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세계일류 삼성정신을 의령 정신으로 승화시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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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세계일류 삼성정신을 의령 정신으로 승화시키겠다
  • 황인태 대기자
  • 승인 2021.06.22 15: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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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태완 의령군수

분열로 군수 연달아 구속된 아픈 역사 끝내야
선거 후 낙천자, 낙선자 찾아다니며 화합 약속
공정하게 행정하고 네 편, 내편 따지지 않겠다
군수로 의령군민 화합이루는 데 최선 다 할 것

이건희 미술관 유치에 최선, 호암문화예술제 개최
향후 5년간 의령 발전 50년 위한 기초 만들겠다

의령 은퇴자 낙원으로 만들기 위해 획기적 지원
스마트 팜 대대적 활성화로 청년들 돌아올 것

찢어지게 가난한 농부의 8남매 중 다섯째
고등학교, 대학교를 전액 장학금으로 다녀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반장 등 간부 도맡아
홍준표 도지사 탄생에 기여해 경남도정 참여
오태완(55) 의령군수는 군정 최고목표로 의령군민의 화합을 내세웠다. 이를 위해 오 군수는 내편, 네 편을 가르는 행정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사진은 오태완 군수가 이건희 미술관 의령 유치를 위해 범 군민 서명운동에 참여한 모습.
오태완(55) 의령군수는 군정 최고목표로 의령군민의 화합을 내세웠다. 이를 위해 오 군수는 내편, 네 편을 가르는 행정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사진은 오태완 군수가 이건희 미술관 의령 유치를 위해 범 군민 서명운동에 참여한 모습.

[한국농어촌방송/경남=정웅교 기자] “의령은 군민의 분열로 현직과 전직 두 명의 군수가 모두 구속된 아픈 역사가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군정의 최우선 목표는 의령군민의 화합입니다. 재선거에 당선돼 지난 4월 취임한 오태완(55) 의령군수는 의령군민의 화합을 가장 큰 군정목표라고 했다.

오 군수는 군민화합의 가장 큰 수단으로 네 편과 내편을 가르는 행정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군민화합은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내편을 챙기지 않는 공정한 행정을 보일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게 오 군수의 진단이다. 그런 점에서 오 군수는 상황이 다른 사람에 비해서 좋다고 했다.

“저는 의령에서 오래 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빚진 사람이 없습니다. 내편, 네 편이 없어서 공정하게 인사하고 행정을 펼 수 있는 기반이 돼 있습니다. 제가 이런 것들을 실천만 하면 군민화합은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오 군수는 선거 때 그렇게 공격받았던 의령에 살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지금은 장점이라고 말했다. 의령에 살지 않아 내편과 네 편이 없어서 공정하게 일할 수 있다는 것.

오 군수는 취임하고 나서 70일 동안 실제로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고 귀띔했다. “저 양반이 하는 게 좀 다르네...”라는 여론이 일기 시작한다는 것. 실제로 읍면 순방도 순방이라는 용어를 쓰지 말고 군민과의 대화라는 말로 바꿨다. 그리고 군정홍보영상도 틀지 않고 군민과의 대화에 집중했다. 이렇게 진정성 있게 대화하니 점차 군민들의 반응이 바뀐다는 것. 이런 여론의 변화를 기반으로 오 군수는 재임기간 동안 군민화합을 확실히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오 군수는 취임하고 나서 70일 동안 하루도 쉬지 못했다고 했다. 취임하자마자 이건희 미술관 이슈가 생겨서 인근 지자체와의 협력, 중앙과의 밀당 등으로 쉴 틈이 없다는 것. 특히나 전임군수가 1년 이상 공백인 상태라 경남도와의 협조, 중앙정부와의 협력 등 할 일이 태산처럼 쌓였다. 70일 동안 정신없이 일을 처리하고 나니 이제 조금 눈이 뜨인다고 했다.

오 군수는 내년 재선까지 해서 5년 동안 의령 50년 발전계획을 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령은 남강과 낙동강 두 개의 강이 지나가고 있는 천혜의 지역이다. 은퇴자들이 와서 살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오 군수는 은퇴자들이 의령에 와서 살겠다고 하면 빈집을 수리해 무상대여하거나 전원주택 신축에 대한 금융지원 등을 파격적으로 해서 은퇴자 천국을 만들겠다고 했다.

