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일하다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죽은 고(故) 김용균씨. (사진=공공운수노조)
지난 2018년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일하다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죽은 고(故) 김용균씨. (사진=공공운수노조)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던 고(故) 김용균(당시 24세). 2018년 12월 10일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 김용균은 예견된 위험 속에서 입사 3개월만에 처참히 목숨을 잃었다. 

김용균 죽음 이후 62일간 연대투쟁을 함께 했던 노동자, 시민, 노동조합 등은 2019년 10월 26일 사단법인 김용균 재단을 출범했으며, 이들은 "기업의 살인"과도 같은 산재(산업재해)가 오로지 기업만의 문제인지, 한국 사회의 책임은 없는지 질문하기 위해 '김용균 김용균들'이란 대중서를 발간했다. 

이에 《제주투데이》《노동자역사 한내》《4·3기념사업위원회》《민주노총제주본부》는 11일 오후 7시 민주노총 제주본부에서 북콘서트를 열었다. 

11일 민조노총 제주본부에서 진행된 '김용균 김용균들' 북콘서트. (사진=박소희 기자)
11일 민조노총 제주본부에서 진행된 '김용균 김용균들' 북콘서트. (사진=박소희 기자)

이날 북콘서트 이야기손님으로는 공동저자인 권미정 김용균 재단 사무처장이 자리했다. 

권미정 사무처장은 "제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제주4·3'과 '세월호'다. 재난이나 참사 등 국가나 정부가 자행한 '살인'은 끊임없이 요구하는 사람들만 존재한다면 한계는 분명 존재하지만 '언젠가 반드시' 사회적 책임을 물어왔다"고 운을 뗐다. 

그러나 산재는 다르다. 그는 "'기업 살인'의 경우는 사회적 책임을 묻는 흐름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김용균 죽음 이후 더는 이전처럼 살 수 없는 존재들의 목소리를 통해 산재가 왜 사회적 문제인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이 이들 셋을 어떻게 바꿔냈고, 그들의 변화를 통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독자들과 함께 찾아보고 싶었다"고 했다. 

태안화력 9,10호기 석탄취급설비. (사진= 동양)
태안화력 9,10호기 석탄취급설비. (사진= 동양)

# 고통에만 머물 수 없기에...산재 생존자 이인구 씨

1부는 김용균 주검을 가장 먼저 발견한 뒤 트라우마와 함께 살고 있는 직장 동료 이인구 씨 이야기를 담았다.

김용균이 근무한 태안화력발전소에서는 2010년부터 2020년까지 김용균을 포함해 16명의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고, 사고 현장 목격자인 이 씨는 '발전 노동자들이 그렇게 일 할 수밖에 없었던 작업 과정 자체의 문제를 드러내 피할 수 없는 구조의 문제가 있다고 주장해온 사람'이다. 

사고 이후 집에서 잠드는 것이 힘들었던 이 씨는 당시 김용균 빈소에 가야만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62일간 계속된 상경투쟁을 마치고 회사로 복귀한 그는 자신이 중대재해를 목격한 2차 피해자임을 알게 됐고, 지금까지 트라우마 치료를 받고 있다. 

권미정 사무처장은 "인구 씨는 김용균 투쟁이 자신을 살렸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부제가 '싸울 때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인 이유"라고 했다. 

따라서 이인구 씨를 인터뷰 한 림보 기록활동가는 그를 '산재 생존자'라고 쓴다.

한국 사회는 산재 트라우마에 대한 논의가 아직 부족한 상황이라 그 논의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정치적 운동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현재 직업 트라우마 관리 프로그램이 작동하고 있지만 아직 사망사고에 한정돼 있으며, 정신적 어려움에 대한 지원과 관리는 권고사항일 뿐이라 산재 생존자인 '이인구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강제력 있는 행정적 행위가 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2021년 08월 17일 오전 10시, 국회 본관 223호, 제대로 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 촉구 국회단식단 공동기자회견 (사진=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본부)
2021년 08월 17일 오전 10시, 국회 본관 223호, 제대로 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 촉구 국회단식단 공동기자회견 (사진=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본부)

# 최소한의 것을 지키기 위해...유가족 김미숙 씨

2부는 세상을 잃은 슬픔과 분노로 싸우며 새롭게 삶을 만들어가는 어머니 김미숙 씨 이야기다. 

