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생 록 음악을 연주하며 살 줄 알았다. 자멸감으로 똘똘 뭉쳐있던 고등학교 시절을 버티게 해준 건 오로지 록뿐이었으니까. 레드 재플린의 'Stairway to heaven', 전축에서 그 유명한 기타 멜로디가 흘러나오기 시작했을 때 그렇게 직감했다. 하루 종일 록음악을 끼고 살았다. 음악 속에서 밥을 먹고 책을 읽었다. 심지어 티비를 볼 때도 음악이 흘러야 했고 잠을 자다가도 음악이 꺼지면 소스라치게 놀라 깨곤 했다.

어설픈 기타실력으로 호기롭게 밴드를 만들었다. 밤을 새워가며 곡을 연습했고 클럽과 소극장 등의 무대에 서기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가죽자켓을 사 입고 머리를 기르기 시작 했다. 커다란 십자가 목걸이와 해골 은반지를 끼곤 '말구두'라 불리어던 카우보이 부추를 신었다. 어떤 날엔 깁슨 기타를 들고 이어폰을 낀 채 하루 종일 거리를 헤매기도 했다.

그처럼 록 마니아인 나를 처음 재즈로 이끈 건-소탈한 옷차림에 온화한 인상의 중년 여인과 트럼펫을 들고 앉아 있는 뿔테 안경의 구수한 인상의 남성이 찍혀있는- 음반 속 한 장의 사진이었다.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어서 그랬는지 뭔가에 홀린 듯 시디를 꺼내 플레이어에 넣었다. 흑백 영화에서 나올 법한 낯설었지만 왠지 모르게 익숙한 음악이 흘렀다. 겨울이었고 창밖에는 싸락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침대에 걸터 앉아 이불을 뒤집어 쓰고는 본격적으로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간결한 터치의 피아노 인트로가 끝나면 살짝 부유하는 듯한 여성의 짙은 목소리가 스윙 리듬을 타고 들려온다. 이어 구수한 질감의 남성 목소리가 흐르면 스산한 찬 공기에 스며들 듯 트럼펫의 낭랑한 선율이 터져나온다. 아! 록음악을 들을 때와는 또 다른 새로운 뭔가가 가슴 한 켠에서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Ella and Louis>는 재즈라는 음악의 이미지를 뚜렷이 남겼다. 이 기억은 내가 몇 년 후에 재즈음악에 빠진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훗날 알게 된 사실은 이 앨범의 백업 멤버가 오스카 트리오를 중심으로 당시 최고의 드러머였던 버디리치가 합류한 쿼텟이었다는 것이었다.

오스카 피터슨은 당시 최고의 테크닉을 자랑하는 독보적인 피아니스트였다. 엘라의 남편이기도 했던 콘트라 베이스 레이브라운은 두터운 터치와 안정된 리듬으로 유명했다. 곡 중간중간 여린 톤으로 매력적인 라인을 구사하는 허브 엘리스는 빌리 홀리데이등 여러 보컬들과 작업을 하기도 했다. 화려한 테크닉과 도발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버디리치는 재즈드럼의 한계를 끌어 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엄청난 연주자들이 완전히 힘을 빼고 보컬의 멜로디를 따라 소담하고 부드러운 연주를 들려준다. 물론 현란한 스캣연주로 유명한 엘라와 스캣의 원조 루이스 역시 노래에만 집중하며 절묘하고 환상적인 하모니를 들려준다. ‘Cheek to Cheek'의 낭만적인 음률도 좋고 'Can't We Be Friends?', 'FoggyDay' 같은 미디엄 템포 스윙곡들도 저마다 매력이 가득하다. ‘Moonlight In Vermont‘이나 ’Tenderly’ 등의 발라드 곡들에서 섬세하게 표현되는 연주자들의 감정선을 따라가 보라, 누구라도 이 음반에 푹 빠지고 말 것이다.

양진우
양진우

음악행위를 통해 삶의 이면을 탐구해나가는 모험가,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인 양진우 씨는 이렇게 자기 자신을 소개한다, The Moon Lab 음악원 대표이며 인디레이블 Label Noom의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매달 네 번째 월요일 음악칼럼으로 독자들을 만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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