. 회사 상무님들이 무서워한다는 90년 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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