김 씨가 아들의 빈소를 지키고 있을 때, 하청회사 이사와 또 다른 한 사람이 다가와 "용균이는 착실하고 일도 잘하고 그러긴 했는데, 가지 말라는 데를 가고 하지 말라는 일을 했어요. 그래서 사고가 났습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즉 노동자 잘못으로 사고가 났다는 것.

사고 이후 김용균의 시민사회장을 치르고 난 뒤 15년을 끌어온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2021년 제정됐지만 원청인 한국서부발전 태안발전본부(태안화력발전)와 하청인 한국발전기술은 여전히 '노동자 잘못으로 산재가 발생했다'는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고 한다. 

김 씨는 2018년 12월 16일 출범한 시민대책위가 내민 손을 잡았고, 아들이 일하던 사고 현장에 처음으로 섰다. 그를 인터뷰한 '희음' 시인은 아들이 작업했던 현장 이야기를 할 때 '목소리마저 딱딱해졌다'고 묘사한다.  자신보다 나은 환경에서 일하길 바랐지만 그 바람은 현장에서 무너졌다. 

한국발전기술이 담당하는 태안화력발전소 9,10호기는 애초 하청업체 외주를 줄 목적으로 설계·시공·건설된 곳이었고, 건설 비용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엘리베이터도, '배수관 히팅(난방) 케이블'도 설치되지 않았다. 김 씨는 비용만을 고려하는 노동환경이 어떤 비극을 만들어내는지 목도했고, 물청소까지 마친 '사고 은폐 현장'에서 김 씨는 짐승처럼 울었다고 한다. 

아들 죽음으로 한 개인의 문제가 그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무관하지 않음을 알게 됐고, 투쟁의 길에 나서게 된 김 씨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일명 김용균법)에도 전력을 다하게 된다. 그러나 2019년 국회를 통과한 개정 산안법은 핵심이었던 도급 금지에 발전소 업무가 빠졌다. 

권미정 김용균 재단 사무처장 (사진=박소희 기자)
권미정 김용균 재단 사무처장 (사진=박소희 기자)

권미정 사무처장은 이날 "김미숙 씨의 경우 온 힘을 다했는데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이 만들어지자 도대체 뭘 한 건가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한다. 산안법 개정을 제대로 못했다는 마음은 이후 '중대재해처벌등에관한법률(중대재해처벌법)' 제정 투쟁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김미숙 씨는 이제 유족이라는 이름으로 호명되지 않는다". 김용균 죽음 이후 싸움의 길에 들어선 그는 이제 노동활동가라는 말을 더 많이 듣는다. 그에게 '김용균 이름을 지키는 일이란 또 다른 용균이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일'이며 이를 위해 기꺼이 김용균들 옆에 선다. 

김 씨는 이 책을 통해 한국사회에 만연한 '유족다움'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유족을 불쌍한 존재로만 바라보고 규정하는 한국사회가 고정관념을 깨야 서로에게 선 긋지 않고 다가갈 수 있다고. 그는 누구도 죽지 않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 때까지 연대가 필요한 누군가의 곁에서 '싸우는 사람'으로 남을 것이라고 고백한다.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100인과 만납시다' 기자회견에서 김용균 죽음을 알리며 눈물을 보이는 이태성 씨. (사진=민주노총)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100인과 만납시다' 기자회견에서 김용균 죽음을 알리며 눈물을 보이는 이태성 씨. (사진=민주노총)

