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일 장이 열린 제주시 민속오일장.

 

계절이나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그 지역의 농산물과 어산물을 중심으로 5일마다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함께 모이는 곳이 ‘5일장’이다.

‘5일장’은 닷새만에 다시 서는 곳이라 하여 ‘닷새장’이라고도 한다. 사는 사람들의 사연도 많겠지만 5일장의 특징은 팔려는 물건의 다양함에 있을 것이다. 파는 사람들을 장꾼이라고 하는데, 요즘은 5일장마다 붙박이로 장사하는 사람들끼리 번영회를 조직하여 서로의 이익을 도모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는 장꾼도 있다. 할머니 장터에 오는 할머니들이 그들이다. 약간의 야채와 깨, 마늘 등을 앞에 놓고 세월을 파는 할머니들만의 장이 제주의 5일장에는 있다.

‘87년부터 돌아보기 시작한 5일장의 모습도 상당히 변했다. 열리지 않는 5일장의 수가 열리는 5일장의 수만큼 많아진 것이 가장 큰 변화이며, 큰길가를 중심으로 열렸던 장터의 모습이 지붕을 얹은 현대식 시설로 바뀐 모습이 그 다음이다.

그리고 어느 장이고 반드시 있었던 점치는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없는 것도 변화한 모습의 하나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재래시장의 현대화로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버린 제주시, 중문, 서귀, 한림장과는 달리, 아스팔트로 도로가 포장되기는 했지만 어느 정도 예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곳으로 함덕, 성산, 대정, 표선, 고성, 세화장을 들 수가 있다.
                      

<제주 5일장 현황>

장 날

오늘날의 5일장     

  사라진 5일장

1, 6일

   함덕, 성산, 대정    하귀

2, 7일

   제주, 표선    안덕, 신창

3, 8일

   중문

   조천, 신산, 남원, 애월

4, 9일

   고성, 서귀, 한림

-

5, 0일

   세화     고산, 납읍


5일장은 농산물(農産物)을 비롯해 수산물(水産物), 죽기(竹器), 목기(木器), 석기(石器), 불미왕의 다양한 생산품과 한약재 등 화산으로 만들어진 바다 한가운데의 섬, 제주가 만들어주는 다양한 생산물(生産物)과 이들을 팔고, 사러오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복합적인 문화의 공간이다.

물건을 팔고 사는 공간이면서,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보고, 먹고, 듣는 곳이기도 했다. 분주한 모습으로 하루 종일 넘쳤던 사람과 구덕의 행렬이 차량으로 바뀐 만큼 5일장의 모습도 달라졌다.

장꾼들의 분주함으로 시작하는 5일장의 새벽은 붙박이 가게의 여닫는 셔터 소리로 바뀌었다. 구성졌던 풍물패의 모습과 소리가 유명 가수들의 스피커 소리로 바뀌었다.

그뿐만 아니라 쌀, 보리, 조, 콩, 팥 등의 곡물시장이 중국의 것으로 넘쳐나고 있으며, 생선, 고등어, 우럭 등의 어물시장도 비슷하다고 한다. 심지어는 유자, 굼벵이, 지네 등을 파는 한약재까지도 수입된다니 장차 어디까지 갈지 걱정이다.

그리나 더 큰 걱정은 내일의 꿈과 희망을 목청 높여 외치던 양은그릇이나 스텐레스 그릇을 파는 사람, 화분과 약탕기, 장독 등 옹기를 파는 사람, 죽기, 목기, 석기 등을 만들어 파는 사람, ?갱이, 호미 등을 두드려 파는 사람들의 외침이 더 이상 메아리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5일장이나 재래시장이 중심이던 시대에 대형유통체인인 마트들이 지역상권을 움직이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파는 사람, 사는 사람, 기쁜 사람, 슬픈 사람들이 만나 서로를 이해하며 함께 했던 시간이며 공간이었던 5일장은 시끌벅적해야 제 맛이 나는데, 그러나 어려운 경제만큼이나 주름잡힌 얼굴들로 가득한 오늘날은 오가는 차들의 경적소리만으로 가득 채워질 뿐 잘 모르는 사람들의 고요로 점점 소원해가고 있다.

보다 편리한 곳에서 보다 적은 비용으로 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름의 원리로 오늘날까지 지탱되어온 5일장의 미래가 우리의 무관심과 순간적인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유성을 잃게 그냥 둘 수는 없지 않을까.

어느 누구라도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주고, 보다 다양한 물건을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곳으로 전통을 유지하게 해야 하며, 어제의 우리가 그랬듯이 다양한 사람의 의사가 소통될 수 있는 곳으로 지원해 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오감을 통해 느낄 수 있었던 곳이 재래의 5일장이었다면 우리의 미래를 예감할 수 있는 곳으로도 조성해가야 할 것이다.

딸기, 토마토는 물론 밀감, 사과, 배, 참외, 수박 등을 마음놓고 살 수 있고, 검은 도새기, 개, 닭, 오리, 고양이, 토끼, 염소 등 가축도 살 수 있으며, 멜국수, 냉국수, 고기국수, 순대와 머릿고기, 막걸리, ‘우무’ 등의 다양한 먹거리를 향유할 수 있는 곳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내일의 주인공인 우리 어린이들도 함께 향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가꾸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시끌벅적함으로 다시 번성할 5일장을 꿈꿔 본다.

어떻게 해야 현대화가 잘 되고, 관광자원화가 잘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잘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서로를 쉽게 이해할 수 있고, 그래서 그곳이 예전처럼 여러 사람들이 내일의 꿈을 키울 수 있는 장소로 바뀌어가길 진심으로 소망해 본다.

김동섭, 문학박사.민속자연사박물관 고고민속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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