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읽는 다양한 관점과 틀이 있다. 그에 따라 평가가 갈리기도 한다. 하지만 중심이 필요하다. 제주투데이는 정부가 발간한 4·3진상조사보고서와 수차례 동행한 4·3시민사회단체 답사 기록을 토대로 4·3의 핵심적인 인물 10명을 함께 읽고자 한다. 다만, 제주4·3이라는 비극과 현재까지 이어지는 해결 과정을 살필 때 제주도민을 역사 인식의 주체로 세워야 한다는 관점을 유지하고자 한다. 이번 기획은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와 함께 한다.제주목 관아 서쪽 돌담길에서 무근성으로 들어가는 곳 '옥성정' 터가 있다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읽는 다양한 관점과 틀이 있다. 그에 따라 평가가 갈리기도 한다. 하지만 중심이 필요하다. 제주투데이는 정부가 발간한 4·3진상조사보고서와 수차례 동행한 4·3시민사회단체 답사 기록을 토대로 4·3의 핵심적인 인물 10명을 함께 읽고자 한다. 다만, 제주4·3이라는 비극과 현재까지 이어지는 해결 과정을 살필 때 제주도민을 역사 인식의 주체로 세워야 한다는 관점을 유지하고자 한다. 이번 기획은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와 함께 한다.1948년 9월 23일, 당시 경기도 수색의 한 산기슭(고양시 망월산으로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읽는 다양한 관점과 틀이 있다. 그에 따라 평가가 갈리기도 한다. 하지만 중심이 필요하다. 제주투데이는 정부가 발간한 4·3진상조사보고서와 수차례 동행한 4·3시민사회단체 답사 기록을 토대로 4·3의 핵심적인 인물 10명을 함께 읽고자 한다. 다만, 제주4·3이라는 비극과 현재까지 이어지는 해결 과정을 살필 때 제주도민을 역사 인식의 주체로 세워야 한다는 관점을 유지하고자 한다. 이번 기획은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와 함께 한다.“제주도민 30만을 희생해도 무방하다.”일본군 출신 박진경 국방경비대 연
4·3 당시 “제주도민 모두를 희생시켜도 무방하다”며 도민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일 것을 지휘했던 제9연대장 박진경 중령. 그는 연대장으로 부임한 지 한 달여만에 도민 6000여명을 체포하는 ‘성과’를 올린다. 그의 강경진압 작전을 높이 평가했던 미군정청 딘 소장은 박진경을 대령으로 진급시켰다.1948년 6월18일은 박진경 대령의 진급 축하연이 열린 날이었다. 이날 연회가 끝난 뒤 잠을 자던 박진경은 부하들이 쏜 총탄에 목숨을 잃는다. 제주 사람들에 대한 반인권적인 탄압을 저지하기 위한 결단이었다. 방아쇠를 당긴 건 손선호 하사, 이
“형무소 재소자 자료를 민간에서 찾을 수가 없어요. 이건 국가가 나서면 쉽게 해결될 문제 아닙니까. 우리 같은 민간에선 자료를 요구할 권한이 없잖아요. 그쪽에서 ‘없다’고 하면 그걸로 끝인 거예요.”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이하 4·3도민연대)는 지난 25일부터 27일까지 ‘안동형무소 터 순례 및 문상길 찾아’를 진행했다. 마지막 날인 27일 오전엔 서울 용산구 후암동 KP갤러리에서 열리는 이규철 사진전 ‘나, 죄어수다’를 찾았다. 이날 양동윤 4·3도민연대 대표는 4·3 당시 불법으로 진행된 군사재판(군법회의)
“오! 3천만 민족이여!”74년 전 가을 경기도 고양시 망월산 인근¹. 한 청년이 총탄에 스러지기 전 토하듯 내뱉은 한마디다. 1948년 9월23일 오후 3시35분과 45분. 상관을 암살했다는 이유로 두 군인이 총살형을 당했다. 군인이 자신의 상관을 향해 총을 겨눈다는 것은 죽음을 결심하지 않고선 불가능한 일이다. 이들이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키고자 했던 것은 죽는 그 순간까지 부르짖었던 우리 민족, 우리 조국이었다. 그 이름은 문상길과 손선호. 이 둘은 1948년 6월18일 새벽 승진 축하연에 돌아와 잠을 자고 있던 박진경 대령을
제주4·3 당시 불법 군사재판을 받고 다른 지역으로 끌려가 옥살이를 한 수형인 수는 2530명이다. 어떤 이는 타지에서 옥살이를 하던 중 목숨을 잃고 어떤 이는 지금까지 생사여부조차 알려지지도 못했고 어떤 이는 고문과 감옥에서의 기억을 평생 고통으로 간직한 채 마지못해 살기도 했다. 지난 9월13일부터 15일까지 사흘간 제주도외 유적지 조사단 동부팀(팀장 오화선)은 경상도와 부산 일대 70여년전 제주도민들이 끌려가거나 희생 당한 곳을 찾았다. 조사단은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가 올해 4·3전국화를 위해 유적지 기초조사 사업을 추진하기
