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의 이름으로 마을이 죽어가고 있다.
도로가 넓어지고, 벽화가 그려지고, 낡은 집이 새로 단장된다.
겉보기에는 발전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정작 ‘사람의 삶’과 ‘마을의 문화’는 점점 메말라가고 있다.
제주는 도시가 아니다.
섬 속의 마을마다 이어져 온 공동체의 질서와 생활방식이 제주다움을 지탱해왔다.
밭일을 함께하던 품앗이, 정자 목 아래에서 모여 회의를 하던 마을 사람들, 제의와 축제를 함께 나누던 풍경들—그것이 제주 공동체의 숨결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도시재생’은 이런 문화적 토양을 되살리기보다, 행정의 실적과 눈에 보이는 성과에 급급하다.
새 건물이 들어서고 도로가 반듯해질수록, 마을의 숨결은 더 옅어지고 있다.
정치가 행정을 지배하는 구조, 마을의 문화까지 잠식하다
행정이 주도하는 재생사업 속에서 마을의 자율성과 정체성은 점점 지워져 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정치권력의 개입이다.
도지사의 인사권 아래에서 제주도 산하 기관의 장들이 정치적 논공행상으로 임명되고, 그 인사가 사업의 방향과 지원 규모를 결정한다.
공정해야 할 행정이 권력의도구로 전락하면서, ‘누구를 위한 재생인가’라는 물음이 다시 제기된다.
이런 구조에서는 진정한 마을 살리기가 불가능하다.
행정이 아니라 정치가 정책을 이끌면, 마을은 언제나 뒤로 밀리고 권력의 계산만 남는다.
도민의 삶과 문화가 정책의 중심에서 밀려나는 순간, ‘제주다움’은 단지 구호에 불과해진다.
마을의 기억을 복원하는 ‘문화 재생’이 먼저다 ㅡ 마을만들기 센터 역할 강화 시급
지금 제주에 필요한 것은 도시재생이 아니라 ‘마을문화 재생’이다.
도로 하나를 낼 때마다 사라지는 정자 목, 그 아래서 나누던 이야기와 웃음소리가 사라지는 현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는가.
제주의 재생은 콘크리트가 아니라 사람의 기억에서 시작해야 한다.
마을의 이야기와 공동체의 추억을 복원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진짜 재생이고, 제주가 제주로 남는 길이다.
행정이 나서서 해야 할 일은 예산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마을이 스스로 설 수 있도록 아낌없이 돕는 일이다.
정치가 앞서면 마을은 죽고, 주민이 중심이 되어야 비로소 숨을 쉰다.
이어 마을만들기 지원센터가 주도적인 역할을 강화하되, 주민이 앞장 설 수 있는 구조가 된 조직으로 추진하는데 그 역할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행정은 주도자가 아니라 조력자로 돌아가야 한다. 그때 비로소 제주의 품격과 마을의 숨결이 함께 살아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