또 젊은 층이 환호하는 스마트 팜을 대대적으로 활성화 시켜서 청년들이 찾아오는 의령을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오 군수는 의령이 삼성의 발원지라는 것을 전 세계적으로 알리기 위해 호암문화예술제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호암문화재단으로부터 승낙도 받았다고 했다. “의령은 삼성의 본가가 있고 사업이 시작된 곳입니다. 세계일류를 추구하는 삼성정신을 의령정신으로 승화시킬 것입니다.” 오 군수는 삼성정신이 의령정신이라며 호암문화예술제를 통해 의령이 삼성의 발원지라는 것을 확실히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의령이 가진 가장 큰 무형의 자산이 삼성이라고 강조하는 오 군수는 호암문화예술제를 통해 전세계 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태완 군수는 1964년 의령군 화정면 덕교리에서 8남매의 5번째로 태어났다. 어릴 때 농사를 짓던 부모님은 찢어지게 가난했다. 그래서 형제 중 중학교 이상의 정규교육을 받은 사람은 오 군수가 유일하다고 했다. 고등학교와 대학을 전액 장학금으로 다닌 오 군수는 대학시절 아르바이트를 통해 아버지 빚을 갚기도 했다.

정치적 성장의 동기는 홍준표 경남도지사 당선에 기여해 경남도정에 참여한 것이라고 말했다. 오 군수는 당시 경남지사 후보였던 하영제 현 의원과 홍준표 후보 간의 단일화 실무주역으로 활약했다. 단일화로 도지사에 당선된 홍 지사를 따라 경남도 정책단장으로 경남도정에 참여했다.

오태완(55) 의령군수는 군정 최고목표로 의령군민의 화합을 내세웠다. 이를 위해 오 군수는 내편, 네 편을 가르는 행정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오태완(55) 의령군수는 군정 최고목표로 의령군민의 화합을 내세웠다. 이를 위해 오 군수는 내편, 네 편을 가르는 행정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다음은 오태완 군수와의 대담내용이다.

▲취임한지 얼마나 됐나.

-4월 8일 당선 증 받자마자 취임했으니 70일 됐다.

▲그동안 바빴겠다.

-취임 후 하루도 쉬지 못했다. 이재용 사면, 이건희 미술관 등 이슈가 계속 발생했다. 또 전임군수가 1년 이상 공백상태였다. 그 공백 기간 동안 미뤘던 여러 가지 일들도 많았다. 그런 걸 우선 처리해야 했기 때문에 토, 일요일도 쉬지 못했다.

▲선거가 치열했는데, 선거 후 분위기가 어떤가.

-사실 그동안 의령은 선거 후 군민의 분열로 인해 군수들이 감옥에 가는 등 비극의 역사가 계속돼 왔다. 그래서 당선되고 난 후 제일 처음 한 일이 함께 경쟁한 후보들 찾아뵙는 일이었다. 선거 때 쌓인 앙금이 완전히 없어지진 않겠지만 저만이라도 털어내기 위해서 낙선한 후보들을 찾아뵙고 함께 하자고 했다. 낙선한 후보들의 좋은 정책은 받아들여서 시행할 생각이다.

▲그동안 이렇게 의령이 문제가 된 이유가 뭔가.

-선거 때 네 편, 내편으로 나뉘어 싸운다. 그리고 당선된 후보는 내편은 챙기고 네 편은 힘들게 한다. 이게 반복되다 보니 선거가 전쟁이 되고 선거가 끝나도 소송 등으로 후유증이 컸다. 그동안 선거 후에 낙선자들을 찾아가서 인사를 한 게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군내에서 만나도 서로 외면하고 봐도 돌아가고 그렇게 지냈다고 한다. 위에서 그러니까 군민들도 분열이 되고.

▲오 군수는 네 편, 내편을 챙기지 않나.

