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은 250평이라 했고 내가 보기엔 100평 정도로 보였고, 지나가는 사람은 150평 정도는 되어 보인다고 했다. 조그맣지만 알차게 농사지을 수 있는 맞춤한 곳에 올봄부터 여름까지 토종 먹골참외 농사를 지었다.
이제 막 수확을 마무리하고 다음 농사를 준비하고 있다. 대부분의 무경운·무투입·자연재배방식으로 경작하는 나의 밭은 100평 내외의 조그만 밭이다. 주위 사람들을 통해 얻었고 별다른 계약서도 없이 대부분 임대로도 따로 없이 빌려서 경작하고 있다.
정식을 5월 중순 경에 했고 얼마 전에 수확을 마무리하여 이제 쪽파를 심으려고 막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무경운으로 계속 농사지으려고 며칠 전 그 뜨거운 태양 아래 두둑을 만들다 다 못하고 조금이라도 선선해지면 다시 하기로 하고 잠시 두고 있었다.
“올가을 농사도 지으시려구요?”
“아~ 네. 당연히!”
밭 주인과 전화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검질이 무성할 밭이 신경 쓰였다. (참외 농사 중에 옆밭 삼촌에게 풀씨가 당신 밭으로 날아들어 온다면서 풀을 빨리 뽑으라는 말씀을 들었던 터라.) 주인의 눈에 밭에서 자라는 풀들이 거슬렸을 것 같아서 “아이구 어쩌지요? 풀이 무성했을 텐데”라고 걱정했더니 “한번 갈아엎지요 뭐”라는 쿨한 대답이 돌아왔다.
무경운 농사를 짓겠노라고 말씀드렸었고, 그리하는 줄 아시는 분에게서 들으니 머리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다. 밭 주인은 제주살이 몇 개월 만에 적응이 빨라 텃밭을 일굴 수 있을 것 같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밭 주인이 직접 농사짓겠다 하시는데 무슨 수로 고집할 수 있으랴. 돌려드리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한참동안이나 멍했다. 아니 무슨 이런 경우가 다 있나? 1년도 아니고 불과 몇 개월 만에 밭을 돌려 달라 하다니….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어찌하리오. 주인이 달라는데. 밭을 빌릴 당시에 계약서를 썼어야 했다는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늦었음을 확인할 뿐!
농민으로 살아온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처음 겪는 일이다. 선배 여성농민 언니들에게 다종다양한 일들을 들어 간접경험은 많았었지만 직접 일을 겪고 나니 당장 쪽파를 심을 일이 걱정이었다. 쪽파 씨앗을 진작 꺼내두었고, 어머님의 손을 빌려 갈무리까지 야무지게 해 두었다.
오늘 내일 사이에 밭을 정리하고 쪽파 씨앗을 넣을 계획이었는데, 이제 쪽파를 어디에다 심어야 할지 고민하다 보니 나름 세워둔 작부 계획이 마구마구 틀어진다. 어디 새롭게 빌릴만한 데는 없을까? 양배추와 브로콜리 심을 곳이 조금 남으려나? 마늘 농사가 항상 어렵고 힘들던데 올해는 마늘을 조금 줄여볼까? 이런저런 생각에 머리가 복잡하다.
모래밭이지만 비료도 퇴비도 넣지 않고 하는 무투입 농사가 가능하다는 걸 확인하고는 쪽파 농사를 야무지게 지어 봐야겠다고 내심 부풀어 있었는데, 나의 꿈을 한순간에 싹둑 잘라 가져가 버리고 말았다.
살고 있는 집에서 나가라고 했을 때 이주민, 살고 있는 마을은 이제 없어질 테니 다른 동네에 가서 사세요. 나에게도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여기에서 이젠 제가 농사지을 거예요. 이제껏 제가 빌려드려서 고마웠지요?
계획했던 쪽파 파종을 할 수 있는 150평의 밭이 당장 내게는 필요하다. 어딘가에는 150평 아니 1500평 밭도 경작해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을 텐데. 리사무소에서 정보를 가지고 있을까? 동네 마당발을 찾아가는 게 빠를까? 아니면 동네 곳곳 경작이 되지 않는 땅을 찾아보고 소유자를 찾아 임대를 요청해 보는 것이 나을까?
농지은행에는 농지가 나와 있지 않다는 것쯤은 농민 4년 차에 이미 알았던 사실이다. 작년 참외농사가 산짐승의 피해를 입어 해안가 마을 가까운 곳의 농지를 얻었던 것인데 당장의 쪽파 농사도 걱정이지만 내년에 참외 농사를 지을 수 있을지도 걱정이다. 고작 150평 참외 농사를 지을 적당한 밭을 구하지 못한다면 내년에는 참외농사는 포기해야한다.
아~ 그래서,
맘 편히 농사지을 수 있는 토지가 있어야 한다는 거야. 농민에게는.
전업농이 된 지 4년 차. 농민으로 살면서 느끼는 일상을 가볍게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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