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후 주철희 박사(가운데)가 제주4·3평화공원 교육센터에서 열린 ‘제주4·3대전형무소 수형희생자 실태조사 보고회 및 토론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30일 오후 주철희 박사(가운데)가 제주4·3평화공원 교육센터에서 열린 ‘제주4·3대전형무소 수형희생자 실태조사 보고회 및 토론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우리 동네에서 우리 아버지를 끌고 가서 죽였다고 하면 ‘누가’ 끌고 갔고 ‘어떻게’, ‘왜’ 죽였는가를 얘기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왜 피해자만 존재하고 가해자는 없는 4·3이 돼야 하느냐는 말입니다.”

30일 오후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는 제주4·3평화공원 교육센터에서 ‘제주4·3대전형무소 수형희생자 실태조사 보고회 및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지난해 이뤄진 실태조사와 관련한 보고가 끝나고 나서 ‘제주4·3항쟁 가해자는 누구인가’ 주제로 토론회가 진행됐다. 

주제발표에 나선 역사연구자인 주철희 박사는 지난 2003년 정부 공식보고서로 확정한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와 지난 2019년 발간된 ‘제주4·3추가진상보사보고서’에서 가해자의 주체와 명령·지휘 체계를 밝히지 못하고 있는 문제에 초점을 맞췄다. 

#“4·3특별법, 희생자 명예회복에만 멈춰있어”

주 박사는 우선 특별법이 가진 한계를 강조했다. 그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법(이하 과거사법)과 4·3특별법, 여순특별법 같은 과거사를 정리하는 법에 한계가 있다”며 “진실화해위원회의 김동춘 상임위원의 말을 인용하자면 ‘법적으로 진실화해위원회(이하 진화위)의 기본법에 가해를 밝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한계를 밝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사 법 중에서도 다른 법과 달리 피해에 대한 책임 소재를 명확히 밝히고 있는 법이 있다”며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에선 진상규명의 범위를 규정한 조항(제3조) 3호에 ‘5·18 당시 군에 의한 발포 경위 및 책임 소재’가 명확하게 들어가 있다”고 부연했다.

주 박사는 “4·3특별법은 지금까지 여섯 차례에 걸친 법 개정이 있었고 최근에 또 국회에 상정된 개정안도 있다”며 “그런데도 가해 주체를 밝힐 수 없는 한계를 해결하기 위한 개정에 대해선 관심이 부족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4·3특별법의 명칭을 생각해보자.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라고 ‘진상규명’이 법 명칭에 쓰였고 법 제정 목적인 1조에는 ‘진상을 규명하고’라고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며 “하지만 관련 조항에는 진상조사의 범위를 규정하지 않고 위원회가 이런 일을 하겠다는 내용이 한 줄 들어가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또 “위원회가 낸 백서를 살펴보면 ‘진상조사보고서 작성 기획단’은 4·3의 핵심적인 정의를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된 사건’으로 해석하고 여기에 초점을 맞춰 명예회복에만 집중한 것 같다”며 “기획단에서 축소 해석한 게 아닌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4·3특별법을 비롯해 과거사 정리법을 만드는 목적은 과거사 청산”이라며 “잘못된 우리 역사를 청산하자는 목적으로 법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논란도 있고 불협화음도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국민 화합과 화해, 상생만 주장하다 보니 진상규명의 본질보다는 희생자 명예회복에 멈춰있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30일 오후 제주4·3평화공원 교육센터에서 ‘제주4·3대전형무소 수형희생자 실태조사 보고회 및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30일 오후 제주4·3평화공원 교육센터에서 ‘제주4·3대전형무소 수형희생자 실태조사 보고회 및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법으로 안 되면 연구로라도 가해 주체 밝혀야”

“제주4·3항쟁은 여전히 이데올로기에 갇혀 있고 희생자 명예회복을 제외한 공론화는 쉽지 않구나 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주 박사는 가해자를 밝히지 못하는 두 번째 이유로 지역사회 공론화의 부족을 꼽았다. 

그는 “법적인 한계로 절대적으로 가해 주체를 밝힐 수 없느냐고 봤을 때 그건 아니”라며 “진화위 보고서엔 가해주체와 지휘·명령체계를 기술하고 있다. 책임자를 이승만 대통령이라며 가해 주체를 명확히 밝히고 있다. 군인과 경찰의 행위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마지막엔 국가가 있고 행정수반이었던 대통령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 2019년 발간된)추가진상보고서에서 마을별 구체적인 피해조사는 잘 돼 있다. 하지만 가해주체와 지휘·명령체계가 없다”며 “이는 제주지역 사회의 동의나 공론화가 이뤄지지 않아서 빠진 것 아닌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4·3항쟁을 역사적으로 평가하고 성격을 규명하는 일이 73년이 지나도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4·3항쟁에 대한 문제를 이데올로기 관점에서 보고 있다는 점이 아쉽고 정치권력 관계가 사건의 본질보다 주요하게 작동하는 것 아닌가”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역사는 사실관계를 해명하는 일”이라며 “가해 주체나 지휘·명령체계를 기술하자는 것은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한 게 아니라 역사의 기록에 남김으로써 다시는 이런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법의 한계로 인해 진상조사보고서에 가해 주체를 밝힐 수 없다면 연구로서라도 밝혀져야 한다”며 “‘제주4·3은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가 구호에 그치지 않고 ‘책임자’를 명확하게 기록해 이를 통해 제주4·3항쟁이 역사적 평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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