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 14-1코스 종점 (제주투데이DB)
제주올레 14-1코스 종점 (제주투데이DB)

또 다른 제주사람...올레꾼 친구 이야기

얼마 전 서울에서 ‘물밖’ 친구와 오랜만에 수다를 떨었다. 모처럼 만난 그 녀석은 지난달 제주에서 지인 몇몇과 해장국 투어에 나섰다 너스레다. 서귀포 □□□해장국(겡이국), 강정 △△△△식당(복어지리), 남원 ○○분식(순대국밥), 제주시 ◇◇네(각재기국). 헉! 토박이들도 아직 가보지 못했을 골목식당을 잘도 찾아 다녔나 보다?! 다들 대만족, 꼭 다시 오겠다 그런단다. 은근슬쩍 필자한테도 먹어 봤냐며 떠보기마저 한다.

사실 이 녀석은 제주올레에 흠뻑 빠져 사는 마니아다. 다름 아닌 올레꾼. 모든 코스를 완주한 건 물론이고 해마다 제주에 며칠씩 머무르며 ‘올레마케팅(?)’도 열심이다. 기특하게도 제주지역 환경단체에도 선뜻 기부해 왔더랬다. 이 정도면 인정해도 좋지 않을까. ‘또 다른 제주사람’으로 말이다. 정작 충남 서산이 고향인 이 친구의 올레예찬은 각별하다. 아니 어쩌면 토박이인 필자보다 더 제주를 좋아하고 정말 아끼지 않나 싶다.

시민과 지방을 이어주는 연결고리, 고향사랑기부제

고향사랑기부제. 요새 들어 심심치 않게 입에 오르내리는 화두다. 거주지 외의 지자체에 개인 명의로 기부하면 해당 지자체의 답례품과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기부상한액은 1인당 연간 500만원. 지자체는 기부금의 30% 이내에서 답례품을 제공한다. 또 10만원까지는 전액 세액공제 혜택을, 10만원 초과분부터는 16.5%를 공제받는다.

내년 1월 1일부터 전국 모든 지자체에서 시행된다. 인구소멸이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자발적 기부에 기대어 지자체 재정을 조금이라도 늘려보자는 것. 유인책으로 ‘고향’이라는 이름이 달라붙은, 이른바 ‘고향세’나 진배없다. 기부금은 취약계층이나 청소년 지원, 문화·예술·보건 증진 같은 주민복리 증진사업에 활용된다

다른 얘기도 여럿 들린다. ‘기부금 받아 운영하면 그게 시민단체지 지자체냐’부터 ‘답례품으로 기부를 유도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지적까지. 게다가 경쟁이 과열될수록 공무원들이 들들 볶일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제도 취지에 맞게 모금 주체를 인구감소지역으로 제한하자’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얼핏 보면 설득력도 꽤 충분하다. 하지만 고향사랑기부제는 지자체 재정을 보충해 주려는 의도만 있는 게 아니다. 한발 더 나아가 시민과 지방 사이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로서, 보이지 않는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한다. 돈 낸 곳에 마음 간다는 말이 있다. 기부금을 낸 지역에 더 관심을 쏟기 마련이다. 나중에 기부자가 그 지역에 정착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일종의 '정서적 끈'이 생기는 것.

행전안전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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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사랑기부제의 성공방정식

고향사랑기부제를 앞두고 지자체들이 상당히 바빠졌다. 다른 지자체보다 더 나은 답례품을 준비하느라 온통 부산스런 모양새다. 저마다 언론보도나 광고도 한창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답례품이 있어야 기부금이 늘어난다는 셈법. 특산품을 안배하느라 답례품이 수십 가지나 되는 진풍경도 벌어진다. 계절별로 답례품을 변경하는 방안까지 고민 중이란다.

시작 단계라지만 걱정부터 앞선다. 무엇보다 민간 참여가 완전히 배제됐기 때문. 더구나 제주는 행정시라는 가당찮은 이유로 기초지자체는 자격조차 없는 실정이다. ‘특별’한 대접치곤 너무하다 싶다. 적어도 필자가 생각하기엔 그렇다.

지자체 대응 또한 아직 함량미달이다. 그저 답례품을 앞세워 기부를 유도하려는 단편적인 발상에 머물러 있다. 정작 어떻게 기부를 유도할지 깊이 있는 고민은 찾아보기 힘들다. 고향이나 지역발전을 위해 기부에 나서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오롯이 담아낼지는 뒷전이다. 뭔가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지 않을까. 고향사랑기부제의 성공방정식을 찾아 나설 때다.

사실 고향사랑기부제는 2008년부터 시작된 일본의 '고향납세'(ふるさと納税)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다. 인구감소와 지자체 재정위기에서 출발했던 것. 올해로 15년째다. ​본인의 출신지 혹은 응원하고 싶은 지자체에 약 2만 원 이상의 기부금을 내면 세액공제 혜택과 함께 답례품을 받는다.

