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과 억새가 조화를 이루며 깊어가는 가을.
단풍과 억새가 조화를 이루며 깊어가는 가을.

매년 반복되어 돌아오는 시기나 계절에 꾸준히 찾아 듣는 음악의 힘은 강력하다. 그 시기의 정취를 느끼면서 지나온 시간의 감정을 기억하고, 매년 다르게 찾아오는 시간의 감성을 설레는 마음으로 맞이하기 때문이다.

명절이 지나고 바람의 온도를 느끼니 완연한 가을이 온 것 같다. 모기는 더러 있지만, 더위는 끝나가고 시원한 바람과 푸른 하늘을 누리기 좋은 날씨가 다가왔다. 개인적으로 가을이라는 계절을 가장 좋아하는데, 특유의 여유와 적절한 기온과 날씨 그리고 이들을 제대로 누릴 수 있는 가을 노래가 많기 때문이다.

누구나 가을 하면 생각나는 곡은 하나쯤 있을 것이다. “Do you remember, 21st night of September?”로 시작하는 Earth, Wind & Fire의 <September>(1978)는 9월이 시작되는 날과 9월 21일 전 세계 라디오나 뮤직펍에서 리퀘스트로 빠짐없이 들어오는 곡이다. 가을이 시작되는 날, 나 역시도 이 곡을 챙겨 듣는다. 

Earth, wind&fire의 'September' 앨범 재킷.
Earth, wind&fire의 'September' 앨범 재킷.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 시월의 마지막 밤을”로 시작하는 이용의 ‘잊혀진 계절’ 역시 10월 끝자락을 대표하는 곡으로 우리에게 지금까지 불리는 곡이다. 양희은(1991)의 곡이자 아이유(2017)가 리메이크 하여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가을 아침’은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는 곡이다. 

포크 음악의 대부 김민기의 ‘가을편지’(1971), (김광석이 부른)동물원의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1988)는 포크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가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곡일 테다. 이브 몽땅(Yves Montand)의 원곡으로 많은 뮤지션들이 커버한 ‘Autumn Leaves’는 가을의 쓸쓸함을 대표하는 클래식이며, 11월에 비가 온다면 Guns N’ Roses의 ‘November Rain’(1991) 역시 반드시 어느 곳에선가 흘러나올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을 음악은 이소라의 ‘가을 시선’(2000)이다. 사랑스러운 가을의 정취를 적확하게 표현한 이 곡은 한영애의 동명의 곡을 리메이크했다. (어떤날의 기타리스트이자 영화 음악감독으로 우리에게 익숙한)이병우가 작곡하고 연주한 ‘꼬마 버섯의 꿈’(1995)의 서정적인 멜로디와 동화적인 한영애의 가사가 한껏 어우러진 곡이다.

이소라 4집 '꽃' 앨범 재킷.
이소라 4집 '꽃' 앨범 재킷.

한영애의 4집 <불어오라 바람아>(1995)는 이전 ‘누구없소?’(1988)나 ‘코뿔쏘’(1988)로 대표되는 ‘쎈캐(센 캐릭터의 줄임말)’의 이미지와는 다른, 한영애라는 아티스트의 역량을 한껏 보여준 앨범이다. 

포크, 블루스, 펑크, 재즈 등 다양한 음악적 시도는 물론 수록된 곡 대부분을 직접 작사로 참여하여, 성숙한 인간의 성찰을 빼곡하게 담았다. 거기에 당시를 대표했던 연주자들이 함께하였으니 완성도 높은 곡들의 향연이다. 그 중 ‘가을 시선’은 한영애의 보컬에 김광민의 피아노 선율로만 구성되었다. 김광민 특유의 섬세한 터치는 가사와 보컬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런 최소화된 곡 구성과 한영애의 음색은 나에게 가을의 쓸쓸함과 가깝게 느껴진다.

이소라의 4집 <꽃>(2000)에 수록된 ‘가을 시선’은 The Story의 이승환(우리가 익히 아는 어린 왕자가 아니다)이 풍성한 오케스트라 사운드로 편곡하였다. 주로 슬픈 이별 감수성의 보컬로 대중에게 인식된 이소라가 발라드를 부를 때,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을 극대화할 수 있는 뛰어난 보컬임을 느낄 수 있는 곡이다. 

한영애 4집 '불어오라 바람아' 앨범 재킷.
한영애 4집 '불어오라 바람아' 앨범 재킷.

다양한 악기 구성의 편곡 위에 흐르는 이소라의 보컬은 내가 좋아하는 가을의 정취와 더 가까이한다. 그래서 이 곡을 더 많이 듣는다. 앨범의 수록곡 ‘제발’이 가장 유명한 곡이지만, 사랑을 노래하는 ‘그대와 춤을’과 앨범의 마지막 트랙을 장식하는 ‘Amen’도 가을의 정취에 어울리는 곡이다.

매년 가을 빼놓지 않고 이 음악을 감상하면서도 매번 다른 감동이 오는 이유는 아마도 마지막 가사 “모든 것 이해하며 감싸 안아주는 / 투명한 가을날 오후”에서 오는 감명 때문이다. 다툼과 갈등이 주변을 둘러싸고 시기와 질투가 나 자신 몰래 수북이 쌓여만 가지만, 마치 디즈니의 동화 같은 마무리처럼 이해와 용서의 마음으로 맑고 투명한 가을날을 음악으로 풍성하게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강영글.
강영글.

잡식성 음악 애호가이자 음반 수집가. 중학생 시절 영화 <School Of Rock(스쿨 오브 락)>과 작은누나 mp3 속 영국 밴드 ‘Oasis’ 음악을 통해 ‘로큰롤 월드’에 입성했다. 컴퓨터 앞에 있으면 음악을 계속 들을 수 있다는 이유로 컴퓨터과학과 입학 후 개발자로 취직했다가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 기획자로 전향. 평생 제주도에서 음악과 영화로 가득한 삶을 꿈꾸는 사람. 한 달에 한 번 제주와 관련된 음악을 이야기합니다. 가끔은 음식, 술, 영화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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