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제주시 연동에 위치한 다자요에서 남성준 대표를 만났다. (사진=김재훈 기자)
지난 25일 제주시 연동에 위치한 다자요에서 남성준 대표를 만났다. (사진=김재훈 기자)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부터 쓸모를 잃은 축사, 문을 닫은 학교까지. 주인을 잃은 공간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는 기업이 있다. ‘유휴공간에 가치를 입히는 것’을 추구하는 숙박 플랫폼 ‘다자요’가 바로 그곳이다. 

“내부가 아닌 외부의 시선으로 보게 되니 오래돼서 낡은 건물이 철거의 대상이 아닌, 서사와 헤리티지가 있는 건물로 보였어요. 여행을 가더라도 현대적 건물보다 시간적 흐름을 담고 있는 고성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처럼요.” 

지난 25일 제주시 연동에 위치한 다자요에서 남성준 대표를 만났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 대학을 졸업한 남 대표는 서울로 향했다. 그는 은행권과 이자카야 등 다양한 일을 하면서 고향을 떠나 10여 년을 보냈다. 타지에서의 생활은 되려 그에게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눈을 가져다줬다. 남 대표가 ‘다자요’ 사업을 구상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빈집의 가능성을 보다

다자요는 이 공간에서 ‘빈집 재생 사업’이라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남 대표는 다자요를 “사람들이 쓸모없다 생각하는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일을 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빈집 재생 사업의 과정은 이렇다. 먼저 빈집의 주인에게 10년 이상 무상으로 임대받고서 근사하게 리모델링 한다. 재생된 빈집은 숙소로 탈바꿈해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게 된다. 자연스레 마을에 생기가 돌고 조금이나마 경제 활성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임대 기간이 끝나면 다시 주인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다자요의 ‘빈집 재생 프로젝트’다. 

다자요 봉성돌담집 양옥. (사진=다자요 홈페이지)
다자요 봉성돌담집 양옥. (사진=다자요 홈페이지)

서귀포 도순 돌담집, 표선 하천 바람집, 애월 봉성돌담집 등 다자요가 재생시킨 빈집들은 모두 삼다의 섬 ‘제주’만의 무언가를 내세운다. 남 대표는 “이전과 다른 개발 방식, 덜 개발하면서도 적당한 편리함을 제공하는 방법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 다자요 숙소에 들어서면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웰컴키트가 이용객을 반긴다. 웰컴키트는 애월아빠들의 계란, 아침미소목장의 우유, 달하제주 아르방 젤리, 제레미 원두 등 제주지역 기업들이 생산하고 판매하는 제품들로 꾸려졌다. 

“지역 기업들이 홍보할 수 있는 수단이 마땅치 않잖아요. 그래서 기업들이 저희 숙소에 물건들을 비치하면 홍보 효과를 얻을 수 있고, 저희는 이용객에게 현지에서 즐길 수 있는 제품들로 구성된 풍부한 웰컴키트를 제공할 수 있으니 서로 상생하는 구조라고 생각해요.”

세상에 없던 일을 시작한다는 것

다자요가 창립한 2015년에는 에어비앤비에 등록된 국내 숙소가 500여 개 정도에 머물렀다. 이런 상황에서 빈집을 활용한 새로운 숙박 플랫폼 기업이 성장하기엔 지지 기반이 약했다. 남 대표는 당시를 떠올리며 “제주엔 투자 생태계, 창업 생태계 자체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 그가 선택한 방법은 ‘크라우드 펀딩’이었다. 다자요는 사업 초기 5번의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8억여원의 투자금으로 4채의 빈집을 재생시켰다. 다자요의 빈집 재생 사업이 알려지자 각 지자체와 개인으로부터 ‘우리 지역, 내 집도 고쳐달라’는 요청이 이어졌다. 

리모델링이 완성되기 전 다자요의 숙소. (사진=다자요)
리모델링이 완성되기 전 다자요의 숙소. (사진=다자요)

호텔과 비교해도 저렴하지 않은 숙박비에도 불구하고 다자요의 숙소 중 5곳은 내년까지 예약이 꽉 차 있는 상태다. 워케이션으로 제주를 찾는 기업들이 늘고, 촉박한 일정의 단체 관광보다 여유로운 개별 관광에 대한 수요 증가로 덩달아 다자요를 찾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다자요가 지금의 자리까지 순탄히 온 것은 아니었다. 빈집을 활용한 숙박업이라는 개념을 다룬 법이 없었기에 다자요는 규제 밖에 있는, 불법과 합법 어느 범주에도 속하지 않는 새로운 대상이었다. 

“규제 문제로 1년 반 동안 영업을 중단하며 회사가 망가질 대로 망가졌었죠. 직원들 절반을 내보내면서 정말 끝까지 갔다가 마이너스에서 다시 시작했어요. 여러 투자를 받으면서 더딘 속도지만 지금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규제 문제로 영업을 중단해야 했던 시기에도 남 대표는 멈추지 않았다. 새로운 규제를 만들어달라고 지속적으로 요청했다. 그 결실로 지난 2020년 기재부 한걸음 모델에 선정된 데 이어 새로운 사업 등을 대상으로 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면제·유예하는 ‘규제샌드박스’에 통과했다. 이에 다자요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빈집을 활용한 비대면 독채 숙박업의 시범사업으로 인정돼 운영을 지속해 올 수 있었다. 

다자요 고산도들집. (사진=다자요)

한편, 다자요는 빈집·유휴공간 재생에 다양한 IoT(인터넷을 기반으로 모든 사물을 연결하는 기술 및 서비스) 기술을 개발, 도입하고 있다. 이중 실제 사용한 에너지 사용량을 측정해 데이터화하는 '스마트 미터링 시스템'이 현재 두 곳의 숙소에서 운영 중에 있으며 더 확장해나갈 예정이다. 

이러한 신기술 개발에는 제주대학교 관광디지털콘텐츠 사업단의 ‘지능형 관광서비스산업 사업화’ 지원사업이 원동력이 됐다. 다자요 측은 “투자금 유치도 빠듯한 작은 스타트업에게 이런 지원사업은 여러 시도를 해볼 수 있는 감사한 기회였어요. 올해는 에너지 측정과 더불어 에너지 절감 시 보상을 제공하는 ‘페이백 시스템’ 개발을 완료할 예정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앞으로의 계획은 묻자 남 대표는 ‘대단하지 않은 개발을 하는 것’이라 답했다. “아름다운 자연 위에 오두막이나 타이니하우스 같은 걸 지어도 좋겠다 싶어요. 대단한 개발이 아닌, 다른 방식의 개발을 선보이고 싶어요. 자연을 최대한 해치지 않으면서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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