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냐, 저것이냐”, 선택의 기로(岐路)가 아니다.
화살은 이미 시위를 떠났다. 이제는 어떻게 과녁을 제대로 꿰느냐가 문제다.
‘제주 제2공항’에 대한 원희룡지사의 입지가 그렇다. “지사의 정치적 운명이 제주공항 성공 여부에 달려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까닭이다.
원지사로서는 짊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의 등짐’인 셈이다.
지사만이 아니다. 제주발전의 백년대계(百年大計)가 여기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주의 미래가치와 미래 먹거리 산업과 연동돼 있다. 제주도민 삶의 질 향상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물론 장밋빛 꿈만은 아니다. 추진과정에서 시행착오나 부작용은 예기치 못한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고통과 갈등도 시행 과정에서의 피할 수 없는 목 가시 같은 아픔이다.
‘장밋빛 꿈의 향연’은 이 같은 역경을 어떻게 지혜롭게 인내하고 슬기롭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앞길이 예사롭지가 않다. 출발신호음은 고사하고, 신발 끈도 조이기전부터 조짐은 불길하다.
‘제2공항 입지 예정지’로 선정된 성산읍지역 마을 주민들의 반대 목소리가 크고 점점 거칠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예상됐던 일이기는 했다. 그러나 무게의 정도가 예상보다 강하고 견고하다.
마을 주민들은 지난 7일 국토교통부가 마련했던 도민 설명회를 보이콧 했다.
이들이 주장하는 바, "정부나 도는 주민 피해나 생존권 위협에 대해 납득할 만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마을 주민 의견을 이해하려는 자세와 의지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제2공항 예정지 발표를 즉각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의 실질적 제2공항 반대 이유는 이처럼 단순하거나 간단한 것일 수만은 없다.
조상전래의 삶의 터전을 쉽게 내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항공기 소음 등 악화된 새로운 삶의 여건에 적응하는 것도 부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두렵기도 하겠다.
누구인들 이들 주민들 입장이라면 머리띠 두르고 종주먹 내지르며 소리 지르지 않을 수 있으랴. 생존권 수호 차원인 셈이다.
그러나 대단히 죄송한 이야기지만 그들의 처지를 떠나서 제2공항은 솔직히 말해 대다수 도민 입장에서는 환영 할 수밖에 없는 숙원사업이다.
현 제주공항은 포화상태다. 전문가 그룹의 진단이 그렇다. 도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바로도 그렇다.
이 포화상태가 부풀어 공항 수용능력이 견디지 못할 정도로 팽창해서 고무풍선처럼 터져버린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공항 기능이 마비되거나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면 제주도민 뭍 나들이는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 될 수밖에 없다.
엄살을 부풀린다면 물류비나 각종 물가 상승은 도민경제의 빨간불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뻔한 이치다. 제주경제를 비틀거리게 할 소지가 크다.
또 제주경제 발전의 한 축인 관광산업은 어떨 것인가. 쉽고 편리한 접근성이 생명인 제주관광산업의 숨통을 죄어버릴 것이다.
그러기에 제주지역 공항 인프라 확충은 지난 25년간 갈구해온 도민적 염원이었다. 절박하고 시급한 제주 최대 최고의 현안일 수밖에 없다.
제주 지역구 국회의원은 물론 도의원들도 선거 때만 되면 제2공항 건설 등 공항 인프라 확충을 경쟁적 단골메뉴로 올렸다.
제주상공회의소 등 경제인 단체나 관광협회 등 관광업계, 시민사회단체 등에서도 그랬다.
그래서 공항 인프라 확충은 도민 염원의 ‘공통분모’나 다름없었다. "해당 주민들이 대승적 차원에서 공항문제에 접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여기서 비롯된다.
사실 지난해 11월 10일, 국토교통부의 제주 제2공항 입지 선정 발표는 도민들에게는 축복이자 가장 값비싼 선물이 아니던가.
제주도를 대표하는 원희룡 지사로서도 가슴 벅찬 기쁨이었을 터다. 임기 중에 25년 도민 염원을 담은 공항 인프라 선물을 받았기 때문이다.