# 일상이 된 싸움들...발전 비정규직 동료 이태성 씨

3부는 계속되는 일터의 죽음을 막기 위해 일상의 싸움을 해나가는 노조 동료 이태성 씨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를 인터뷰한 사람은 62일간의 김용균 투쟁을 함께 한 권미정 사무처장. 이날 열린 북콘서트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2018년 12월 11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100인과 만납시다'라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당시 이태성 씨는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같이 활동하기 위해 구성한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간사였고, 발전 비정규직 대표로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김용균 죽음은 당시 "오늘 또 동료를 잃었습니다"라고 말하며 눈물을 터트린 이태성 씨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고, 이때 "나 김용균은 화력발전소에서 석탄설비를 운전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손피켓을 든 사진이 공개됐다. 

북콘서트 사회를 본 김경희 민주노총제주본부 전략조직국장은 "그 사진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고 생각한다"면서 "이 책에도 나왔지만 태안화력발전소 9,10호기는 외주화 하려고 더 취약하게 만들었다"고 개탄했다. 

발전소의 취약한 노동환경은 이태성 씨 인터뷰를 통해 상세히 알 수 있다. 

지역 언론에 1년 쯤 몸담았다가 일이 맞지 않아 1998년 12월 10일 한전 자회사인 한전산업개발 태안사업소에 입사한 김태성 씨는 한 달 간 낙탄을 치우는 "삽질만 하다"가 회사 눈밖에 나는 바람에 김용균처럼 교대로 운전원 업무를 하게 됐다. 

이 책에 따르면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석탄을 옮기는 컨베이어 벨트 아래로 떨어지는 석탄을 낙탄이라고 한다. 낙탄은 그대로 두면 벨트 아래 쌓여서 벨트를 멈추게 하거나 불이 나기도 하고 기계 고장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런 낙탄을 치우고 벨트나 설비 이상을 점검하는 게 실제 현장 운전원들이 하는 업무다. 

"낙탄 치우고 분진 빨아들이고 치우는 업무를 따로 분리할 수 있어요. 예전에 일했던 서천화력발전소에는 바큠(진공) 클리너로 치우는 용역업체가 따로 있었는데, 여기는 우리(한국발전기술) 직원이 해요. 회사에서 지급하는 삽은 짧아서 우리가 만들어서 썼죠. 2미터쯤 되는 대나무로 손잡이를 길게 하고, 탄을 끌어내야 하니까 끝 쪽은 휘어지게 해서 만들어 썼어요. 근데 그걸로 만들어도 안 닿고 어깨까지 더 집어넣어야 하는데, 그래도 분진 때문에 잘 안 보여요."

-직장 동료 이인구 씨 인터뷰 중-

이태성 씨가 입사한 1998년에도 위험하게 일했지만 김용균이 입사한 2018년에도 위험하게 일했다. 법은 사업주의 책임을 강조하지만, 실재 산재가 발생하는 현장에서는 노동자에게 산재 발생 원인 책임을 묻는다. 그가 산안법 개정 운동에 발벗고 나선 이유다.  

이 책에 따르면 한 해 2400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하고 10만 명의 노동자가 산재를 당하지만 간접고용 노동자 죽음은 산재로 드러나기 쉽지 않다. 

산재를 당하면 원청기업은 하청업체와 재계약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꼬리 자르기를 하기 때문에 노동자의 과실로 정리되는 과정을 이 씨는 숱하게 봤다. 

작업을 위한 매뉴얼에는 2인 1조 등 안전한 노동을 위한 기본적인 조치가 적혀있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했다.

위험할 때 당겨서 기계를 멈추게 하는 비상 목숨줄인 풀코드는 혼자 일하는 상황에서 무용지물이지만 발전사에서 작성한 산재 조사 보고서에는 "노동자들이 조심하지 않아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기록돼 온 것. 