-저는 다행인 게 의령에 오래 살지 않았다. 그래서 빚진 사람이 없다. 선거 때는 이게 상대후보들의 주요 공격 포인트가 됐지만 당선되고 나니 오히려 장점이 됐다. 그래서 내편을 챙길 것도 네 편을 죽일 것도 없다. 제 군정목표가 화합의령이다. 내편도 없지만 내편을 챙겨서 화합의령이 되겠는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오로지 정책으로 승부하고 공정하게 군정을 펼 생각이다.

▲이번 선거가 어땠나.

-이번 선거가 의령역사상 선거혁명을 이뤘다고 자평한다.

▲왜 그런가.

-첫째 돈이 없는 선거였다. 그동안 군수선거에 수십억씩 돈이 뿌려진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렇게 돈을 쓰다 보니 사업자가 필요했고 당선 후 이권을 나누는 게 불가피했다. 그런데 저는 돈을 쓰지 않았다. 저는 선거 때 세 가지를 약속했다.

▲뭔가.

-첫째 돈을 쓰지 않겠다. 둘째 정책으로 승부하겠다. 셋째 상대방을 비방하지 않겠다. 이렇게 세 가지를 약속하고 그것을 선거기간 내내 지켰다.

▲실제로 그렇게 했나.

-실제로 그 약속을 지켰다. 그리고 선거마지막 날 선거운동원, 군민들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저는 선거는 축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선거마지막 유세에서 함께한 사람들과 보리고개란 노래를 떼 창으로 부르면서 마무리 지었다.

▲오 군수는 비방하지 않아도 상대후보는 비방을 했을 거 아닌가.

-평생 먹을 욕을 다 들은 것 같이 상대후보들은 저를 많이 비방했다.

▲주로 어떤 것들인가.

-사실 그렇게 심각한 내용들은 아니었다. 주로 의령에 살지 않았는데 왜 군수에 나왔느냐. 자격이 없다. 이런 것들이다.

▲군수가 되려면 의령에서 살아야만 하나.

-그러게 말이다. 저는 사실 경남도에 있을 때나 국회에서 근무할 때 의령발전을 위해 누구보다 노력했다. 또 외지에서 경험을 많이 쌓고 와서 고향을 위해 봉사하는 게 당연한 거다. 그렇게 비방을 많이 했다. 사실 좀 더 강하게 말한다면 의령출신이 아니어도 능력 있는 사람을 군수로 스카웃 해서 의령을 발전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 축구대표 팀 감독으로 외국인인 히딩크를 영입해서 월드컵 4강에 들어갔듯이.

▲의령은 뭐가 문제인가.

-지금까지는 분열이 문제였다. 의령은 가지고 있는 자산으로 보면 그리 나쁘지 않다. 그래서 군민들이 화합만 되면 부자의령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취임하고 난 후에도 의령의 화합을 위해 늘 노력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했나.

-군수가 되고 난 후 읍, 면 순방이 있었다. 저는 순방이라는 용어도 틀렸다고 생각한다. 꼭 권위주의 시대의 용어 느낌이 난다. 그래서 순방이라는 용어도 쓰지 말고 군민과의 대화라는 용어를 쓰도록 했다. 또 과거에는 대화시간에 군정홍보 영상을 틀고 그랬다. 그런 것도 하지 말라고 했다. 홍보보다는 군민과의 대화에 집중했다. 어떤 경우에는 밥 먹는 시간도 지나서 대화가 이어지기도 했다. 벌써 13개 읍, 면을 다 돌았다.

▲평가가 어땠나.

-그렇게 권위주의와 형식을 탈피하고 진정성 있게 대화하니 조금씩 나아진다. 저 양반이 뭔가 다르게 하네...그런 여론이 생긴다. 군수가 이렇게 진정성을 보이고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니 군민들도 점차 마음을 열고 화합하려는 마음을 낸다.

▲최근 이건희 미술관 유치로 바쁘던데.

-취임하자마자 이건희 미술관 유치 문제가 생겨서 사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전국의 지자체장 중에서 제가 유치의사를 제일 먼저 밝혔다.

▲이건희 미술관이 의령에 유치될 가능성이 있나.

-저는 가능성 보다 이치를 말하는 거다. 국민모두가 알다시피 의령은 삼성의 발원지가 아니냐. 호암 이병철의 생가가 있고 여기서 삼성의 출발이 됐다. 삼성의 발원지인 의령에 이건희 미술관이 들어서는 게 제일 이치에 맞다고 생각한다.

