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왕조재건인류발전남성아버지리더연합당에 아내를 고발하는 이유가 바로 이거예요!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창비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창비

은밀히 모셨는데, 다들 남자들인가요? 확실하죠? 이제, 시작할게요.

아내를 고발합니다. 제 아내는 페미니스트예요! 아내가 느닷없이 페미니즘으로 투신한 것은 아니었어요. 살면서 저절로 그리 된 거겠죠. 그녀에게 텍스트가 되어 준 것은 그녀가 살아야 했던 그녀의 삶이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지난 시절 공안 문서식 표현을 빌면 ‘자생적’ 페미니스트였고, 그래서 더 용맹할 수밖에 없었던 ‘과격분자’인 셈이죠. 그러나 가족들 중 그 누구도 그런 사실을 깨닫지는 못했어요. 남편인 저만 빼고요! 네? 저에 대해 설명해 보라고요? 음, 제가 나쁜 사람은 아닌데, 좀 눈치 없고 고지식하다고나 할까요. 마치 엠마 보봐리의 남편과 라만차의 돈키호테를 섞어놓은 것처럼요. 아내의 욕망에는 둔감한 반면 자신의 예술적 취향에는 막무가내인 편이죠. 그게 무슨 소리냐고요? 플로베르랑 세르반테스, 아직 못 읽어보셨어요? 설명해드릴까요? 아 그러고 보니까 아내가 저를 ‘설명충’(맨스플레인, man+explain)이라고 하더라구요. 잘난 척 떠들기 좋아한다는 거죠.

아내는 제 구라를 썩 좋아라하지 않았어요. 자신은 충분히 들을 준비가 돼 있지만, 제 이야기가 모든 걸 다 결정하는 식이어서 불편하다는 거예요. 모든 사실과 진리가 제 것인 양, 그래서 모든 가치 판단과 결정이 자기만의 몫인 양 굴어서 영 불쾌하다는 거예요. 당신처럼 잘난 척 떠드는 남자들을 보면 마치 지성知性이 가랑이 사이에 있는 것 같다나요. 그런 얘기를 들으면 저 역시 정말 불쾌해요. 최근에 문제가 될 만한 사건요? 한 번 들어보세요. 우리 집에는 리트리버 강아지 한 마리가 있는데요. 아내가 주로 아침에 산책을 시키지만, 사정에 따라 가끔 늦은 밤에도 해요. 그런데 혼자 산책하기는 무섭다는 거예요.

강아지가 언제 어떤 행동을 할지 무섭다는 게 아니라, 깜깜한 밤에 공원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혹은 마주쳐야 할 사람들이 무섭다는 거예요. 특히 남자들이겠죠.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자, 무서운 표정으로 돌진하듯 아내 쪽으로 직진하는 남자, 어두운 모퉁이에서 불안스레 서성이는 남자, 둘 셋 무리지어 여자들을 위아래로 스캔하는 남자들. 사실 그런 공포심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죠. 우리 사는 세상이 워낙 험하잖아요. 밤에는 될 수 있으면 안 나가는 게 나아요. 

아참, 책에 바로 그런 내용이 나와요. 한 대학 캠퍼스에서 강간사건이 발생하자 그 후속조치로 저녁시간에 여학생들에게 일종의 통금조치를 취했대요. 그런데 한 여학생 왈. 아니 왜 우리가 그래야 하냐. 오히려 남자들에게 통금을 실시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요. 말인즉슨 맞죠! 가해자를 벌하고 가해 가능성을 줄여야지, 당하는 쪽만을 늘 닦달하는 게 사리에 맞는 해결책은 아니죠. 이런 걸 보면 페미니즘은 생각의 힘이 센 사람이 하는 거예요.

그나저나 강아지 산책은 어떻게 됐냐고요? 웬만하면 같이 가지만, 저도 사람인지라 피곤해서 못 가겠다고도 해요. 그런 날이면 모두가 찜찜하죠. 미래의 불확실한 폭력이 현재를 짓누르는 이런 세상에서는 말 못하는 짐승도, 머리 검은 짐승도 다 똑같이 불행한 거죠. 저로서는 아침에 설명충이라는 타박을 듣고 저녁에는 강아지 산책도 못 시키는 날이면 더 해요! 권력의 담지자처럼 굴다가 기껏 아내와 강아지의 밤길조차 보장해주지 못하는 이 모순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요? 

혹시 아내에게 무슨 비밀은 없냐구요? 있어요! 저는 아내를 버릴 수 없어요, 아내는 저를 버릴 수 있을지 몰라도 저는 그럴 수 없어요. 남자들의 세상이라는 게 여자들의 세상없이는 불가능한 거잖아요. 아니, 독신이나 ‘자연인’이 어렵다는 게 아니라-아 그러고 보니 ‘자연인’에는 왜 여성이 없는 거죠?-70억 5천년 역사가 그렇다는 거예요. 남성이 여성을 정복하고, 그게 제도화되고, 그게 문화가 되고 그런 거잖아요. 남자로 태어난 게 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잖아요. 반면에 여자로 태어났다는 것은 가혹한 숙명이잖아요. 아내가 원하는 것은 남자가 되고 싶다는 게 아니라 여자로서 행복하고 싶다는 거예요. 여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거예요. 저도 제 딸을 생각하면 세상은 그래야 마땅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아내는 지금 혁명 중이에요. 아, 놀라지 마시구요. 아내의 혁명은 지난 시절처럼 강고한 강령 아래 지하당을 결성, 단일대오로 단결해 현 체제를 전복시켜 권력을 잡는 방식이 아니에요. 어찌 보면 일종의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 거예요. 충격으로 파동을 만들고, 그 파동이 우리 모두에게 조금씩 익숙한 것이 되고 마침내는 되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만드는, 조금씩 아주 오래가는 방식의 혁명이에요. 그 혁명에는 아내의 몫이 있을 것이고, 딸의 몫이 있을 것이고 그 딸의 딸 몫이 있을 거예요. 보세요. 

“여성들은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전쟁이다. 그리고 비록 우리가 조만간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우리가 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떤 전투에서는 이겼고, 어떤 전투는 지금 한창 치르고 있다. 어떤 여성들은 썩 잘해나가고 있고, 어떤 여성들은 괴로워하고 있다. 세상은 흥미진진한 방식으로, 가끔은 상서롭다고 봐도 좋을 만한 방식으로 지금도 변하고 있다.”(《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p.220-221)

우리 집에는 페미니스트 혁명가가 살아요! 아내는 여자 친구들과 매일 회합하고, 일상을 나누고 일거리를 공유하고, 카톡으로 온갖 얘기를 나눠요! 게다가 이런 책들을 읽고 토론해요. 심각한 문제죠. 제가 왕조재건인류발전남성아버지리더연합당에 아내를 고발하는 이유가 바로 이거예요!

 

제주시 이도2동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
제주시 이도2동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

'한뼘읽기'는 제주시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이 한권 혹은 한뼘의 책 속 세상을 거닐며 겪은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다. 사전적 의미의 서평 즉, 책에 대한 비평보다는 필자들이 책 속 세상으로 산책을 다녀온 후 들려주는 일종의 '산책담'을 지향한다. 두 필자가 번갈아가며 매주 금요일 게재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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