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꽃은 가장 먼저 고산에서부터 피기 시작하여 차츰차츰  마을 어귀에 피어나 가을이 왔음을 알리기 시작하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그들의 몸짓을 느끼지도 못한 채 가을을 훌쩍 보내버릴 때도 있습니다.

어느 날 불현듯 하늬바람을 타고 창가에 다가와 앉은 나뭇잎의 쓸쓸함을 보고서야, 가을임을 느끼게 되지만, 가을은  저물어가는 강물을 건너고 있을 테지요.

▲ 한라산에 피는 '한라구절초'
저물어가는 강물을 건너기 전에 한라의 정기를 받고 단아한 모습으로 피는 한라구절초가 보고 싶은 마음에 영실로 향했습니다.

싱그러운 초록 물결로 드리웠던 나무들이 오색 옷으로 갈아 입기도 전에  태풍 '나리'로 인해 할퀴고 간 상처들이 마음 한 귀퉁이에 비집고 들어와 앉습니다.

태풍 '나리'로 인해  '한라산 등반학교' 회원님들이 등반로를 복구하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한라산 등반학교' 회원님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수고하십니다."라는 인사만 남긴 채 올랐습니다. 그들이 흘린 땀방울로 인해 한발 한발 가볍게 내딛을 수  있었습니다.

서서히 가을 색으로 변해가는 산풍경 속으로 가을 내음을 맡으며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가을향기로 물들어 놓는 들꽃 중에는 국화가 으뜸이라 할 수 있지요.

들녘에는 개쑥부쟁이, 쑥부쟁이, 개미취, 감국이 흐드러지게 피어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한라산에는  눈개쑥부쟁이, 까실쑥부쟁이. 단아한 한라구절초가  함초롬하게 피어 완연한 가을임을 말해줍니다.

가을은 국화의 계절인 만큼 국화종류도 다양합니다.  구절초, 들국화, 해국, 쑥부쟁이 등 다양한 국화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구절초가 으뜸이라 할 수 있지요.

단옷날에 세 마디까지 자라고 음력 9월9일이 되면 아홉 마디까지 자란다 하여 구절초라는 이름을 가졌지요. 눈처럼 하얀 꽃을 피우는 그 모습이  신선보다 아름답고 깨끗하여 '선모초'라고도 부르는 한라구절초는 한국 특산식물이며 한라산에서만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꽃입니다.

'한라구절초'는 잎이  두툼하며 깃털모양으로 가늘게  갈라집니다. 꽃봉오리일 때는 분홍색이었다가 꽃이 만개하면 분홍빛으로 피는가 하면 순백의 꽃으로  어여쁜 모습으로 옷을 갈아 입습니다.

새색시처럼 화사한 분홍색으로 피는 한라구절초와 흰색으로 피는  한라구절초가 있습니다. 벼랑 끝에 함초롬히 핀 한라구절초의  처연함에 눈물이 납니다.

아주 머언 옛날 현명하고 절개가 곧은 원앙부인은 천하 부자 외동딸로 태어났지만, 운명의 철퇴를 맞아 남의 집 종살이를 하게 됩니다.

아비 없이 어린아들을 키우며 서러운 종살이를 하던 원앙부인은   끝내 만년장자의 가족들한테 매를 맞아 사지가 찢긴 채 죽게 됩니다.

할라궁이 아버지 꽃감관이 서천꽃밭에 피는 영험한 열 가지 꽃을 할라궁이에게 주면서  그 꽃으로 죽은 어머니를 살려내고 모셔오라 합니다.

"아이고,  봄 잠이라 오래도  잤다."라며 그 간의 고초를 잊고 살아난 원앙부인은 서천꽃밭으로 들어가 저승으로 온 아이들의 어머니가 되어 아이들의 혼을 돌보게 됩니다. 그 후 원앙부인은 선모초로 불리는 신선보다 깨끗한 아름다운 '한라구절초'로 피어났습니다.

제주 신화에 나오는 서천꽃밭은 신비로움이 깃든 아름다운 곳입니다. 가을이 저물기 전에 신비로운 서천꽃밭에서 가을의 정취를 느껴보세요. <제주투데이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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