▲삼성이 대구에서 시작하지 않았나.

-아니다. 호암이 오늘날 정미소를 시작한 게 마산에서였다. 당시 의령에서 마산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정미소를 운영했다고 한다. 의령이 삼성의 출발지이다. 그래서 당연히 이건희 미술관도 의령에 두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저는 최고를 추구하는 호암의 정신을 사상으로 발전시켜서 의령정신으로 만들고 싶다.

▲구체적으로 추진하는 게 있는가.

-우선 의령에 호암 이병철 대로, 삼성 이건희 대로를 만들었다. 정식행정명은 아니지만 명예도로명으로 이들을 허가받았다. 삼성에서 정식으로 허가받은 거다.

▲허가를 받아야 하나.

-자신들의 이름을 쓰는 거니 당연히 당사자들에게 허가를 받아야 한다. 사실 이 허가 받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의령이 고향이니 삼성 측에서도 이름을 쓰도록 허가를 해 줬다. 이 도로명 들과 함께 10월에 호암문화예술제를 개최하려고 한다. 4월 봄에는 홍의장군축제가 있고 10월 가을에는 호암문화예술제를 개최할 계획이다.

▲호암문화예술제는 왜 여나.

-저는 세계일류를 추구하는 삼성정신이 의령정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호암문화예술제를 통해 의령정신을 구체화 시켜 나갈 것이다.

▲호암문화예술제는 호암재단과 연계해서 열리나.

-아니다. 그러나 호암재단으로부터 예술제 개최에 대한 것은 승낙을 받았다.

▲그럼, 호암재단에서 지원도 받나.

-아니다. 지원받을 생각이 없다.

▲군수 임기가 1년 남았는데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저는 1년을 보고 하지 않는다. 적어도 5년을 보고 정책을 펴고 있다.

▲어떤 정책인가.

-향후 5년 동안 의령발전을 위한 초석을 놓을 거다. 구체적으로는 슬로시티 의령이다. 의령에서 여유와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는 그런 고장으로 만들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인가.

-의령은 남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지역이다. 또 경남의 정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창원, 진주 등 도시와 접근성이 좋다. 이런 위치적 장점으로 퇴직자들이 은퇴 후에 와서 살기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 외국의 스페인이나 동남아의 필리핀처럼 은퇴자들이 노후를 누리는 천국으로 만들 계획이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되나.

-은퇴자들이 의령으로 올 경우 주택에 대한 지원을 획기적으로 늘릴 생각이다. 구체적으로 군에서 빈집 등을 수리해서 무상임대를 해 주기도 하고 전원주택에 대한 대출이자를 지원해 주는 등 은퇴자들의 정주여건을 개선해 줄 생각이다.

▲재원이 많이 들 텐데.

-다른 정책에 대해서도 보조금 지급이 있다. 은퇴자들의 유치 역시 의령활성화에 큰 도움이 된다는 측면에서 자금지원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냥 일회성 정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군 조례를 제정해서 지원을 구체화 하고 행정적인 일처리는 원스톱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스마트 농업도 강조하던데.

-짐 로저스가 앞으로 농업은 미래산업이라고 했다. 의령은 농업지역이다. 스마트 농업은 청년들도 관심을 많이 보이고 있다. 스마트 농업에 대한 획기적인 지원책을 실시하여 젊은이들이 의령으로 찾아오도록 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의령으로 은퇴자들과 청년들이 모여들면 의령은 소멸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제가 향후 5년 동안 그렇게 만들 것이다.

오태완(55) 의령군수는 군정 최고목표로 의령군민의 화합을 내세웠다. 이를 위해 오 군수는 내편, 네 편을 가르는 행정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사진은 오태완 군수가 시장 상인과 소통하는 모습.
오태완(55) 의령군수는 군정 최고목표로 의령군민의 화합을 내세웠다. 이를 위해 오 군수는 내편, 네 편을 가르는 행정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사진은 오태완 군수가 시장 상인과 소통하는 모습.

▲개인적인 얘기를 좀 해보자. 어디서 태어났나.

