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책들이여, 나의 서점으로 오라!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날아보자꾸나.”

(사진=한뼘책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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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은 책을 사고 파는 상업적인 공간이다. 온갖 미사여구를 붙인다 해도, 혹은 뜻밖의 아이디어로 그 사실에 균열을 내는 경우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서점은 책을 사고 파는 공간이다. 당연한 사실 하나 더. 서점에서는 책을 만들지 않는다. 책 만들기는 출판사의 몫이다. 그렇다면 책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은 출판사를, 책을 팔아서 밥벌이를 하고자 하는 사람은 서점을 차리면 그렇게 해피엔딩? 

나는 제법 긴 시간을 책 언저리에서 보냈다. 한때는 글 쓰는 게 밥벌이였고 다음 또 한때는 남이 쓴 글을 펴내는 게, 이제는 남이 만든 글을 파는 걸 밥벌이로 삼고 있는 게 나의 이력의 일부다. 고백하면 그 옛날 글 쓰는 게 가장 좋았고, 지금 당장 파는 게 가장 부대낀다. 오해는 마시라. 이것은 순전히 나의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니. 

거창하게 말하면 현실과 이상의 딜레마? 비유적으로 말하면 ‘책’과 ‘서점’의 괴리 혹은 불협화음? 그럴지도 모르겠다. 셀러(seller)가 아니라 메이커(maker)가 되고자 하는 내 안의 욕망이 현실과 부대낀다. 현실이 욕망의 따귀를 올려 부친다. 갈등이 발전을 부르기도 하지만 불화를 낳기가 더 쉽다. 나는 불화한다. ‘서점’에서 ‘책’과 화해할 수 있을까?

(사진=한뼘책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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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주인이라면 누구라도 자신의 서점이 서점스럽기를 희망하리라. 서점이 크든 작든, 책이 많든 적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오가고, 서점을 중심으로 하는 커뮤니티가 활발히 생장하는 그 어떤 아름다운 풍경을 누군들 꿈꾸지 않겠는가. 그래서 서점주인은 늘 분주하다. 서점은 그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그는 멈출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와는 조금 다른 책스러운 서점의 풍경 같은 것은 없을까? 있다. 얼마 전 책방 ‘소리소문’에서 봤던 ‘리-커버북(re-cover book)’을 주저없이 꼽겠다. 리-커버북은 출판사에서 만든 책 표지 대신, 서점이 지역 아티스트와 협업해 새로운 표지를 입혀 판매하는 식이다. 

이미 존재하는 책의 표지를 새로 만드는 창조적 행위를 통해 책에 의미와 가치를 높이는 셈이다. 혹자는 상술에 불과한 것이라고 폄하할 수도 있겠지만, 핵심 프레임은 그게 아니다. 서점이 책 그 자체에 개입할 수 있다는 그 가능성이 핵심이다. 셀러가 메이커도 될 수 있다는 그 가능성!

(사진=한뼘책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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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능성은 나를 매혹시켰다. ‘소리소문’은 카뮈의 <이방인>과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처럼 잘 알려진 서양 고전문학을 대상으로 한 듯 보였는데, 나는 또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어야 할 것 같았다. 출판을 방불케 하는 그 어떤 ‘스펙터클’이 없을까. 둔한 나의 머리에서 뾰족한 게 나오지 않았다.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내가 쥘 수 있었던 생각은 ‘이미 존재하는 책들을 출판하는 것’이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책들 중에서 나의 스타일대로 책들을 고르고, 그 책들에 대한 글을 쓰고, 한 권 한 권 새롭게 리커버링 하는 것, 그것이었다. 일종의 라이브러리이자 컬렉션인 셈이다. 서점 속에 존재하는 일종의 ‘책들의 섬’이라고 멋 부려 말해볼 수 있을까? 나는 그것을 ‘어게인 북스(Again Books)’라고 이름했다.

어게인 북스의 책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지금은 조금 멀어졌거나 잊혀진 책들을 다시금 호명한다. 그래서 어게인이다. 살짝 광고하면, 윌리엄 모리스의 <에코토피아 뉴스>, 미셸 슈나이더의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폴 라파르그의 <게으를 수 있는 권리>, 쥘 미슐레의 <마녀>가 이번에 호명된 책들이다. 

(사진=한뼘책방 제공)
(사진=한뼘책방 제공)

디자인은 기존 편집 문법에 얽매이지 않는 방향으로 접근했다. 표지가 포스터처럼 보였으면 좋겠다. 이 같은 디자인 작업은 ‘동네 디자이너’ 송주연과의 협업이다. 그와 함께 한 첫 번째 작업이 마침 윌리엄 모리스였는데, 모리스가 꿈꾸었던 노동과 예술이 함께 하는 공동체를 흉내라도 낼 수 있으면 좋겠다. 그가 함께하지 않았다면 ‘어게인 북스’는 십중팔구 그저 또 하나의 상상 속의 기획으로 그쳤을 것이다. 나는 그에게 빚졌다.

이 ‘어게인 북스’의 결과에 대해 나는 서둘러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책 선택이 오락가락해도 괜찮다. 표지 디자인이 구리다 해도 좋아라. 책 판매가 신통치 않아도 기다리리라. 마음속에서 깃발은 이미 높이 펄럭이고 있다. 바람이 깃발을 뉘이면, 다시 들면 된다. 그래야 어게인이다. 

세상의 모든 책들이여, 나의 서점으로 오라!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날아보자꾸나.”(이상 소설 <날개>의 마지막 문장)

제주시 이도2동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
제주시 이도2동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

 

'한뼘읽기'는 제주시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이 한권 혹은 한뼘의 책 속 세상을 거닐며 겪은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다. 사전적 의미의 서평 즉, 책에 대한 비평보다는 필자들이 책 속 세상으로 산책을 다녀온 후 들려주는 일종의 '산책담'을 지향한다. 두 필자가 번갈아가며 매주 금요일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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