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교육기관의 성립과 함께 체육관 형성

 

근대 체육·스포츠가 우리 한반도에 도입된 것은 개화기 때의 일이다.

 

조선 후기 실학사상에 바탕으로 근대 문물과의 접촉이 활발해지면서 위로부터의 개혁을 주창한 갑신정변이 일어나기도 했으며, 근대사상의 도입과 이에 주체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지배층에 대한 반발로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나는 격동이 시기에 개화기가 자립잡고 있다.

 

외세의 적극적인 개입과 근대 사조의 도입과정에 나타난 정치적 역학 관계 등이 작용한 동서의 충돌로 이해할 수 있는 사건들이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전통사회를 지양하는 혁신적인 개혁의 필요성을 남겨준 사건이다.


사회가 이러한 격변기에 놓여 있는 가운데 근대적 교육기관은 하나 둘 들어서기 시작해 원산학사(1883), 배재학당(1885), 이화학당(1886), 언더우드학당 (1886) 등 근대적 교육기관이 설립됐다.

 

산학사는 창립당시 특수과목으로 무예반은 경의(經義), 무예반은 병서와 사격을 가르쳤다. 기독교계 학교로 선교사에 의해 설립된 배재학당에서는 정규 교과 과정에는 없었지만 과외활동으로 야구, 축구, 정구, 농구 같은 서양식 운동경기를 실시했다. 오늘날 경신중․중고등학교의 전신이 된 언더우드 학당에서도 종교교육외에 체조시간이 할당됐다.  이화학당에서는 1890년에 이르러서 체조가 교과목으로 편성되었다고 한다.

이때에 체육, 체조 교과목의 편성은 우리나라에서도 근대적 학교체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전국적 규모로 근대적 학교 체육이 도입된 것은 1895년 고종의 「교육 입국조서」가 발표되면서 부터다, 갑오경장의 산물로 개화기 시대정신에 부흥하여 교육에 의한 입국 의지를 밝히 놓으면서 교육의 3강령으로  덕양(德養), 체양(體養),지양(知養)이 주창되었다.

 

체양과 관련해서「동작에 향상됨이 있어, 부지런히 힘쓰는 것으로 주(主 )을 삼고, 안일과 나태함을 탐하지 말며, 고난을 피하지 말고, 너의 근육을 단단하게 하고 너의 뼈를 굳게 하여서 건강하고 병이 없는 즐거움을 누려야 할 것이니라」했다.

 

교육이 지덕체의 조화로운 발달에 있음 표명함으로써 각급 학교에서 체조과목을 정식 교과 과목으로 채택 할 수 있는 근거가 됐다.

 

1896년 우리나라 최초 운동회 개최

-일반민중과 연계되면서 향촌공동체의 기능 흡수 발전

 

그리고 이시기에 외국어학교관제가 제정 되어 1894년 설립된 영어학교가 관립영어학교로 개편되었는데 1896년 이 학교에서 운동회를 개최했던 사실이 기록되고 있다. 600보경기, 1,350보 경주, 공던지기, 멀이뛰기, 높이뛰기,  등 지금의 육상 근접한 경기와 함께 당나귀 달리기, 2인3각 경기, 경마경주, 동아줄 끌기 등 오락게임이 같이 진행됐다. 이 운동회가 우리나라 최초의 운동회로 기록된다.

 

이렇게 시작된 운동회가 후에 연합운동회로 이어지게 되는데 근대 체육의 도입에 있어 큰 의미를 가져다 줬다.

 

문호개방 이후 전통사회가 해체되고 근대사회로 이행되면서 종래 여론을 집약하고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가능케 했던 향촌공동체도 그 역할에 역부족일 수밖에 없었다. 연합운동회가 열리게 되면서 수 만명의 관중이 모이게 되면서 운동회가 향촌공동체의 일부 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이 되었다 것이다.

 

이러한 기능으로 해서 1905년 을사보호조약과 1910년 한일 합방 등이 민족적 위기를 맞으면서도 민족의식을 각성과 애국심을 고취시키면서 자주 독립을 강조하는 마당으로서 체육 활동이 더욱 활발히 전개될 수 이었고 각종 체육단체의 조직도 활기를 띠었다.

 

1906년의 대한체육구락부와 황성기록청년회 운동부, 1907년 대한국민체육회, 1908년 대동체육부와 무도기계체육부 등 이 창립이 되어 체육활동이 왕성하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근대 교육사조에 교육기관이 들어서고 차츰 지․덕․체의 전인 교육이 주창되면서 근대 스포츠가 한반도에 도입되고 있을 즈음에 산업혁명으로 급속한 근세사회로의 이행이 가능했던 서구에서도 근대 올림픽 창설 등이 추진되고 있었다.

 

쿠베르탱에 의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창설된 것이 갑오경장이 있었던 1894년이고, 우리나라 최초로 기록되는 운동회가 개최된 1896년에 근대 올림픽이 처음 개최된 것도 눈여겨 볼 일이다. ‘지성과 정신뿐만 아니라 인간의 육체도 존엄성을 지니고 있다’는 그리스 사상의 부활, 아마추어리즘에 입각한 우호 증진과 국제친선 및 세계 평화의 실현을 이념으로 하는 근대 올림피즘의 탄생이 스포츠 경기의 세계화라는 보편성을 확보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고, 이러한 세계관이 이미 전근대적 국가에도 근대 문물의 도입시점에 투영되어 나타나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는 사실이 아닌가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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