앞으로는 한강이 흐르고 뒤편으로는 관악산 기슭 공작봉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144만㎡(약 44만평)에 이르는 서울시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엔 국가나 사회를 위해 희생하고 기여한 인물 18만1000여명이 안장돼 있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현충원. 아이러니하게도 제주4·3 당시 수많은 민간인 학살을 주도해온 인물과 국가폭력에 의한 무고한 피해를 막으려는 데 앞장선 인물이 함께 묻혀있다. 지난 12일 오전 제주4·3 도외 유적지 조사단이 현충원을 찾았다. 조사단은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가 올해 4·3
“제주시 원도심은 그야말로 제주 근현대사의 도심박물관입니다. 조금만 들어가 보면 곳곳에 옛모습들이 숨겨져 있어요.”제주 성안에서 태어나 5대째 한짓골에 살고 있는 고봉수씨.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2년 만에 제주로 내려와 30년 만에 한짓골 생가로 돌아온 그는 ‘관덕정 광장 주변 활성화 사업’의 주민협의체 대표와 ‘원도심 활성화 시민협의체’의 대표를 맡을 만큼 누구보다 원도심에 대한 애정이 높다. 4일 오전 고씨는 제주투데이 18주년 창간 기획 의 첫 번째 답사 프로그램 ‘제주시 원도심, 어디까지 알고 있니?’를
제주북초등학교 동쪽, 조선 시대 객사 대청이었던 영주관 터. 왕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셔놓고 왕명을 받들고 오는 관리들을 접대하고 묵게 하였던 곳이다. 영주관의 설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1689년(숙종15) 이우항 목사가 다시 고쳐 지었고 그 뒤 여러 차례 보수하였다고 한다. 제주공립보통학교(제주북초등학교 전신)가 1908년 이곳으로 옮겨져 영주관을 교실로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진다.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도 영주관 터에는 교사(校舍)가 있었지만, 그 후 철거되어 전매청(KT&G 전신)건물이 세워졌다. 전매청 이전 후 2013년~20
제주4·3 당시 “제주도민 30만을 희생시켜도 무방하다”고 밝히며 무차별 학살을 지시했던 박진경 대령. 민간인 대규모 학살 주범으로 꼽히는 박 대령의 동상이 경상남도 남해군민동산에 세워진 데 대해 경남도의원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13일 김영진 도의원(더불어민주당·창원3)은 제384회 경상남도의회 임시회 1차 본회의에서 5분 발언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김 의원은 “제주4·3은 제주도민 10분의 1이 희생당한 엄청난 사건임에도 제주라는 특수성 때문에 진실규명과 화해가 늦었다”며 “지난 2003년 발발 55년만에 정부의 첫 공식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하므로 각 무죄를 선고한다."‘제73주년 4·3 희생자 추념 전야제’가 올해는 '4·3 수형인 모두 무죄'라는 역사적 판결을 재현하는 것으로 무대를 열었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4·3평화재단이 공동주최하고 (사)제주민예총이 주관한 이번 4·3 희생자 추념 전야제는 '그날의 기억, 피어나는 꽃'을 주제로 2일 제주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오후 6시 30분부터 약 1시간 펼쳐졌다.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추념사를 위해 잠깐 얼굴을 비추고 "4·3 특별법 개정은 화해, 상생, 연대, 화합이란