원지사는 입지선정 발표 후 몇 차례나 관련 입장을 발표했다. 우선 입지에 포함된 주민들의 상실감이나 박탈감을 달래는 쪽에 무게를 실었다.
소음 피해 대책, 피해보상과 생계지원 대책, 피해주민 이주대책, 해당지역 발전계획 수립 등을 꼼꼼히 챙기고 주민 생활안정과 지원 사업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환경훼손을 최소화 해 친환경적 공법을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명품 공항 건설에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다짐도 했다.
동원 가능한 모든 도정 역량을 쏟아 붓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런데도 해당지역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사로서는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당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로서는 정치적 생명을 걸고 나설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제2공항 예정지 철회는 물리적 현실적으로 되돌릴 수 없는 불가역적(不可逆的) 상황이다.
‘무소의 뿔’처럼 앞을 보고 달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그러나 그를 둘러싼 분위기나 진행되는 상황은 녹녹치 않다. 그러기에 그는 외롭고 고단하다. 불행하게도 우군은 보이지 않는다.
선거 때마다, 기회 있을 때마다, 앞장서 공항인프라 확충을 노래하던 정치인들은 꿀 먹은 벙어리 행세다.
납작 엎드려 좌우로 눈동자나 굴리면서 눈치 보기에 여념이 없다. 참 비겁한 눈치꾼들이다.
공항 인프라 확충에 열 올리던 상공인 단체, 관광업계, 시민사회단체 등도 마찬가지다. 목하 침묵모드에 들어간 듯 입에 지퍼를 달았다..
지역구 국회의원 한 사람은 되레 입지 선정에 딴죽치는 듯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자신의 의정활동 보고회를 통해서다.
국회 상임위 자리를 옮겨가며 제주공항 인프라 확충 노력을 했다면서도 “신공항 건설에는 찬성하지만 입지 문제에 대해서는 검토하고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 제주공항 앞바다 매립 방안을 강조하기도 했다.
비겁한 부화뇌동(附和雷同)이거나 자가당착(自家撞着)이 아닐 수 없다. 자기모순이기도 하다.
입지 선정에 대한 딴죽걸기는 그가 공항 인프라 확충에 노력하지 않았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고백한 것이나 다름없다.
현 공항 앞바다 매립 방안은 어떤가.
10조 가까운 규모의 예산 확보는 차치하더라도 엄청난 해양 생태계 파괴나 훼손 등 환경문제나 새로운 소음피해구역 확산 등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뜻인가.
책임 있는 정치인의 자세는 아닌 것이다.
이런 상황을 보더라도 지사는 고립무원(孤立無援)신세다. 상황에 따라 사면초가(四面楚歌)에 시달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책임 있는 지도자의 길은 외롭고 고되다’는 것이 통설이다. 거기서 지도력은 단련되기 마련이다.
외롭고 고되지만 끈질기고 당당하게 나가야 할 이유다.
세계적 설득 전문가 ‘로저 도슨’은 세 가지 ‘설득의 법칙’을 제시한 바 있다.
먼저 ‘마음을 주라‘는 것이었다. 다음은 ’신뢰 쌓기‘다, 마지막 법칙은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었다.
진정성을 가지고 겸손하고 따뜻한 감정으로 다가선다면 언 마음을 녹일 수 있을 터이다.
그것이 마음을 주고 신뢰를 쌓는 일이다. 이를 바탕으로 약속을 목숨같이 지키려 한다면 협상이나 대화에서 장애물을 하나씩 걷어낼 수 있을 것이다.
지사가 마음속에 새겨야 할 경구나 다름없다.
마을 주민들도 마찬가지다. 외곬수 반대만이 능사일 수 없다. 대화나 타협에는 상대가 있는 것이다.
만나서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내 속내도 털어놓고, 상대의 말을 들어보는 것이 타협의 ABC다.
타협은 생각이 다른 사람, 의견에 차이가 있는 사람, 입장이 다른 사람이 서로 대화로 풀어내는 ‘윈-윈 게임’인 것이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기본이다.
만남 자체를 거부하는 옹졸한 고집에 사로잡히거나 자물쇠처럼 마음의 문을 닫아거는 완고함으로는 사회발전의 동력을 살릴 수 없다.
상황전개가 너무 안타깝고 답답해서 해보는 넋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