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17일 오후 제주시 오라일동 제주투데이 사무실에서 열린 제주대안연구공동체와 제주투데이 공동 주최 테이블 강좌 첫 번째 이야기 ‘유목문화와 제주’에서 문화인류학자이자 작가인 공원국씨가 강연하고 있다. (사진=박소희 기자)
지난 2월17일 오후 제주시 오라일동 제주투데이 사무실에서 열린 제주대안연구공동체와 제주투데이 공동 주최 테이블 강좌 첫 번째 이야기 ‘유목문화와 제주’에서 문화인류학자이자 작가인 공원국씨가 강연하고 있다. (사진=박소희 기자)

“제주도에 와서 가장 크게 놀랐던 건 여기가 동그랗다는 사실입니다. 한라산을 중심으로 특별히 모난 데가 없이 타원형으로 돼 있지 않습니까. 동그랗다는 건 문화인류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어마어마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상당히 평등하다는 걸 뜻하는데요. 플라톤의 이상국을 보면 국가를 동그랗게 만들어서 나눌 수 있는 지형을 선택하고 있죠.” 

지난 2월17일 오후 제주대안연구공동체와 제주투데이는 공동으로 테이블 강좌 첫 번째 이야기 ‘유목문화와 제주’를 주최해 문화인류학자이자 작가인 공원국씨를 강연자로 초청했다. 

공 작가는 바다로 둘러싸인 섬인 제주도의 문화가 초원에서 나타난 유목문화와 닮은 부분에 주목하며 강연을 이끌어나갔다. 

그는 우선 제주가 가진 지리적·환경적 특성에 감탄했다. 누구든 이상적인 국가를 만든다고 하면 동그란 지형을 상상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게다가 제주도는 부챗살처럼 물이 동서남북으로 흘러 섬 어디에서든 물에 대한 접근성도 비슷하다. 

이 같은 특징 때문일까. 예전 제주도 지도를 보면 섬 전체를 10개 구역으로 나누고 이를 다시 50개 구역으로 나눠서 말 목장이 형성됐는데 대부분 큰 차이 없이 균등하게 구획됐다. 이런 형태는 중앙아시아 쪽 산악지대 목장이 계곡을 기준으로 나눠진 모습과 유사하다. 어느 동네에서든 바람까지도 공평하게 맞는 제주 같은 곳에선 사람들이 비슷하게 살게 되는 여건이 만들어진다. 

공 작가는 또 제주에 유목문화와 유사한 문화 중 하나로 무덤의 특징을 꼽았다. 그는 “한라산 둘레길을 갔더니 무덤 주위로 담장이 소담스럽게 둘러싸고 있더라”며 “망자가 누워있는 곳이니 마소는 여기에 들어오지 말라는 거 아닌가. 이건 굉장히 유목문화스러운 것”이라며 놀라워했다.

대부분 농업지역에선 말과 소를 우리 안으로 넣어놓는 반면 제주지역에선 반대로 사람이 우리 안으로 들어간 것. 무덤 이외의 다른 담장의 경우 입구가 터져 있어 마소가 지나다닐 수 있게 해놓은 것 역시 유목문화와 닮아있다. 

둔지봉 분화구에는 용암이 분출하면서 화산쇄설물이 퇴적한 이류구와 무덤이 형성돼 있다.
제주시 구좌읍 한동리 둔지봉 분화구 인근에 형성된 무덤들. (사진=제주투데이DB)

#유목문화의 본질 첫 번째: 자유

공 작가는 현재 본인이 연구하는 유목문화의 본질에서도 제주의 문화와 겹치는 점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첫째는 ‘자유’. 마치 그 어디에도 걸리지 않고 지나가는 바람과 같다. 

기원전 1만년 인류가 농경을 시작하면서 메소포타미아 평원 등에선 문명이라 부르는 중앙집권적 형태의 마을이 생겨났다. 문명이 일어난 지역 북쪽으로 이동한 사람들과 수렵민이 만나 특이한 경제 형태가 만들어진다. 동물을 길들이면서 사냥도 하는, 산림과 초원 경계 지역에서 두 가지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공 작가는 이들을 유목민의 선구자라고 봤다. 

유목민과 농경민은 주거 형태부터 다르다. 모든 정주 문명이 생겨날 때 가장 먼저 만들어지는 것은 집이다. 당시의 집은 지금과 같이 거실과 화장실 등이 갖춰진 장소가 아닌, 지붕 아래 네모난 방의 형태다. 지금의 원룸과 비슷하다. 

“옛날엔 질병도 많고 해서 사람들을 따닥따닥 붙어있게 하면 오히려 위험했는데 왜 방 안에 사람들을 넣었을까요. (지배세력이) 세금을 받아야 했거든요. 세금을 걷기 좋은 환경이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일단 사람들을 방 안에 넣은 후에는 함부로 나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방을 만든 후엔 인구조사를 시작하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자손까지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이것이 바로 국가의 형태다. 질병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모여 살며 개인의 자유가 배제되는 환경이다.

