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건물주가 되겠다’... 시민사회의 새로운 도전

♯1. 몇 해 전 서울 광진구 시민사회단체들이 크게 사고(?)쳤다. 대로변에 위치한 지상 4층 지하 1층 건물을 통째로 사들였다. 공유공간 ‘나눔’... 새 보금자리 이름이다. 광진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광사넷) 소속 주민연대, 주거복지센터, 소비자생활협동조합, 마을병원, 자활카페 등 15군데가 입주했다. 임대료는 주변 시세의 40% 수준. 과연 운영이 될까 싶었지만 놀랍게도 대출이자를 감당할만하단다. 공간을 더 촘촘하게 쓰면 원금을 상환할 여력도 생긴다. 건물 운영은 정기적으로 입주단체들이 협의해서 결정한다. ‘차라리 건물주가 되겠다’던 15년 전 다짐이 마침내 이루어진 것. 매입비용은 36억 원. 25억 원은 은행대출과 차입금이고, 나머지는 입주 보증금과 회원들의 기금으로 채웠다.

광진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 공유공간 나눔 전경 (사진=강종우 )
광진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 공유공간 나눔 전경 (사진=강종우 )

우리만의 공간이 너무나 간절했다는 박용수 광사넷 집행위원장.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지역에서 시민사회단체들이 안정적으로 사업도 할 수 있고 한데 모여 협업하기도 좋다”며 너스레떤다. 여전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손사래 치는 필자에겐 “10% 정도 계약금만 있으면 가능하다. 나머지 75%는 담보대출, 15%는 보증금으로 마련할 수 있다.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라고 넌지시 권할 정도다. 이참에 광사넷은 소속 단체들의 사업장 마련을 위해 2년에 한 채씩 건물을 사들일 작정이란다.

♯2. 서울 혜화역 2번 출구 담쟁이 넝쿨이 감싼 빨간 벽돌 건물. 예전 출판사 샘터의 사옥이다.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이 건물은 역사적 가치를 지닌 대학로의 상징. 이곳을 사회적 부동산회사 공공그라운드가 매입했다. 건물을 보존하면서 미래 세대를 위한 공간으로 재설계하자는 취지로 자금을 모았다. 매입비용 300여억 원 중 절반은 ‘임팩트 투자’를 통해, 절반은 은행대출로 마련했다.

건물의 새 이름 ‘공공일(001)호’는 적정 수익을 거두면서 공공 가치를 만들어내는 수백 호의 건물 중 첫째라는 의미다. 도서관과 출판사 사옥이던 건물의 역사를 살려 교육과 미디어 분야 플랫폼으로 기능하는 게 목표다. 그래서 3층에 입주한 대안학교 거꾸로캠퍼스와 4층 미디어 관련 업체들의 임대료는 주변보다 30%가량 저렴하다. 6층은 팟캐스트 스튜디오, 사내식당이던 5층은 라운지로 조성해 누구나 공유할 수 있다. 스타벅스 등이 들어선 1, 2층만 그대로 일반 임대료를 받는다.

요즘 전국 곳곳에서 지역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힘을 모아 ‘건물주가 되자’는 움직임이 부쩍 눈에 띈다. 키즈 카페를 운영하는 경기도 시흥시 사회적기업 빌드, 커뮤니티 케어 복합공간을 조성한 대구시 동구 안심마을 건축주택협동조합 공터, 주민을 대상으로 회원제 식당을 차린 전주 노송동 아트 클러스터 별의별, 공유경제형 코워킹 스페이스를 신축한 해빗투게더 협동조합 등등. 비록 목적이나 유형은 달라도 시민자산화야말로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일궈내는 평범하지 않은 기적”

특히 영국에서는 지역의 토지나 건물을 ‘공동체 자산’으로 만드는 일이 흔하다. 바로 지역자산 공동소유운동. 대개 작게 시작해서 점점 커지는 구조다. 주민들이 한데 뭉쳐 하나의 자산을 공동으로 소유하게 되면, 이를 토대로 수익 사업도 생겨나고 일자리도 만들어 진다. 점점 살기 좋은 동네로 변모해 가는 것.

영국 런던 코셤 스트리트에 있는 지역혁신기구 ‘로컬리티(Locality)’가 대표적. 주된 활동은 국가나 지자체 혹은 민간이 소유하고 있는 유휴지나 빈 건물을 공동체 방식으로 관리한다. 지역시민단체나 우리네 사회적기업과 유사한 공동체이익회사(Community Interest Company)가 싼 가격에 매입 혹은 대여해 경영하면서 생기는 수익을 지역주민의 공공이익을 위해 사용하도록 도와준다.

