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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스밍]“아니 벌써 귤” 재주소년과 어른의 동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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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스밍]“아니 벌써 귤” 재주소년과 어른의 동요
  • 강영글
  • 승인 2021.10.27 19: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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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귤나무. (사진=제주투데이DB)

금세 이번 가을은 추워졌고, 그만큼 사람들의 외투 역시 두꺼워지고 있다. 그리고 슬슬 길거리에 귤 한 봉을 파는 트럭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찬바람과 함께 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제주도민이라면 돈을 주고 귤을 사 먹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한 다리만 건너면 귤 농사를 짓는 사람은 꼭 하나는 있으니, 미처 상품으로 나가지 못한(흔히 ‘파치’라고 부르며, 이게 더 맛있다) 귤을 공짜로 구해 콘테나(노란 컨테이너 박스)에 쌓아두며 손톱이 노래질 때까지 먹는다. 

육지 사람이라면 부러워할 만한 제주도민의 흔한 겨울 생활이다. 식당 안 곳곳, 바구니에 귤을 담아 음식을 다 먹고 나갈 때 입가심으로 먹으라고 갖춰진 모습도 그들에게는 재미있는 광경이다.

육지 사람들은 장난으로 제주도를 ‘귤국(귤의 나라)’로 부르기도 한다. 제주 소재 대학교에는 감귤포장학과가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유머가 돌기도 했으니 뭐니뭐니해도 제주하면 생각나는 과일은 두말할 것도 없이 귤일 것이다.

이렇게 오랜만에 귤을 보고 또 이렇게 겨울이 온다는 생각이 들 때면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는 곡이 바로 재주소년의 ‘귤’이다. “오랜만에 학교에서 후식으로 나온 귤 / 아니 벌써 귤이 나오다니 /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좀 차졌다 / 생각은 했지만 벌써 이렇게 시간이”로 시작되는 이 곡은 반가운 귤을 보면서 벌써 올해가 다 가고 있음을 그리고 작년 이맘때의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재주소년의 앨범 《才洲少年》 재킷.
재주소년의 앨범 《才洲少年》 재킷.

재주소년 특유의 순수하면서 귀에 쏙 박히는 멜로디, 그리고 감미롭지만 덧대지 않은 보컬 위에 담겨진 귤에 관한 추억의 이야기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이 음악에 공감하고, 쉽게 마음과 머릿속에 저장해놓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처럼 오랜만에 귤 향기를 맡게 되면 예전에 저장해뒀던 이 곡을 자연스레 불러와 흥얼거리며 부를 것이다.

2인조 포크밴드인 재주소년은 재주(才操)의 ‘재’와 제주(濟州)의 ‘주’를 합쳐 만든 이름이다. 초등학교 동창이었던 박경환(최근 예능TV프로그램 ‘싱어게인 – 무명가수전’의 참가자로 대중에게 다시 얼굴을 알리게 되었다)과 유상봉은 중학교 때부터 같이 음악을 하던 사이였다. 

마침 제주도에서 같이 대학 생활을 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하기 시작하고, ‘재주소년’이라는 이름으로 데뷔하게 되었다. 그들의 1집이자 밴드와 동명인 앨범 <才洲少年(2003)>은 ‘어떤날’의 환생이라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그중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곡이 바로 ‘귤’이다.

‘봄비가 내리는 제주시청 어느 모퉁이의 자취방에서…’, ‘소년의 고향’, ‘출항, 낮과 밤’, ‘갈치의 여행’과 같은 곡을 비롯하여 <드라이브 인 제주> 앨범까지 그들의 이름처럼 제주의 다양한 모습을 재주 넘치게 담는다. 하지만 넘치는 재주와는 다르게 소박하지만 그럼에도 충분한 악기 구성으로 비롯된 재주소년 특유의 음악적 스타일이 스며들어 아늑한 제주와 순수했던 유년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얼마 전 친구와 “재주소년의 음악은 어른의 동요다”라고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누구보다 유년의 순수를 담고 그 순수를 따라 노래하고 연주하는 재주소년의 음악은 ‘어른의 동요’라고 부르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리고 ‘귤’이야 말로 제주소년과 한때는 소년이었던 어른들이 동요를 추억하는 마음으로 부를 수 있는 곡일 것이다. 제주도민이라면 누구나 귤에 대한 추억 하나쯤을 있을 테니까.

그러고 보면 감사하게도 육지에서 자취를 하고 있는 동안 귤을 돈 주고 사 먹은 적은 없다. 가족이나 친척이 박스에 가득 담아 귤을 보내주기 때문이다. 혼자 먹기에 너무 많은 양이라 지인들에게 나눠줘도 녹차색으로 썩는 귤이 늘 생기기에 매년 버리는 것도 골칫거리다. 아마 올해 겨울도 그럴 확률이 높겠지만, 최대한 열심히 먹어야겠다. 재미있는 영화를 보면서 맥주와 함께.

귤에 관해 쓰다 보니 재미있는 일화가 생각나서 그 이야기로 이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친구들에게 내 고향이 제주임을 알려주면 많이 듣는 질문이 “니네 집 마당에도 귤나무가 있어?”이다. 그러면 나의 대답은 꼭 이랬다. “제주라고 모든 집에 마당이 딸리지도 않고, 마당이 있어도 귤나무가 꼭 있는 건 아니야. 하지만 우리 집 마당엔 귤나무가 있어”(정확하게는 댕유지 나무이지만)

강영글.
강영글.

잡식성 음악 애호가이자 음반 수집가. 중학생 시절 영화 <School Of Rock(스쿨 오브 락)>과 작은누나 mp3 속 영국 밴드 ‘Oasis’ 음악을 통해 ‘로큰롤 월드’에 입성했다. 컴퓨터 앞에 있으면 음악을 계속 들을 수 있다는 이유로 컴퓨터과학과 입학 후 개발자로 취직했다가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 기획자로 전향. 평생 제주도에서 음악과 영화로 가득한 삶을 꿈꾸는 사람. 한 달에 한 번 제주와 관련된 음악을 이야기합니다. 가끔은 음식, 술, 영화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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