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제주월드21 내 회전목마 시설. (사진=제주관광공사 제공)
옛 제주월드21 내 회전목마 시설. (사진=제주관광공사 제공)

‘탑랜드’라고 불렀던 놀이공원과 제주에 몇 없던 영화관이 있었고, 지하상가와 칠성통과 가까웠던 탑동. 친구들과 쇼핑을 하고, 같이 영화 한 편 보고 나서 타가다(디스코팡팡)를 타고, 동문시장 떡볶이를 먹는 코스까지 도보로 가능했던 그곳은, 초·중학생 시절 나에게는 그야말로 ‘TOP’동이었다. 

그러나 영화관은 사라진 지 오래고 놀이공원은 운영하지 않으며 옷도 주로 인터넷에서 구매하니, 성인이 되고 나서의 탑동은 가끔 대형마트를 들르기 위해 가는 곳이거나 친구들과 바다를 보며 맥주 한 잔 부담 없이 노상할 수 있는 곳이 되었다. 

매년 여름밤이면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시끌벅적하게 노상을 하는 활기찬 탑동이지만, 올해 여름은 코로나19로 인해 여태껏 느낄 수 없었던 한산한 탑동일 것이다.

제주시 탑동광장.
제주시 탑동광장.(사진=제주투데이DB)

제주 출신 싱어송라이터 ‘강아솔’의 정규 3집 <사랑의 시절>(2018)의 수록곡 ‘탑동의 밤’은 여름밤 한치잡이 배의 등불을 별빛 삼아 함께 탑동의 방파제를 걸었던 사랑의 시절을 이야기한다. 

풋풋한 사랑의 설렘과 복잡한 도시에서 잠깐 벗어나 느낄 수 있는 여름밤의 탑동의 낭만을 잘 담은 곡이다. 여름밤 탑동 방파제를 산책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같이 느꼈던 그 정취를 노래하는 곡이니, 쉽게 공감하며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강아솔은 이 곡 외에도 제주의 특정한 장소를 노래했는데, 정규 2집 <정직한 마음>(2013)의 첫 트랙 ‘사라오름’은 마침내 정상에 도달해 시야에 들어오는 산정호수와 푸른 하늘의 모습을 가사 없이 악기로만 표현했다. 

강아솔의 정규 3집 《사랑의 시절》. 탑동의 밤이 수록됐다. (사진=앨범 재킷)
강아솔의 정규 3집 《사랑의 시절》. 탑동의 밤이 수록됐다. (사진=앨범 재킷)

한국 재즈의 전설 피아니스트 ‘임인건’의 <임인건 All That Jeju>(2015)의 수록곡이자 강아솔이 노래한 ‘하도리 가는 길’에서는 억새가 보이는 옛길을 통해 하도리로 가는 여정을 따뜻하게 그린 곡이다. 임인건의 이 앨범은 제목과 같이 제주의 다양한 모습을 각각 다른 뮤지션의 목소리로 담은 앨범으로, 재즈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편하게 들으며 제주의 풍경을 음악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제주 출신 밴드 ‘B동 301호’의 정규 2집 <나는 즐거우십니까>(2009)에 수록된 ‘겨울새벽 탑동에서’은 방파제를 넘어오는 거친 파도와 세찬 바람 그리고 고깃배의 아른거리는 조명의 이미지와 그 속에 고독하고 무기력한 화자의 감정의 사운드를 담은 곡이다. 

b동301호의 '겨울새벽 탑동에서'가 수록된 정규 2집  《나는 즐거우십니까》 앨범 재킷.
b동301호의 '겨울새벽 탑동에서'가 수록된 정규 2집 《나는 즐거우십니까》 앨범 재킷.

 

‘B동 301호’의 중심인 '채동원'은 솔로 활동으로 이전의 음악보다 더욱 철학적인 가사와 허무와 냉담, 염세의 사운드와 멜로디(마치 백현진이 떠오르는 것만 같은)의 EP앨범 <인간의 오후>(2014)를 발매하였고, 또 다른 장소 ‘동문로타리’를 노래하였다. 두 곡 모두 오후 내내 가득했던 활기가 사라져버린 새벽의 그 장소에서 홀로 냉담하게 인생의 허무를 느끼는 듯하다.

강아솔의 ‘탑동의 밤’은 여름밤의 사랑스러운 탑동의 따뜻함, ‘B동 301호’의 ‘겨울새벽 탑동에서’는 겨울 새벽의 적적하고 쓸쓸한 탑동의 차가움을 담았다고 볼 수 있다. 나에겐 ‘탑동의 밤’은 초중학교 시절 친구들과 함께했던 그 시절의 감정이고, ‘겨울새벽 탑동에서’는 지난 겨울 새벽까지 술을 잔뜩 마신 상태에 적막한 탑동의 모습을 보고 무거운 한숨을 푹 내쉰 그 시간의 감정이다. 이렇게 같은 장소여도 시간과 계절 그리고 상황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고… 특히 이 두 음악을 통해 극단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이른 아침 탑동방파제 너머로 치는 높은 파도 모습이다.(사진=제주투데이DB)
이른 아침 탑동방파제 너머로 치는 높은 파도 모습.(사진=제주투데이DB)

지금 이 시국의 탑동의 밤은 어떨까? 여름밤의 낭만적인 탑동보다는 ‘빌어먹을’ 역병으로 인해 이전의 활기는 찾아볼 수 없는, 허무와 우울의 탑동의 밤이 아닐까 싶다. 탑동뿐만이 아니라 제주의 밤 역시 이전 여름과는 사뭇 다른 시기를 겪고 있다. 하루빨리 이 역병이 수그러들어서 이전의 활기와 낭만이 가득한 제주의 밤이 되었으면 좋겠다. 저 멀리 탑동 앞바다의 한치잡이 배의 불빛처럼 밝고 선명하게 말이다.

강영글.
강영글.

잡식성 음악 애호가이자 음반 수집가. 중학생 시절 영화 <School Of Rock(스쿨 오브 락)>과 작은누나 mp3 속 영국 밴드 ‘Oasis’ 음악을 통해 ‘로큰롤 월드’에 입성했다. 컴퓨터 앞에 있으면 음악을 계속 들을 수 있다는 이유로 컴퓨터과학과 입학 후 개발자로 취직했다가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 기획자로 전향. 평생 제주도에서 음악과 영화로 가득한 삶을 꿈꾸는 사람. 

 

한 달에 한 번 제주와 관련된 음악을 이야기합니다. 가끔은 음식, 술, 영화에 대해서도...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