영국 남부의 라임 레지스 지역은 ‘쥐라기 해안’으로 불릴 정도로 화석이 많이 발굴됐지만 관광객을 끌어들이기엔 역부족이었다. 이 지역에서 로컬리티는 주민들과 함께 화석 박물관을 세운 뒤 지리학자와 해양생물학자가 해안을 함께 걸으며 안내하는 ‘화석 워크 투어’를 개발해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또 다른 사례 하나. 영국 북부 도시인 토드모든은 공동경작의 성공사례. 토드모든에는 빈 공터가 많았는데 로컬리티는 지역주민들과 이 공간을 활용해 꽃과 야채를 심었다. 경작이 늘어나자 농장 규모로 확대됐고 경작물은 지역주민들 모두 이용한다.

이처럼 로컬리티에 소속된 마을공동체는 2014년 기준 750여 곳에 이른다. 그 해 3억1700만 파운드(약 5,550억 원)의 수익을 냈다. 고용인력만 38만 2천명, 자원봉사자도 2만 여명이나 된다. 마을공동체 복원은 물론 일자리 창출효과까지 톡톡히 거둔 셈이다.

로컬리티의 활동은 2011년 ‘지역주권법(Localism Act)' 이 제정되면서 탄력을 받았다. 지역에서 가치 있는 자산을 매각할 때, 6개월 동안 토지 소유자가 개인에게 팔 수 없도록 유예기간을 둔다는 게 주요 골자. 마을공동체가 돈을 모을 때까지 기다려 준다는 취지다. 가령 로컬리티가 운영하는 공동체 권리 지원서비스(Community Rights Supports Service)라는 웹사이트에 지역 자산 리스트를 올릴 경우, 6개월 동안은 일방적으로 판매하거나 매각할 수 없게 한 것. 만약 공동체가 그 자산을 구입하여 지키고 싶다면, 6개월 안에 모금이나 여러 방법을 통해 자금을 모을 수 있다. 이 웹사이트 목록에는 2014년까지 총 2600여 건이 등록되었고, 그중 200여건이 공동체 소유로 전환되었다.

로컬리티 홈페이지 캡처

오래전 마포 성미산을 다녀간 로컬리티 활동가 클레어 씨는 “영국에서는 공동체 자산소유(Community Ownership)와 공동체 기업(Community Enterprise)이야말로 빈곤과 박탈, 사회적 배제를 제어하고, 권한이양과 고용 그리고 자조를 가능케 하는 힘이자 해결책”이라며 이 두 가지는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 일궈내는 평범하지 않은 기적’이라 강조한다.

문제는 파이의 ‘크기(size)'가 아니라 '원천(source)'이다

누군가의 말대로 사회적경제의 궁극적 목적은 사회적 소유, 사회적 경영, 사회적 가치 창출을 실현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시민자산화야말로 다수 시민이 공동으로 사용·운영·관리할 권리를 갖는 사회적 소유나 다름없다.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시민자본이다. 시민이 소유하고, 공동체의 가치를 확장하는 데 기여하는 자산, 다름 아닌 ‘커먼즈(Commons)’다. ‘소유권이 가치를 창출하는 원천이다.’ 영국 로컬리티 활동 모두는 바로 이런 신념에서 출발한다.

그나마 다행스럽게 제주에서도 시민자산화를 위한 움직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제주올레는 시민과 기업들의 기부와 후원으로 서귀포에 3층 규모의 여행자센터 건물을 스스로 매입한 지 오래다. 코로나로 어렵긴 하지만 푸른바이크쉐어링, 착한여행, 두리함께 같은 여행전문 사회적경제기업들도 지난해 새롭게 둥지를 틀었다. 행안부의 지역자산화 시범사업이나 사회적 금융을 통해서다. 그리고 몇 달 전부터 사회적협동조합 희망나래는 발달장애인 커뮤니티 복합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시민자산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어쩌면 지금까지 우리 제주는 거꾸로 달려온 건 아닐까. 공동목장은 말할 것 없고 중산간과 해변, 그리고 도심 안마당마저 죄다 내다팔기 바빴다. 그러면서 부동산 광풍입네 둥지내몰림입네 하며 허둥대기 일쑤였다. 더 늦기 전에 진지하게 돌이켜 볼 때다.

강종우 제주살림충전소장

뉴턴의 물리학 법칙에 따르면, 호박벌은 절대로 날 수가 없다. 날개 길이가 몸무게를 지탱할 만큼 길지 못하기 때문. 그런데 호박벌은 날아다닌다. 마찬가지로 통상의 경제학 이론으로는 협동조합은 장기적으로 실패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실제로 다양한 분야에서 협동조합이 활동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협동조합을 호박벌에 비유하기도 한다. 2000년부터 근로빈곤층 자활사업이란 말죽은 밭에 빠져 근 20여년간 시민경제를 업으로 삼아온 강종우 센터장이 제주살림충소장이란 새로운 직함으로 '호박벌의 제주비상'을 월 2회로 늘려 가장 약한고리조차 날아오르는 경제, 불가능해 보이는 희망을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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