-호적상으로는 1966년생으로 돼 있다. 실제는 64년생이다. 당시 어수선했던 시기여서 그런지 호적정리가 늦었던 것 같다. 의령군 화정면 덕교리 160번지가 제가 태어난 곳이다. 8남매의 5번째로 태어났다.

▲부모님은 무얼 했나.

-농사를 지었다. 틈틈이 의령장, 북창장, 신반장을 다니며 고추를 팔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 집안이 찢어지게 가난했다. 그래서 8남매 중 고등학교 이상을 간 게 제가 유일하다.

▲그럼, 형제들은 중학교 마친 게 전부인가.

-그렇다. 큰 누님은 초등학교 마치고 식모살이를 했으나 지금 현재 형제자매 가운데 제일 부자다. 부산에서 공무원으로 금정구 부구청장까지 하신 형님도 정규학력이 중학이다. 중학교 졸업하고 부산에서 공무원 9급 시험 쳐서 합격했으나 6개월 만에 그만두고 행정직 7급 공채를 다시 쳐 합격했다. 첫 발령지가 의령군청이었다.

▲그럼. 형님은 의령군 공무원을 하다가 부산으로 간 건가.

-그렇다. 7급 공채를 합격했는데 의령군에서는 전망이 보이지 않았던가 보다. 그래서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부산시청으로 갔다. 다행히 부산시청에서 인정받아 시장 비서실장도 하시고 구청 부구청장으로 퇴직해 지금은 산하기관에 계신다.

▲형제들이 중학밖에 못 갔는데 어떻게 대학까지 마쳤나.

-저도 사실 집에서 시킨 것은 중학이 마지막이다. 화정중학교를 마치고 집안에서는 더 이상 학교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진주상고에서 장학금을 준다고 해서 진학한 거다. 그래서 집안에서 처음으로 고등학생이 탄생했다.

▲대학은 어떻게 가게 됐나.

-경상대 회계학과도 4년 전액 장학생으로 다녔다. 장학금을 주지 않았으면 대학을 못 갔을 거다. 사실 집안에서는 제가 대학에 다니는 줄 몰랐다. 군대 갈 때 쯤 해서 제가 대학에 다니는 줄 알았다.

▲그래도 대학에 다니면 학비 외에도 돈이 많이 들 텐데.

-그래서 밤에는 상평공단에서 경비도 서고 알바도 많이 했다. 당시 전두환 정권 시대라 학생들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못하게 해서 몰래 가르친다 해서 몰래바이트를 했다. 몰래바이트도 하고 야간경비도 해서 학교를 다녔다. 대학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집안에 돈도 부치고 그랬다.

▲그렇게 어렵게 자라서 군수가 돼서 감회가 새롭겠다.

-그렇다. 그래서 저도 이제 마음을 많이 비웠다. 군수를 마치면 고향에서 편히 살 생각이다.

▲오늘날 군수의 기반이 된 것은 무엇인가.

-정치입문을 하순봉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홍준표 도지사를 빼 놓을 수 없을 것 같다. 당시 홍준표 후보와 하영제 후보간의 후보단일화를 성사시켰다. 두 후보가 단일화 되지 않았더라면 친박 일색이었던 당시 분위기에서 홍준표 도지사가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 후보단일화의 실무역할을 맡았었다. 그 인연으로 홍준표 도정에서 정책단장과 도정개혁단장을 맡아 도정에 참여한 게 오늘날 군수가 된 바탕이 크다고 생각한다.

▲군수 마치면 무얼 할 생각인가.

-고향에 살 생각이다.

▲농사를 지을 생각인가.

-아니다. 저는 어릴 때 농사를 많이 지어서 그게 얼마나 힘든지 잘 안다. 퇴직해서 농사짓는다고 다들 얘기하는 데 그건 농사를 지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하는 얘기다. 저는 조그만 텃밭 하면서 아내와 함께 조용히 노후를 보낼 생각이다.

오태완(55) 의령군수는 군정 최고목표로 의령군민의 화합을 내세웠다. 이를 위해 오 군수는 내편, 네 편을 가르는 행정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오태완(55) 의령군수는 군정 최고목표로 의령군민의 화합을 내세웠다. 이를 위해 오 군수는 내편, 네 편을 가르는 행정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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