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바바라 오코너 지음, 신선해 번역, 놀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바바라 오코너 지음, 신선해 번역, 놀

열한 살이라고 생각해 보자. 우리의 주인공 조지나처럼.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아빠는 집을 나갔고 살던 집에서는 쫓겨나게 된 것이다. 아빠가 돌아오는 꿈은 꾸지 마시라. 모든 걸 제자리로 돌려놓는 아빠는 픽션에서도 논픽션에서도 드물다. 자동차가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자동차를 집 삼아 살 수 있으니까 말이다. 씻는 건 맥도널드 화장실을 이용하면 된다. 우리의 주인공 조지나처럼. 엄마는 고군분투하고, 매일 밤 간절히 돈이 벌리기를 기도하면서 잠이 든다. 여기에 비극이 있다. 우리의 노동은 우리를 풍요롭게 만들어주지 않고, 우리의 기도는 현실에서 대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 이해하기로 하자. 뭐라도 훔치기로 비장하게 각오한 조지나를. 아이의 기도는 귀엽고 슬프다.

“결국 나는 개를 훔칠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우리가 이 진창에서 벗어나 다시 보통사람들과 똑같이 살기 위한 방법은 그것뿐이다.”

어마어마한 것을 바라는 게 아니라, 아이는 남들과 같은 출발선에 서기를 원할 따름이다. 그래서 개를 훔치고, 개를 찾아준 다음, 그 사례금으로 집세를 마련해보고자 하는 깜찍하고 어이없는 계획을 세운다. 우리는 무엇을 훔치면 좋을까. 잘 생각해보시라. 잘 생각해보시되 너무 애쓰지는 마시라. 집세와 맞바꿀 수 있는 것들은 우리가 훔쳐가도록 무방비한 상태에 있는 경우가 드무니까 말이다. 이제부터는 좀 더 현실적인 생각을 해야 하니까, 열한 살이 아니라 스물한 살이거나 서른한 살로 자란 셈 치자. 이번에는 갑갑하고 슬프다. 자꾸 남의 꿈에 우리가 가진 것 전부를 걸게 되니까 말이다. 이를 테면, 일론 머스크의 화성 프로젝트에 배팅하거나 카카오의 플랫폼 놀음을 욕하면서 투자용 계좌를 하나 튼다. 코인 시장에서 ‘존버’를 외치거나. 

조지나는 윌리라는 개를 훔치는 데는 성공한다. 미처 계획하지 못했던 건 윌리의 주인 카멜라 아줌마가 생각만큼 부자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심지어 그녀에게는 집이 있되, 빈집이다. 있어야 할 것들이 없는 텅 비어 있는 집. 카멜라 아줌마는 가족들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곤궁한 처지다. 집을 채워야 할 가족은 진즉에 파탄 나 있다. 어쩌면 카멜라 아줌마는 ‘늙은’ 조지나다. 빈집의 소유자 카멜라 아줌마에 이어, 집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집 따위 안중에도 없는 떠돌이 노숙자 무키 아저씨까지 등장한다. 무키 아저씨의 정체가 얼른 상상이 되지 않는다면, 이 소설을 원작으로 삼아 만들어진 동명의 영화에서 최민수 배우의 역할을 떠올리면 된다. 카멜라 아줌마는 김혜자 배우가, 무키 아저씨는 최민수 배우가 연기했다. 조지나가 개를 훔쳤다는 사실까지 이미 다 파악하고 있는 노숙자 아저씨 무키는 조지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최민수 버전으로 읽으시라. 

“때로는 뒤에 남긴 삶의 자취가 앞에 놓인 길보다 더 중요한 법이라는 거다. 너한테도 신조가 있냐?”

무키 아저씨가 가르치고 싶었던 건 이런 거다. 타인의 행복을 빼앗지 않고 자신이 벌인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그것이 자기 삶을 삶답게 만드는 용기라는 것을 조지나는 무키로부터 배운다. 일상의 언어로 다시 말하자면, 삶에 공짜는 없다는 것! 삶은 보답하거나 응징한다는 것! 그 가르침과 더불어 아이는 성장하고, 그 성장은 이 소설이 거두고 싶은 해피엔딩일 것이다. 

소설은 해피엔딩을 쓰도록 내버려 두고, 우리는 현실로 돌아와 좀 삐딱해지기로 하자. 소설은 무릇 진실과 마주하는 용기에 대해서 말하기를 좋아하는 법이다. 그리스 신화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처럼 혹은 탈무드 같은 경전에 등장하는 교훈담처럼 아주 오래된 모델이다. 그렇지만 무키 아저씨처럼 자기 삶의 철학을 지금 여기에서 함부로 떠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것은 자칫 ‘아프니까 청춘이다’ 류의 ‘가짜 힐링’이기 십상이다. 지금 이곳의 우리는 세상의 무언가를 훔치기는커녕, 겨우 있는 것조차 자꾸 탈탈 털리는 중이니까 말이다. 

영화 제목을 빌어 말한다면,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가 지금 이곳에 더 적합한 표현일 것이다. 소설 속 어린 조지나는 개를 훔쳐 집을 마련하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우리의 젊음에게 집이라는 게 과연 가능할까, 라는 근본적인 회의와 절망이 훨씬 가깝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어버린 나로서는, 혹은 우리로서는, 그 현실이 괴로울 따름이다. 지금 이곳의 세상은, 아뿔싸, 우리가 만든 것이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세상에 대한 낭만 혹은 로망은 어쩌면 지금 이곳의 젊음에게는 감옥이나 수렁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 사실은 끔찍하다. 개를 훔치는 방법은 그 각성 너머에 있는 것이려나. “뒤에 남긴 삶의 자취가 앞에 놓인 길보다 더 중요한 법”이라는 무키 아저씨의 화살이 날아와 꽂힌다. 이봐, 조지나 말고 당신! 신조가 있나?

제주시 이도2동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
제주시 이도2동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

'한뼘읽기'는 제주시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이 한권 혹은 한뼘의 책 속 세상을 거닐며 겪은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다. 사전적 의미의 서평 즉, 책에 대한 비평보다는 필자들이 책 속 혹은 책 변두리로 산책을 다녀온 후 들려주는 일종의 '산책담'을 지향한다. 두 필자가 번갈아가며 매주 금요일 게재한다.<편집자 주>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