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가장 뜨거웠던 여름날의 기억은 스물다섯 살무렵 경험했던 건설현장이다. 막 군대를 제대하고 본격적으로 음악을 하기 위해선 새로운 장비가 필요했다. 두어달 정도 쉬지 않고 일하면 좋은 기타 한 대를 마련할 수 있다는 말에 무턱대고 인력사무소를 찾았다.

피부가 데일 듯 뜨거운 여름의 태양볕에 아침부터 얼굴을 타고 땀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벽돌을 지고 철근을 나르다보니 한두 시간만에 신물이 올라왔고 철근을 나르던 왼쪽 어깨는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의지는 강했지만 육체는 너무 나약했다.  

점심 시간이 되자 밥을 먹는둥 마는둥 하고 공사장 구석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다. 눈을 뜨면 어서 이 상황이 끝나있기를 바랐다. 무엇보다 음악이 간절했다. 그렇게 여름 두 달을 공사현장에서 보내며 매순간 ‘음악’에 대해 ‘음악인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 몸이 깨질 듯 고통스러웠던 노동의 경험은 이후 온 힘을 다해 음악을 공부하고 악기를 연습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1946년 뉴욕으로 건너온 재즈 음악가 길 에반스Gil Evans는 친구집을 전전해야 했다. 그러다 55번가의 세탁소 뒤편 창고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침대와 업라이트 피아노 한 대, 축음기와 몇 개의 그릇, 냉장고와 책상 그리고 몇 개의 의자가 그의 전 재산이었다. 그는 하루종일 피아노를 치며 재즈를 연구하고 분석했다.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다했다고 한다. 머지않아 밤마다 그의 작업실로 새로운 음악을 갈구하는 뉴욕의 음악가들이 모여들었다. 어느새 그곳은 재즈를 연구하고 토론하는 명소가 되었다.

스물한 살의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가 이 곳을 찾았을 무렵 에반스와 섹소포니스트 제리 멀리건Gerry Muligan은 새로운 연주스타일에 대해 골몰하고 있었다. 그러다 빅밴드보다 좀 더 작은 규모에 솔로 연주의 공간과 자유로운 악장 구조를 지닌 형태의 실내악 연주에 대해 실험하기 시작했다.

원하는 사운드를 얻기 위해서 여섯 개의 관악기와 3인조 리듬섹션이 모인 노넷(9중주) 악단을 구성해야 했다. 마일즈 데이비스는 이 음악을 위한 리허설 준비를 맡아 연주자들을 모으고 밴드를 연습시켰다. 1948년 9월에는 로열 루스트 무대에서 2주간 무대에 섰고 여러 녹음과정을 거쳐 1954년이 되어서야 한 장의 레코드로 제작되었다. 세 차례의 세션을 통해 녹음된 싱글들 가운데 12곡을 모아 1957년에 발매된 음반이 지금 소개하는 <Birth of the Cool>이다.

이 음반의 가장 큰 특징은 보통의 관객들이 비밥연주를 난해하게 느껴 감지하기 힘들다는 생각에 곡의 템포를 늦췄다는 것이다. 조용하고 나긋나긋한 리듬, 작은 음량과 옅은 비브라토는 여유롭고 유려한 선율을 더욱 부각시킨다. 물론 지루하지 않게 곳곳에 긴박한 재즈의 리듬이 포진되어있다. 곡의 길이는 대부분 3분대로 짧고 간결하다.

날카롭고 리드믹한 멜로디의 'Move'는 비밥연주인들의 잼세션시 즐겨 연주하던 팝이었지만 존 루이스의 편곡으로 새로운 보이싱과 가벼운 프레이징의 좀 더 평온한 느낌의 멜로디가 더해졌다. 제리 멀리건의 곡 'Jeru'에서의 세련된 리듬섹션과 관악기의 절묘한 블로잉은 폭포수처럼 시원하게 다가온다.  에반스가 편곡한 '달의 꿈Moon Dreams'은 다채로운 분위기속에 관악기들의 소리가 부드럽게 펼쳐진다.

(참고문헌 : 마일즈 데이비스 자서전 ‘거친 영혼의 속삭임’, 을유문화사)

양진우
양진우

음악행위를 통해 삶의 이면을 탐구해나가는 모험가,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인 양진우 씨는 이렇게 자기 자신을 소개한다, The Moon Lab 음악원 대표이며 인디레이블 Label Noom의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매달 네 번째 월요일 음악칼럼으로 독자들을 만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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