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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겨우 열두 그루' 나무와 '겨우 일곱'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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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겨우 열두 그루' 나무와 '겨우 일곱' 할머니
  • 고승욱
  • 승인 2022.05.06 13: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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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제주시청 앞에서 고승욱 작가가 이불과 옷가지로 잘린 낭을 만들어 강제 이주의 역사를 표현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사진=안혜경 제공)
지난 4일 제주시청 앞에서 고승욱 작가가 이불과 옷가지로 잘린 낭을 만들어 몰래물 주민들의 강제 이주 역사를 표현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사진=안혜경 제공)

저는 제성마을 왕벚나무를 본 적이 없습니다. 제성마을 삼촌들 또한 뵌 적이 없습니다. 저는 제성마을을 지나가는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제성마을 왕벚나무가 무단벌목 당하고 제성마을 삼촌들의 통탄을 알게 된 후, 저는 지나가는 사람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1941년 정뜨르비행장, 1980년 제주공항, 1987년 하수종말처리장, 총 세 번의 개발로 300년 넘는 몰래물 마을이 지도에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죽은 사람을 관에서 꺼내어 두 번 죽이는 것을 부관참시라고 합니다. 하지만 세 번 죽이는 말을 형용하는 말은 세상에 없습니다. 인류역사상 그런 형벌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 차례 개발로 세 번 깨진 몰래물 마을의 운명을 우리는 뭐라고 말해야 할까요?

이뿐 아닙니다. 몰래물은 신제주 개발의 피해 마을이기도 합니다. 70~80년대 신제주는 유흥과 환락의 도시였습니다. 일본 남성 관광객의 필수코스였죠. 관광 마지막 날 이들은 신제주에서 비싼 엔화도 뿌렸고 비싼 똥도 뿌렸습니다. 비싼 돈의 혜택은 제주사람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갔지만 비싼 똥의 고통은 몰래물 사람들만의 몫이었습니다. 

그들이 싼 똥이 흘러내린 흘천 하류는 몰래물에서 쫒겨난 사람들이 이주하여 세운 새몰래물 마을이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새몰래물에서 물질을 하셨던 구순의 할머니는 지금도 참외와 수박을 드시지 못합니다. 똥과 함께 쏟아진 참외씨와 수박씨를 헤치며 물질을 해야 했던 50년 전의 트라우마가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제주공항과 하수종말처리장의 혜택을 누리는 동안 몰래물 사람들은 세 번의 철거와 똥의 고통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마을을 만들었습니다. 상수도 하수도를 삽과 곡괭이로 직접 파고 살 집을 손수 만들었습니다. 제성마을을 설촌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왕벚나무 열두 그루를 심었습니다. 

제주시청은 제성마을 왕벚나무를 베어놓고서 겨우 열두 그루라고 합니다. 겨우 일곱 명이라고 합니다. 맞습니다. 몰래물 80년의 역사와 제성마을 40년의 희망을 간직한 열두 그루 왕벚나무를 기억하고 계신 분들은 겨우 일곱 분입니다. 지난 세월 고통을 견디며 세운 제성마을 설촌주민들은 연로하여 대부분 돌아가셨고, 이제 겨우 일곱 분만이 남아 계신 것입니다. 

겨우 열두 그루 나무와 겨우 일곱 할머니의 통탄 앞에서 저는 더 이상 지나가는 사람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의 고통으로 혜택받은 사람이기에 저는 그분들에게 빚진 사람입니다. 저는 시청 앞으로 나가서 ‘제성마을 왕벚나무를 살려내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그리고 들끓은 여론에도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는 제주시장을 향해 사죄를 요구할 것입니다. 그것이 그분들에게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는 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겨우 일곱 분의 할머니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빚 갚을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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