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자료집》 석주명, 서귀포문화원(복간), 2008

이 책은 원래 나비박사 석주명의 제주도총서 중 여섯 번째 책인데, 서귀포문화원에서 복간을 하였다. 이 책에는 주로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했던 글이나 다른 책에 들어가지 못한 연구 결과 등을 모았다.

석주명은 1943년 4월부터 1945년 5월까지 경성제국대학 부속 제주도생약연구소 소장으로 제주도에 살았다. 그는 짧은 기간 제주도에 머물면서 제주도 방언, 곤충, 식물, 나비, 문헌 등을 연구해 제주학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이 자료집에 실린 그의 칼럼을 보면 그의 제주도에 대한 생각을 이해할 수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제주의 정체성을 생각하며 개발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점이 흥미롭다.

“이도후 4년만에 다시 와보니 해방과 38선 관계로 육지인들의 입도와 소위 육지문화의 침윤으로 제주도의 특이성이 없어져감을 느낀다. 그것도 필연적 현상이기는 하나, 하루 바삐 한국의 식자들은 금쪼각같은 제주도의 자료를 수집하여 계통을 세울려고 노력해야겠고, 제주도민 일반도 많이 성원해 주셔야겠다.”(《제주신보》, 1948년 2월 6일, 석주명, 「한국의 자웅(恣熊) -제주에서」 부분)

1940년대 그 시기에도 석주명은 제주도가 정체성을 잃어가는 것을 안타까워하였다. 그때는 제주의 자연이나 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을 것 같은데, 일찌감치 그는 파괴되어 사라지는 것들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2공항 건설에 대한 찬성과 반대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해저터널 얘기까지 다시 나온 요즘이다. 만약에 석주명이 지금의 제주도를 보면 울분에 차 말을 제대로 못할 것 같다. 아마도 눈물의 칼럼을 쓸 것이다. 나의 어린 시절이었던 1980년대와 비교해도 정말 많이 변해버린 제주도 아닌가.

제주도에 관한 책을 펼치면 꼭 등장하는 말이 “제주도가 곧 한라산이요, 한라산이 곧 제주도이다.”라는 문장일 텐데, 석주명도 이미 이 표현을 썼다. 바닷가에서부터 산꼭대기 1,950m까지 오르는 것을 그는 “중국 남경에서부터 북으로 가서, 북경을 지나 흥안령을 또 지나 시베리아에까지 여행하는 것과 같다.”라고 말하였다. 제주도를 들여다보는 그의 상상을 따라가면 제주도가 광활해진다.

석주명은 언어에 관심이 많은 생물학자였다. 그래서 그가 제주어를 수집하고 분류한 것은 나비를 수집하고 분류하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가령 표준어 냉이는 제주도 지역별로 ‘난생이, 난시, 난쟁이’ 등으로 불리고 있다고 표기해 놓았다. 생물의 제주어뿐만 아니라 농업, 임업, 목축, 해산 관계 제주어도 살핀다. 그리고 제주어와 조선고어의 관계, 몽골, 일본, 말레이시아, 만주, 타갈로그, 비사야의 언어와의 관계성까지 추적한다.

제주어도 그렇고 한라산에만 산다는 산굴뚝나비도 멸종위기이다. 70년 전에 시급한 상황이라며 제주의 특이성, 즉 제주의 정체성을 정리해둬야 한다고 주장한 석주명의 말이 현재도 유효하다.

이 책에는 마라도에 대한 부분도 있는데, 마라도가 예전에는 섬 전체가 같은 번지를 썼다고 한다. 석주명은 이 글에서 마라도에서 전하는 슬픈 전설을 전한다. 고아인 애기업개가 마라도에 혼자 남겨진 채 숨을 거두었다는 애화인데, 이 이야기를 두고 ‘마라도 엘레지’라고 표현하였다. 그 전설을 구술하는 금옹(金翁)이 이야기가 끝날 때 “먼 하늘을 바라보며 가련하게 일생을 마친 계집애의 영을 위하는 사당을 바다 일을 하는 사람들은 잘 위한다고 말하였다”라고 적었다. 제주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석주명의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현택훈, 김신숙 '시인부부'
현택훈, 김신숙 '시인부부'

'시인부부의 제주탐독'은 김신숙 시인과 현택훈 시인이 매주 번갈아가며 제주 작가의 작품을 읽고 소개하는 코너다. 김신숙·현택훈 시인은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부부는 현재 시집 전문 서점 '시옷서점'을 운영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제주 작가들의 활동 영역을 넓히는 다양한 기획도 부지런히 추진한다. 김신숙 시인은 시집 『우리는 한쪽 밤에서 잠을 자고』, 동시집 『열두 살 해녀』를 썼다. 현택훈 시인은 시집 『지구 레코드』, 『남방큰돌고래』,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음악 산문집 『기억에서 들리는 소리는 녹슬지 않는다』를 썼다. 시인부부가 만나고, 읽고, 지지고, 볶는 제주 작가와 제주 문학. '시인부부의 제주탐독'은 매주 금요일 게재한다.<편집자 주>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