요즘 출퇴근 길이 즐겁습니다. 사무실이 벚꽃길로 유명한 전농로에 있기 때문입니다. 퇴근길은 일부러 벚나무가 많은 길을 따라 빙 둘러서 걸어갑니다. 벚꽃이 만개한 하늘을 보며 걷다 보면 자질구레한 걱정거리는 생각나지도 않습니다.벚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도로의 직선 구조를 양보한 씀씀이도 마음에 듭니다. 운전자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표지판을 살펴보면 “70살 넘은 왕벚나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어쩌면 제주4·3 당시에도 이 자리에 이 나무가 자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지금은 벚꽃 명소가 된 전농로에도 제주4·3과 관련한
4·3 희생자와 생존자를 위로하는 ‘제73주년 4·3 희생자 추념 전야제’가 올해는 '그날의 기억, 피어나는 꽃'을 주제로 펼쳐진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4·3평화재단이 공동주최하고 (사)제주민예총이 주관하는 이번 4·3 희생자 추념 전야제는 다음달 2일 제주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오후 6시 30분에 열린다. 올해는 4·3 특별법 개정과 생존 수형인 무죄 판결 등 미완의 진실을 하나씩 풀어가는 가운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야기와 남겨진 과제를 조명한다. 제주민예총은 26일 "‘4·3 특별법 개정’은 미완의 진실을 푸는 열쇠이자,
제주4·3 당시 “도민 30만을 희생시켜도 무방하다”며 무차별적인 학살을 지시한 박진경 대령 추도비가 처리하기 곤란한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9일 제주특별자치도 보훈청에 따르면 제주시 노형동 충혼묘지에 있는 박진경 추도비를 지난해 11월 한라산 관음사 육군 특수전사령부 내로 옮길 예정이었으나 무산됐다(☞관련기사 제주4‧3 양민학살 ‘논란' 박진경 대령 비석, 군부대로 이전?). 국가보훈처 측에서 “논란이 되는 인물을 받을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했기 때문이다. 박 대령은 지난 1948년 제11연대장에 취임해 취임사에서 “우리나라
제주4·3 당시 “도민의 희생도 무방하다”며 강경 진압 작전을 벌여 논란이 일었던 박진경 대령의 추도비가 오는 11월 이전된다. 8일 제주특별자치도 보훈청에 따르면 박 대령의 추도비는 제주 국립묘지 착공 시점에 맞춰 한라산 관음사 육군 특수전 사령부로 옮겨질 예정이다. 박 대령은 지난 1948년 4·3 진압 사령관으로서 11연대장에 취임했다. 그는 연대장 취임사에서 “우리나라 독립을 방해하는 제주도 폭동사건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제주도민 30만을 희생시키더라도 무방하다”고 밝히며 무차별적인 진압을 예고하기도 했다. 실제로 박 대령은
분단시대의 군인(1920-1948). 제주 주둔 연대장. 본관은 밀양이며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 무림리의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 외국어학교를 거쳐 일본 육군공병학교를 졸업하여 일군 소위로 임관되어 2차대전 때 제주도에 주둔한 일본 제38군단 소속이었다. 해방된 조국에 들어와 군사영어학교를 수료하고 부산에서 국방경비대 제5연대 창설
경남 남해군지역 시민단체들이 제주 4·3사건 당시 “한라산에 가솔린을 뿌려 비행기에서 소이탄을 투하하면 빨갱이 새끼들 소탕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고 외쳤던 빨치산 토벌대장 박진경 대령 동상 이전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나서 눈길을 모으고 있다.경남 남해는 박 대령의 고향. 남해군민공원에 있는 박 대령의 동상은 지난 1990년 4월 박익주 전 국회의원에 의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편찬한 가 4.3을 ‘무장폭동’으로 왜곡 표현해 유족과 도민들로부터 분노를 사고 있는 가운데 군사편찬연구소가 홈페이지에도 ‘북한의 사주에 의해 남노당이 일으킨 제주 4.3사건’이라고 버젓이 올려져 있어 파문이 확산될 전망이다.더욱이 12일 조영길 국방부장관은 열린우리당 임종인 의원의 국회 대정부질문에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