책 '김용균 김용균들' 책 북콘서트가 11일 진행됐다. (사진=박성인 이사)
책 '김용균 김용균들' 책 북콘서트가 11일 진행됐다. (사진=박성인 이사)

2004년 처음 중대재해를 가까이서 목격한 김태성 씨는 이 책을 통해 말한다. "우리탓이 아니었다"고. 그리고 일하다 죽은 이들을 "이대로 보낼 수 없다"고 

김용균 죽음 이후 지쳐있던 발전 비정규직 노조가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김용균 죽음이 법개정, 구조조정, 정규직 전환과 연관돼 있다는 생각을 못했지만 김용균 죽음을 풀기 위해서는 더 큰 싸움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김용균 죽음은 '위험의 외주화' '비정규직'을 상징하는 사건이 됐고, 28년만에 '산안법 개정'을 할 수 있었던 건 시민과 노동자가 같이 김용균 죽음을 지킨 결과다. 

권미정 사무처장은 "김태성 씨 역시 아직도 약을 먹는 등 산재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했다. 하지만 김용균 투쟁을 비롯해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싸움이 있어 살 수 있었다고 말한다. 산안법 개정은 아쉬움도 있지만 태성 씨는 한 발 앞으로 나아간 거라고 생각한다. 변화의 시동을 걸었고, 그로 인해 중대재해처벌법도 제정할 수 있었다고 믿는다"고 했다. 

2022년 2월 23일 오전 제주대학교 기숙사 철거 현장에서 굴뚝이 굴착기를 덮쳐 굴착기 기사 1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사진=제주소방 제공)
2022년 2월 23일 오전 제주대학교 기숙사 철거 현장에서 굴뚝이 굴착기를 덮쳐 굴착기 기사 1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사진=제주소방 제공)

# 제주에서 첫 중대재해 처벌법 혐의 적용

지난 2월 23일 오전 10시 10분께 제주대 기숙사 임대형 민자사업 신축 공사 현장에서 약 10m 높이의 굴뚝을 철거하던 중 건물 일부가 무너져 굴착기 기사(55)가 숨지는 사건이 있었다. 

경찰 조사 결과 시공사는 작업 계획을 세울 때 굴뚝 등 취약부위에 대한 사전 건축 조사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으며 숨진 굴착기 기사는 시공사로부터 작업 계획을 제대로 통지받지 못했다. 사고 당시 현장소장과 공사책임자는 공사 현장에 없었다. 

고용노동부는 이 사건에 대해 경영책임자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제주도 내 중대재해처벌법 혐의 적용 1호 사건이다. 

고용노동부 광주지방 고용노동청은 지난달 22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제주대학교 철거 공사 관련 건설업체 경영책임자를 제주지검에 송치했다.

또 법인을 비롯해 현장 책임자, 안전보건관리책임자에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도 적용했다. 

산재는 산업안전보건법이나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된 사항은 고용노동부 특별사법경찰이,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는 경찰이 수사한다.

따라서 고용노동부와 합동수사를 벌여온 제주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도 현장소장 A씨(50대), 공사책임자 B씨(60대), 안전관리자 C씨(40대), 감리자 D씨(60대) 4명을 이날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불구속 송치했다.

지난 2월 10일 대전지법은 김용균 사망사고에 대한 1심 공판에서 원청 대표인 한국서부발전 김병숙 전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사고에 직접 관련된 부서 책임자들에게는 징역형이 선고됐지만 이마저도 모두 집행유예 처분을 받았다. 

권미정 사무처장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면 원청에 제대로 책임을 물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새로운 정부는 '반쪽짜리' 중대재해처벌법이 너무 과하다면서 '개악' 움직임을 보인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최근 '중대재해 없는 세상 만들기 운동본부'가 만들어졌다. 서류상 안전보건체계를 갖췄다는 이유만으로 기업이 처벌을 피해가고 있어, 중대재해 현안에 대응하고 지원하는 체계를 만들고자 한다. 저는 피해자 지원팀을 맡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대 중대재해 사고가 어떻게 처벌되는 지 관심있게 보고 운동본부가 공동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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