방을 가두고 있는 경계는 국(國), 그 밖으로 나가면 교외 또는 국외, 그다음에 들판, 더 나가면 황무지가 있다. 공 작가가 말하는 유목민은 황무지에서 사는 사람, 다시 말해 구획된 농경지 밖에 있는 사람을 뜻한다.  
 
유목민은 농경지에서 사는 사람들과 달리 모여있으면 안 된다. 그들이 기르는 소와 말에게 풀을 충분히 먹이기 위해선 넓은 곳에 흩어져 지내는 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공 작가는 “유목은 분산적인 것이며 미래적인 것”이라며 “바로 첫 번째 본질인 자유”라고 강조했다. 

몽골의 주거 형태 중 하나인 '게르'. (사진=플리커닷컴)
몽골의 주거 형태 중 하나인 '게르'. (사진=플리커닷컴)

#유목문화의 본질 두 번째: 공유

유목문화의 두 번째 본질은 ‘공유’다. 유목민이 개인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것은 가족과 그 가족이 가진 텐트, 그리고 동산인 가축뿐이다. 실질적인 생산수단인 땅은 일정 규모의 집단이 공유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동산의 개념과는 큰 차이가 있다. 

“가축은 멀리 움직여야 하거든요. 땅을 공유하지 않고 담장을 둘러치면 가축들이 죽습니다. 한정된 땅에서 가축들이 풀을 여러 번 뜯어먹으면 풀이 뿌리 채 뽑혀 다시 나지 않으니까 먹을 게 없잖아요. 그래서 항상성이 유지되는 단위가 공동체가 공유하는 단위가 되는 겁니다.” 

물론 땅을 공유하는 공동체 간 장벽(경계)은 분명히 있기 때문에 다른 공동체의 진입은 막는다. 하지만 유목지대에서 ‘이동’은 일종의 생존권이기 때문에 모든 지역은 누구나 지날 수 있는 ‘길’이어야 한다. 전쟁을 목적으로 침범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길을 내줘야 한다. 오히려 지나가는 걸 막으면 전쟁이 일어난다. 

공 작가는 이 역시 제주의 문화와 유사하다고 말한다. 유목지대의 초원과 제주의 바다가 비슷하다는 것. 제주에서도 생산수단인 바다를 일정 규모의 공동체인 ‘어촌계’가 공유했다. 다른 어촌계의 바다에서 소라를 캐거나 고기를 잡으면 안 되지만 배가 지나가는 걸 막진 않는다. 누구나 지날 수 있는 ‘길’이다. 

지난 2월17일 오후 제주시 오라일동 제주투데이 사무실에서 열린 제주대안연구공동체와 제주투데이 공동 주최 테이블 강좌 첫 번째 이야기 ‘유목문화와 제주’에서 문화인류학자이자 작가인 공원국씨가 강연하고 있다. (사진=박소희 기자)
지난 2월17일 오후 제주시 오라일동 제주투데이 사무실에서 열린 제주대안연구공동체와 제주투데이 공동 주최 테이블 강좌 첫 번째 이야기 ‘유목문화와 제주’에서 문화인류학자이자 작가인 공원국씨가 강연하고 있다. (사진=박소희 기자)

 

공 작가는 최근 유행어처럼 쓰이는 ‘공유경제’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지적하기도 했다. 생산수단을 공유하게 되면 거기서 발생하는 이익까지 공유주체 모두가 나눠 가져야 공유경제라 부를 수 있다. 하지만 생산수단만 공유하고 수익은 정보를 독점한 기업만 빨아들이는 기형적인 시스템을 꼬집었다. 

특히 플랫폼 경제(기업이 제품과 서비스의 공급·판매가 이뤄지는 플랫폼만을 제공하는 형태)에서 플랫폼을 운영하는 기업이 수익의 대부분을 가져가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플랫폼 기반 음식배달 서비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이 배달 노동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충분히 지급하지 않으면서 막대한 수수료 수익을 벌어들이는 현상은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유목문화의 본질 세 번째: 이유없는 환대

공 작가는 유목문화의 마지막 본질로 ‘이유없는 환대’를 꼽았다. 유목지대에선 상대방과 적대적인 상황이 아니고 무리를 끌고 오지 않는 한 여행자를 보호하는 강력한 규칙이 있다. 본인도 언제든 다른 지역에서 위험에 처한 여행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몽골에서 조드라는 눈바람과 혹한이 닥치면 살 수가 없으니까 가축과 함께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요. 그럼 그 지역에 사는 다른 부족이 이유없이 이들한테 문을 열어줍니다. 왜냐. 우리도 언제든 그런 상황이 되니까. 유목지대에선 계속 자연환경이 바뀌기 때문에 이런 규칙이 생겨난 거죠.”

바다에서도 비슷한 규칙이 있다. 국제규약에 따르면 항해 중 난파선과 조난선을 발견할 경우 국적을 따지지 않고 구해야 한다.    

유목문화에서 이 같은 특징들이 나타나는 이유는 사람이 귀해서다. 권력과 이익은 소수에게 편중되지 않는다. 모두가 상생하고 공존하기 위함이다. 공 작가가 말하는 원(圓)의 방식이다. 동그랗게 생긴 제주도(濟州島) 역시 이를 닮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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