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청 거러지라 둠비둠비 거러지라』, 김정희, 한그루, 2018
 『청청 거러지라 둠비둠비 거러지라』, 김정희, 한그루, 2018

김정희 시인은 함덕에서 동시전문서점 ‘오줌폭탄’을 운영한다. 입구에는 시인이 동네 아이들과 직접 그린 벽화가 있다. 전형적인 제주 농가 주택인데, 놀랍게도 김정희 시인의 고향집이다. 시인이 어린 시절 뛰놀았을 올레에서 꼬마 김정희를 만날 것만 같은 풍경이다. 밖거리에 서점을 차렸다.

그곳에는 정말 아꼬운 동시집들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동시의 기운으로 가득해서 어린이로 돌아간 마음으로 방바닥에 누워 동시집을 읽고 싶어질 것이다. 시인은 오랫동안 초등학생들과 글쓰기 시간을 가지면서 제주어를 통한 동심도 빠트리지 않았다.

이 동시 그림책은 제주어로 된 책이다. 김정희 시인도 그림을 꽤 잘 그리는데, 이 책에서는 화가 달과가 그림을 그렸다. 제주 바닷가에서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혹시나 김정희 시인의 그림 실력이 궁금하다면 『애기해녀학교』(한그루, 2019)를 보면 된다.

이 동시 그림책은 사라져가는 제주생활문화를 동시와 그림으로 담았다. 할망바당 해녀문화, 깅이 잡는 노래, 보말 잡기, 바농 낚시, 멜 들어오는 날 풍경 등 이 책 한 권에 제주도가 오롯이 들어있다. 제주 인문학을 어떻게 아이들에게 들려줄지를 고민한다면 이 책이 제격이다.

범벅에도 종류가 많아서 솜범벅, 모물범벅, 밀범벅, 보리ᄀᆞ를범벅, 감저범벅, 느쟁이범벅, 밀주시범벅, 대축범벅, 보미범벅, ᄑᆞ레범벅, 톨범벅 등 다양하다. 먹을게 귀하던 시절에 여러 가지 범벅을 만들어먹던 이야기인데, 범벅의 많은 종류만큼이나 지난한 삶이 들어있다. 개구리헤엄치면서 시작한 물질, 허리가 호미처럼 굽을 때까지 물질하다 할망바당에서 물질을 이어가는 이야기 등 이 책은 제주의 노래로 가득하다.

제주어 시를 쓰는 시인 중에는 각 시인의 나름대로 목소리가 있는 것 같다. 김광협 시인은 일본에 갔당 돌아온 먼 친척 어르신의 향수 같은 제주어, 고훈식 시인은 말 안 듣는 손지를 나무라는 꼬장꼬장한 할아버지 제주어, 황금녀 시인은 손지를 조몰락조몰락 거리며 애지중지할 할머니의 제주어, 양전형 시인은 한량의 기운도 있지만 낭만과 멋을 즐기는 아버지의 제주어, 김정희 시인은 개구쟁이 기운이 남아있어서 여전히 호기심 많아 소도리하기(이 말 저 말 하기) 좋아하는 아주머니의 제주어. 모두 상황에 맞게 언어의 맛이 살아있다.

김정희 시인은 초등학교에서 글쓰기 수업을 하고 아이들의 시를 모은 책을 만드는 일을 계속 해왔다. 내가 본 것만 해도 스무 권은 족히 넘으니 대단한 작업을 했다. 그 수가 궁금해서 아는 출판사에 물으니 50권을 훌쩍 넘는다는 게 아닌가. 제주도의 미래가 기대된다.

예전에 국어학자 이오덕 선생도 어린이 시 모음집을 여러 권 냈다. 그 책에 시를 실은 어린이들은 이제 다 커서 어른이 됐을 텐데, 시인이 되지 않았더라도 시인의 마음으로 작고 여린 것들을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이오덕 선생은 체험이 들어 있는 어린이 시를 강조한다. 그래서 일하는 어린이의 시가 좋다고 말한다. 요즘은 농촌사회가 많이 줄어들어서 어린이가 일을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심부름이나 게임하다 친구끼리 싸우는 것도 일로 본다면 일은 일이다.

깅이 심을 때(게를 잡을 때) 주문처럼 부르는 노래 ‘청청 거러지라 둠비둠비 거러지라’는 할아버지가 아이에게 들려준다. 문화의 전수인 셈이다. 게를 잡으려면 개가 숨은 곳에 멜젓을 뿌려주고 코생이·어렝이(놀래기과 물고기들) 달아매고 물에 담가 놓고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청청 거러지라 둠비둠비 거러지라’ 노래는 ‘웡이자랑’처럼 민요이자 동요다. 이런 노래는 세대를 이어 부르면서 우리가 지켜야 할 노래다. 그 노래에 우리네 삶이 들어 있다.

이 책은 지난 ‘2019 고창한국지역도서전’에서 천인독자상 공로상을 받았다. 한그루 출판사는 제주 인문학 관련 도서를 꾸준히 만들어왔다. 이 책은 쉽고 재미있게 제주생활문화에 스며있는 제주 사람들의 마음을 접할 수 있다. 책의 공공성을 생각한다면 이보다 더 귀한 책이 어디 있으랴.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의 생활문화를 이해하며 자라는 어린이야말로 그 지역을 위한 인재가 될 것이다.

 

현택훈, 김신숙 '시인부부'
현택훈, 김신숙 '시인부부'

'시인부부의 제주탐독'은 김신숙 시인과 현택훈 시인이 매주 번갈아가며 제주 작가의 작품을 읽고 소개하는 코너다. 김신숙·현택훈 시인은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부부는 현재 시집 전문 서점 '시옷서점'을 운영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제주 작가들의 활동 영역을 넓히는 다양한 기획도 부지런히 추진한다. 김신숙 시인은 시집 『우리는 한쪽 밤에서 잠을 자고』, 동시집 『열두 살 해녀』를 썼다. 현택훈 시인은 시집 『지구 레코드』, 『남방큰돌고래』,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음악 산문집 『기억에서 들리는 소리는 녹슬지 않는다』를 썼다. 시인부부가 만나고, 읽고, 지지고, 볶는 제주 작가와 제주 문학. '시인부부의 제주탐독'은 매주 금요일 게재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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