일본의 한 고향납세 사이트의 모습. 일본은 고향세를 통해 특산물을 받는 방식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사진출처=https://www.furusato-tax.jp)
일본의 한 고향납세 사이트의 모습. 일본은 고향세를 통해 특산물을 받는 방식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사진출처=https://www.furusato-tax.jp)

일본에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는 자평이다. 첫해 865억 원이었던 기부금이 2021년에는 8조 원을 훌쩍 넘어섰다. 100배나 증가한 것. 지금도 기부금은 증가추세다. 특히 소멸위기에 처했던 지역들이 고향납세로 걷은 기부금으로 인구 감소세를 막아 주목받고 있다.

먼저 성공비결로 꼽히는 건 다름 아닌 민관협력 플랫폼. 지자체가 플랫폼에 답례품 등록을 의뢰하면 고향납세 수납, 답례품 홍보·판매, 민원처리 등을 대행한다. 플랫폼만 40여 개에 이른다. 플랫폼에 접속하면 순위별·상품별·지역별·기획전 순으로 답례품이 일목요연하게 나타난다. 플랫폼에 따라 차별화된 답례품, 친절한 설명, 계절 기획전 등이 더해지며 인기가 대단하다. 여러 플랫폼이 각자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하면서 고향납세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고 홍보도 활성화됐다.

예컨대 플랫폼 1위인 후루사토초이스에는 햅쌀 특집전, 1인 가구 전용 답례품 같은 재밋거리가 끊이질 않는다. 연말마다 ‘고향납세 어워드’로 지자체간 경쟁도 이끌어낸다. 그리고 플랫폼 사토후루는 직원 600 명 중 반 이상이 콜센터 상담직원일 만큼 답례품 사후관리에도 만전을 기한다. 일부 지자체들은 플랫폼을 테스트 시장으로 기부자 반응을 보고 나서 정식 판매에 나선다. 답례품이 곧 지역을 대변한다는 자부심이 있어야 성공하고, 그렇지 않으면 지역 이미지 손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향납세 시행 초기에는 지자체 상당수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지만 플랫폼들과 협업으로 성공사례를 하나씩 축적해 왔던 것.

특히 일본에서 성공한 지역들은 어떻게 돈이 쓰여 지는지 기부자들에게 모두 개별적으로 공지한다. 가령 '우리 지역에 매우 절실한 것이 있었는데, 예산이 부족해서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 기부자님의 정성 어린 돈으로 풀어갈 수 있었다'는 식이다. 이렇게 기부자들에게 자기가 낸 돈을 어떻게 썼는지 알린다. 이는 다시 기부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색다른 실험도 필요하다! 지역문제 해결형 공공크라우드 펀딩

우리나라 고향사랑기부제와 일본 고향납세제도의 커다란 차이점 또 하나. 지역에 기부하고 특산품을 답례품으로 받는 우리와는 달리, 해당 지역에서 진행하는 문제해결 프로젝트에 기부할 수도 있다. 시민사회(민간)와의 협업, 특히 각종 지역현안 해결을 목표로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기부를 적극 유치하는 방식이다. 이른바 공공 크라우드 펀딩, GCF(Gervermant Crowd Funding)

GCF란 지자체가 나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자금조달을 일컫는다. 특히 기부자 스스로 사용처를 선택하고 기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획기적이다. 또한 민간의 경우 모집자의 안정성과 신뢰성을 확인하기 어렵지만, 그보다 GCF는 지자체가 프로젝트 관리자여서 안심하고 참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기부자에게도 직접 지역에 도움이 되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뿌듯함을 안겨준다. 그리고 자신이 낸 기부금이 실제로 어떻게 쓰이는지 한눈에 알 수 있는 만큼 지역에 대한 사랑도 오롯이 느낀다. 이처럼 고향납세를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자금조달 방식이 바로 GCF다. 그야말로 혁신적인 색다른 실험 아닌가.

대표적으로 피스 완코 재팬(Peace Wanko Japan : 완코는 강아지를 귀엽게 부르는 일본어). 비영리단체 피스윈즈재팬(Peace Winds Japan)이 진세키고원에서 펼쳐온 '유기견 살(殺)처분 제로' 프로젝트다.

피스윈즈재팬은 진세키고원 산중턱 넓은 공터에 유기견보호소를 세우고 살처분 위기의 유기견을 구조해서 치료와 교육을 거쳐 재난구호견으로 활용하거나 입양을 보낸다. 2012년부터 지난 11월까지 보호해온 7500여 마리 가운데 절반 가까이를 입양시켰다. 6개월 넘게 히로시마현의 개 살처분 횟수는 제로(0)를 기록 중이다. 눈부신 성과다.

