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트롯2’. (사진=TV조선 방송 화면 갈무리)
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트롯2’. (사진=TV조선 방송 화면 갈무리)

트로트가 강세이다. ‘미스트롯’와 ‘미스터트롯’이 연속으로 ‘대박’을 터트리면서 TV 채널을 돌리면 꼭 하나씩은 트로트 관련 방송이 나오기 마련이다. 평소 TV 프로그램에 관심 없던 우리 어머니도 ‘미스터트롯’과 ‘미스트롯’은 빠지지 않고 보며, 문자 투표도 독려한다. 이모들이 모여 얘기를 나눌 때면 ‘호중이’, ‘영웅이’ 트로트 얘기가 넘쳐난다. 

이런 ‘덕후(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편집자)’의 기질을 그동안 숨겨 놓다가 최근 한 번에 폭발시키는 이모들을 보면 신기하고 재미있다. 특히나 제주 출신 양지은이 ‘미스트롯2’의 우승자가 되었으니, 제주는 더 환호하고 트로트를 더 사랑하며 그것이 하나의 자랑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감수광’의 혜은이 다음으로 말이다.

원조 아이돌이자 엄청난 ‘팬덤(가수, 배우 등 유명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그 무리;편집자)’을 보유하고 있는 나훈아의 콘서트 예매는 어느 아이돌 못지 않은 치열한 경쟁이 이뤄진다고 한다. 평소 아이돌 콘서트 티케팅으로 훈련이 된 딸과 아들에게 티켓 구매를 부탁하거나, 웃돈을 주고 콘서트 티켓을 구매하는 경우도 많다. 

언젠가 코로나가 이 세계에서 사라지게 될 때, ‘미스/미스터트롯’의 전국투어 콘서트 역시 치열한 티케팅 경쟁이 이뤄지지 않을까? 나도 어머니와 이모들을 위해 그 치열한 불구덩이 속에 참여해야 하는 상황이다. 성공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한다.

아버지는 이런 트로트 열풍을 못마땅해하신다. 내 주변에 음악을 좋아하는 지인들도 대부분 그러하다. ‘가사와 노래가 저속하다’, ‘너무 자극적이다’라는 등 음악성이 부족하다면서 말이다. 사실 음악 꽤나 듣는 사람들에게 자리 잡은 트로트에 대한 편견이 그러하고, 이러한 열풍이 강하게 불어오면서 편견은 강해지고 반감은 거세지는 듯하다. 나도 이에 동의하는 부분도 있고, 최근 너무 과소비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그러다가도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는 장르라면 그것만의 특별함이 있는 것이고(다만 그것을 내가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고), 그것을 이해하려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한다. ‘싫으면 싫은 거지 왜 이해하려고 노력까지 해야 하나?’라는 질문이 들어오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누군가의 취향과 삶을 공감하지 못하더라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중요한 삶의 태도이다.

가수 김호중. (사진=TV조선 방송 화면 갈무리)
가수 김호중. (사진=TV조선 방송 화면 갈무리)

그래서 어머니와 같이 트로트 예능 방송을 시청할 때, ‘쟤는 노래를 잘하네’ 하면서 같이 맞장구를 치고 같이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 실제로 노래를 잘한다. 특히나 ‘김호중’의 음악은 뒤통수를 세게 맞은 경우인데, 성악 기반의 보컬과 클래식한 감수성은 트로트에 대한 편견을 깨고 더 넓은 음악의 범주로 확장해 나아가는 경우여서 흥미로웠다. 이런 음악은 사람들에게 널리 들려지고 그러면서 트로트에 대한 편견을 깨뜨릴 수 있는 가수라고 생각이 들었다.

거꾸로 보면 어른들이 최근 아이돌 무대를 보며 ‘너무 날라리 같다’, ‘정신없다’, ‘저속하다’ 하는 얘기도 내가 트로트를 바라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에 푹 빠지면서, 행복함과 성취감을 느껴 삶의 활력이 되는 것으로 본다면 장르 그리고 대상이 다를 뿐 그 뿌리는 같을 것이다. 그리고 난 그 뿌리가 ‘덕후 기질’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돌과 트로트 모두 못마땅해하는 아버지는 예전부터 무협지를 달고 사셨다. 내가 보기에 아버지도 무협지 덕후이다. (이전에는 ‘덕후’, ‘덕질’이라는 어휘가 좋지 않게 쓰였지만, 지금은 널리 통용되어 취미의 비슷한 개념으로 쓰이고 있으니 나쁜 표현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한다)

이전에 음악평론가 김작가가 트로트와 부모님에 대해 쓴 글 중 “자식이 채워줄 수 없는 마음의 허전함을 달래주는 ‘어른들의 아이돌’을 통해 우리는 모두 대리효도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라는 문장에 큰 감명을 받았다.

별다른 취미도 없고 가족들과 대화할 시간도 줄어들어 헛헛한 마음으로 TV만 보고 있던 주부들에게 삶의 활력을 주고 허전함을 달래주는 것이다. 그동안 많은 주부의 마음속에 잠들어 있던 덕후 기질을 트로트가 깨어나게 했다. 그리고 난 그 허전함을 달래주는 트로트에게 감사할 뿐이다.

콘서트장을 가득 채운 관객. (사진=플리커닷컴)
콘서트장을 가득 채운 관객. (사진=플리커닷컴)

누구나 마음속에 허전함이 있고, 그것을 채워주는 것 중 하나가 ‘덕질(어떤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해 파고드는 일;편집자)’이다. 그래서 나는 ‘덕질’이 삶에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언제 어떻게 어디에 어느 만큼 발현이 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그리고 뛰어난 ‘덕후’들로 인해 이 세상에 새로움이 나타나고, 그를 기반으로 사회가 발전했다고 그리고 발전할 것이라 믿는다(테슬라의 CEO인 일론 머스크도 뛰어난 덕후이다).

같은 분야의 덕후를 만나면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다. 덕질로 기뻤던 적, 힘들었던 적 등 다양한 에피소드를 공유하고 깔깔 웃다 보면 밤을 새워도 모자랄 판이다. 트로트와 아이돌 모두 음악의 범주 안에 있는 것이니 그동안 부족했던 가족 간의 대화를 음악으로 채워간다면 아주 좋을 것 같다. 

이제 막 덕질의 세계로 입문한 부모님 그리고 이미 오랫동안 덕질의 세계에 몸담아 있던 우리가 이제는 음악 덕질로 서로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비로소 생긴 게 아닌가 싶다. 티케팅과 스트리밍에 대한 노하우를 역으로 전수하고, 부모님이 젊었을 적 좋아했고 지금 들어도 마냥 좋은 ‘혜은이’나 ‘클리프 리차드’ 음악을 함께 공유하고 말이다. 덕질에 한해서는 ‘라떼는 말이야’도 재미있게 들을 수 있고, 그동안 덕질로 기쁘기도 했지만 마음 아팠던 젊은 세대의 이야기도 이해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강영글.
강영글.

잡식성 음악 애호가이자 음반 수집가. 중학생 시절 영화 <School Of Rock(스쿨 오브 락)>과 작은누나 mp3 속 영국 밴드 ‘Oasis’ 음악을 통해 ‘로큰롤 월드’에 입성했다. 컴퓨터 앞에 있으면 음악을 계속 들을 수 있다는 이유로 컴퓨터과학과 입학 후 개발자로 취직했다가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 기획자로 전향. 평생 제주도에서 음악과 영화로 가득한 삶을 꿈꾸는 사람. 

 

한 달에 한 번 제주와 관련된 음악을 이야기합니다. 가끔은 음식, 술, 영화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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