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오후 찾은 제주시 구좌읍 비자림로 확장 공사 현장.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11일 오후 찾은 제주시 구좌읍 비자림로 확장 공사 현장. (사진=조수진 기자)

“왕벚나무를 꺾지 마라~ 그것은 우리의 인생이다~”

4년 전 여름, 삼나무 900여그루가 잘려나간 현장에 산수국과 산딸기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이곳은 수년간 보호종 서식지 파괴 및 환경 훼손과 부실 환경영향평가 등으로 도로 확장 공사 중단과 재개가 반복되고 있는 비자림로다. 

교통 체증을 해소하겠다는 명목으로 무차별적으로 도로를 확장하려는 행정에 맞선 시민들의 전투장이기도 하다. 난개발에 무참히 도륙 당하는 제주를 가만두고 볼 수 없어 저항에 나선 이들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다. 

#낭싱그레가게2, 비자림로 공사 재개 현장서 퍼포먼스

지난달 제주도가 영산강환경유역청과 환경영향평가 협의 절차를 마무리했다며 공사를 재개했다. 이 때문에 비자림로 확장 공사에 반대하던 시민들과 환경단체의 반발을 의식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사회 관심이 선거에 쏠린 분위기를 틈타 공사를 강행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왔다. 

지난 11일 오후 비자림로 확장 공사 현장에서 시민모임 '낭싱그레가게2'가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11일 오후 비자림로 확장 공사 현장에서 시민모임 '낭싱그레가게2'가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11일 오후 이곳에 새 현수막이 내걸렸다. 흰 천 위에 “너희는 자르지만 우리는 심는다”는 글자가 알록달록 쓰여있다. 시민모임 ‘낭싱그레가게2’가 조각천을 대서 한땀 한땀 기웠다고 한다. 

지난 3월 제주시가 도로를 넓히겠다며 제성마을의 설촌 역사가 담긴 왕벚나무를 베어내자 꾸려진 ‘낭싱그레가게2’. 최근 비자림로 공사가 시작된 것을 알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이곳을 찾았다. 이들에게 제성마을의 왕벚나무와 비자림로의 삼나무는 동떨어진 문제가 아니었던 것. 

시민들은 새로 만든 현수막을 나무에 걸고 그 앞에 모여앉아 <왕벚나무를 꺾지마라>(조성일 작사·작곡)를 함께 불렀다. 이를 영상으로 남기기 위해 만족스러울 때까지 몇 번이고 노래를 반복했다. 말없이 우두커니 서 있는 저 나무가 누군가에겐 인생이고, 누군가에겐 목숨이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모든 자연과 연결돼 있다.

지난 11일 오후 비자림로 확장 공사 현장에서 시민모임 '낭싱그레가게2'가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11일 오후 비자림로 확장 공사 현장에서 시민모임 '낭싱그레가게2'가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톱의 마음

“우위위윙”

이날 낭싱그레가게2는 ‘톱의 마음’이라는 퍼포먼스도 벌였다. 고승욱 작가는 한 나무 밑동 앞에 톱을 놔두고 절을 하듯 엎드렸다. 그러더니 톱이 나무를 잘라낼 때 나는 소리를 흉내 내기 시작했다. 여느 벌목 현장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소음 같기도 했던 그 소리는 어느새 비명소리와 울음소리로 바뀌어갔다. 어쩔 수 없이 벌목에 동원되는 톱이 “그만하라”고 울부짖는듯했다. 

퍼포먼스의 의미에 대해 묻자 고 작가는 그저 “톱이 나무를 베어낼 때 어떤 마음일까만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11일 오후 비자림로 확장 공사 현장에서 시민모임 '낭싱그레가게2'가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11일 오후 비자림로 확장 공사 현장에서 시민모임 '낭싱그레가게2'가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이날 퍼포먼스를 지켜보던 한 시민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며 눈물을 훔쳤다. 또다른 시민은 “우리의 행동이 1회성에 그치지 않는다는 걸 알리고 싶다”며 “난개발이 계속되는 한 우리의 저항도 계속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한쪽에선 세계자연유산이라는 타이틀을 시끌벅적하게 홍보하고 또다른 한쪽에선 도로를 확장하기 위해 나무를 베어낸다. 앞뒤가 맞지 않는 정책에 ‘청정과 공존’이라는 슬로건은 갈 길을 잃은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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