피스윈즈재팬은 유기견 보호에 그치지 않고 진세키고원 보호소 옆에 티어가르텐이라는 생태공원을 조성했다.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반려견을 데리고 와서 뛰어놀고 자연을 체험하는 관광지가 되면서, 고령자만으로 을씨년스럽던 동네가 사람들로 북적였다. 피스완코에 100여 명의 청년이 근무하면서 지역 고용창출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사업 초기부터 든든한 버팀목 된 것이 바로 고향납세 제도. 실제로 2015년 30억여 원을 시작으로 매년 40-50억여 원에 이르는 자금을 고향납세교부금으로 충당해왔다. 2022년 현재 고향납세교부금이 전체 예산의 40%를 차지할 정도다. 2021년에는 월정액 회원 기부금이 고향납세교부금을 넘어서며 사업도 크게 안정화됐다.

시행 15년째인 일본 고향납세제도는 기부하면 답례품을 받는 단편적인 방식을 넘어 지역문제 해결 프로젝트에 기여토록 유도함으로써 시민들의 참여율도 크게 늘었다. 고향납세 플랫폼 후루사토초이스에 입점한 지자체 3곳 중 1곳이 프로젝트 방식을 활용한다. 인기 프로젝트는 목표치두 배를 넘어서는 경우도 많다. 피스완코 프로젝트 역시 한 번에 최대 약 80억 원의 모금실적을 거두며 눈길을 사로잡았다.

고향사랑기부제, ‘또 다른’ 지역주민‘관계인구’가 답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고향사랑기부제는 결코 지자체가 단순히 부족한 재정을 확충하려는 것만이 아니다.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있다. 그만큼 고향이라는 감성에만 호소해서는 일회성에 그칠 수밖에 없는 노릇.

무엇보다 기부금의 본질을 잊으면 안 된다. 기부자가 직간접적으로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깊이 고심해야 한다. 이웃과 정을 나누면서 따뜻한 마을 공동체가 유지되듯, 특정 지역민이 또 다른 지역민과 마음을 나누면 더 큰 단위의 지역 공동체가 형성된다. 이것이 기부금의 본질이다. 이를 통해 시민들이 내 지역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관심을 기울이도록 나아가야 한다. 기부금은 이를 위한 수단이다. 이걸 잊어서는 안 된다.

제주도 홈페이지
제주도 홈페이지

‘관계인구’가 답이다. 고향사랑기부제 성공열쇠 말이다. 관계인구란 해당 지역에 거주하지는 않지만 꾸준히 관심을 갖고 주기적인 특산품 거래, 업무나 여가, 사회적 기여 등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어 교류하는 인구다.

앞서 소개한 필자의 ‘물밖’친구처럼, ‘또 다른’지역주민은 아닐까. 특히 수도권에 사는 베이비부머(1957년-1963년생) 상당수는 지방에 고향을 둔 사람들이다. 자신의 고향에 대한 추억이나 애정은 사뭇 남다르다. 이들에게 고향사랑기부제는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올 법하다.

그럴수록 단순한 상품보다는 고향의 향수와 현재를 체험할 수 있는 답례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탐나는 선물’이라면 어떨까. 구매자 관점에서 고향사랑기부제는 추억이나 체험 같은 연결고리를 같이 사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일본에서도 어쨌든 답례품은 내가 가봤거나 알고 있는 걸 구매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처음부터 관계인구를 늘리려는 노력이 필요한 까닭이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지역문제 해결형 공공 크라우드 펀딩(GCF)도 기획해보자. ‘모두를 위한 제주’프로젝트. 기부금으로 어떻게 지역의 각종 현안을 해결할 수 있는지 찾아내서 알리고 함께 풀어나가는 공감대를 만들자. ‘또 다른’ 지역주민, 고향사랑기부제로 관계인구를 확장해 나가자.

‘물밖’친구한테 지면으로나마 감사인사를 대신한다. 언제나 올레를, 아니 제주를 너무너무 아껴줘서 고맙다고... 필자도 멀리서나마 항상 응원하겠다는 속마음도 함께...

강종우 제주살림충전소장

뉴턴의 물리학 법칙에 따르면, 호박벌은 절대로 날 수가 없다. 날개 길이가 몸무게를 지탱할 만큼 길지 못하기 때문. 그런데 호박벌은 날아다닌다. 마찬가지로 통상의 경제학 이론으로는 협동조합은 장기적으로 실패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실제로 다양한 분야에서 협동조합이 활동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협동조합을 호박벌에 비유하기도 한다. 2000년부터 근로빈곤층 자활사업이란 말죽은 밭에 빠져 근 20여년간 시민경제를 업으로 삼아온 강종우 센터장이 제주살림충전 소장이란 새로운 직함으로 '호박벌의 제주비상'을 월 2회로 늘려 가장 약한고리조차 날아오르는 경제, 불가능해 보이는 희망을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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