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배달을 시작하기 전 오토바이에 오른 정재호(오른쪽)와 동료. (사진=박소희 기자)
저녁 배달을 시작하기 전 오토바이에 오른 플랫폼 노동자 정재호(오른쪽)와 동료. (사진=박소희 기자)

‘고용돼 일은 하지만 노동자는 아니다?!’

산업구조가 고도화되고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할수록 기업들은 직접 고용보다는 아웃소싱하기 바쁘다. 그만큼 프리랜서나 플랫폼 노동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

우리나라에서도 2008년 250여만 명에서 2020년 700여만 명으로 세배가까이 불었다. 이른바 ‘특고’(특수형태고용근로자)라 불리는 이들이다. 국세청자료로는 연간 이들에게 지급되는 세전소득이 106조 7017억 원, 납부세액만도 3조 2651억 원에 이른다.

그렇다면 살림살이는 어떨까. 이들 특고의 월 평균 보수는 180만 원 정도, 정규직의 절반에 불과하다. 30% 넘게 1인 가구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친다. 게다가 소득이 불안정할뿐더러 일감이 없을 땐 실업급여조차 받을 수 없다. 이상하게도(?) 특고라는 이름 뒤엔 ‘고용돼 일은 하지만 근로자는 아니’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닌다. 정작 근로기준법 보호가 가장 필요하지만 오히려 고용안전망의 사각지대로 수 십 년째 내팽겨져 왔다.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도그마. 아닌 말로 대한민국에서 ‘2등 국민’으로 취급받아 온 셈이다.

한번 여기로 눈길을 돌려보면 어떨까.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비용과 책임을 줄이기 위해 임시노동자로 많이 대체해 왔다. 1971년 미국 임시인력 공급업체인 캘리서비스 광고를 보면 긱 노동자(Gig Worker)의 특성을 알 수 있다. 광고 내용을 살펴보면 현재 플랫폼 노동자 형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nbsp;<br>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비용과 책임을 줄이기 위해 임시노동자로 많이 대체해 왔다. 1971년 미국 임시인력 공급업체인 캘리서비스 광고를 보면 긱 노동자(Gig Worker)의 특성을 알 수 있다. 광고 내용을 살펴보면 현재 플랫폼 노동자 형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nbsp;<br>

#1. 사업고용협동조합 - 노동자 스스로 보듬어가는 안정적인 일터

‘사업고용협동조합(CAE : coopératives d'activités et d'emploi)'. 직원이자 기업가라는 이중적 지위를 가지면서 근로자로서 받을 수 있는 사회보장혜택을 제공하는 노동공제협동조합이다. 다른 지역에는 조금씩 알려져 있지만 제주에선 아직까지 낯설기만 하다.

사업구조는 비교적 단순하다. 먼저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 자신의 활동계획을 협동조합에 제출하면 심사를 거쳐 3년 동안 자신의 꿈을 조립해본다. 이 동안은 사업가 '직원'의 신분이다. 그 이유는 노동자로서 사회보장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함이다.

이 과정에서 매출이 어느 정도 생기면 협동조합과 계약을 맺는다. 사업가 '직원'에서 사업가 '조합원'으로 지위가 바뀌는 것. 이후 매출의 일부를 회비와 보험료로 조합에 지불한다. 이런 개개인의 매출이 모여 협동조합 전체의 매출을 이룬다.

프리랜서나 플랫폼 종사자들은 고용보험 등 사회보험에서 제외되거나 계약서 작성·계산서 발행·세금처리 같은 행정업무 부담이 큰데 협동조합직원이 됨으로써 도움을 받는다. 한 마디로 프리랜서나 플랫폼종사들에게 노동자로서 안정적인 권리와 동시에 사업자라는 이중적 지위를 보장해 주는 것.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2004년 프랑스에서 설립된 ‘코파남(Coopaname)’이 손꼽힌다. 사업가직원 450명에다 조합원은 195명에 이른다. 컨설턴트, 번역가, 공예가, IT개발자, 그래픽 디자이너, 플리마켓 셀러 등 다양한 업종에 걸쳐 있다. 친환경 건축자재를 생산하는 에코 건설사업체인 알테르-바티르 사업고용협동조합도 눈에 띈다. 2014년 현재 프랑스에만 164개의 사업고용협동조합에 1만 여명의 ‘사업자 직원’이 참여하고 있다.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알테르-바티르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벨기에 SMART협동조합(Société Mutuelle pour artists)도 요즈음 주목받기 시작했다. 1998년 문화예술인을 위한 공제조합으로 창립된 이후 점차 프리랜서 전반으로 영역을 넓히면서 현재 유럽 9개국으로 확산된 모델이다. 2016년에는 사회적목적협동조합으로 전환했다.

문화예술인을 포함한 프리랜서들은 창작활동에 집중하고, 협동조합은 계약, 회계, 재무, 법무, 공간, 장비, 네트워크, 지불보증, 사회보장혜택, 비즈니스 관련 각종 서비스를 제공한다. 프리랜서가 자신의 사업체를 별도로 운영할 필요가 없어 좋기도 하고 저렴한 비용으로 안정적인 사회보장혜택이 제공된다.

벨기에서만 12개 지부에 전체 178명이 근무하고, 조합원은 1만 2000명을 넘는다. 2016년 기준 총 수입 2100만 유로, 순수익은 400만 유로(한화 52억원)나 된다.

무엇보다 SMART협동조합의 서비스 혜택은 독보적이다. 가령 소득에서 2%는 ‘스마트펀드’(공제기금)로 적립, 미지급금이나 선금지급에 사용한다. 실제로 2016년 한 자전거 음식 배달업체가 파산하면서 임금을 체불하자 34만유로를 기금에서 지급했다. 또한 브뤼셀 테러로 모든 행사가 취소되면서 일을 하지 못한 조합원들에게 2015년 95명(19,600유로). 2016년 48명(4,600유로)에게 보상금을 집행하기도 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한국비정규노동센터

#2. 다수고용주연합 - 자영업자들이 함께 일구는 고용안정

다수고용주연합(groupement d’employeurs), 프랑스에서 활성화된 제도다. 혼자 힘으로 고용하기 어려운 자영업자들이 그룹을 만들어 함께 직원을 고용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당초에는 전일제 근로자를 고용하지 못하는 자영업자들의 노동수요를 충족시켜 줄 목적으로 출발했던 것. 하지만 다수고용주연합은 동시에 근로자들에게 동일지역 여러 사업체에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고용 안정성에도 기여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다수고용주연합은 지역 노동력을 안정화시킬 수 있는 제도이며 특히 군소도시와 농촌지역에서 영향력이 더 크다.

다수고용주연합은 협회 또는 조합의 형태를 가진다. 고용주연합에 고용된 근로자들은 연합과 서면으로 된 고용계약을 맺는다. 계약서에는 고용조건, 보상, 자격, 잠재적 이용 사업체들의 명단, 근로 장소 등을 규정하여야 한다. 또한 보상, 이익배분, 참여 등에 관하여 고용주연합과 사업체의 기존 근로자들 간 동등한 대우를 받는 것을 보장하여야 한다. 특히 2011년 교육 개발과 직업적 경로 보호 목적으로 제정된 소위 쉐르피옹(Cherpion)법이 제정되면서 법적인 지위를 보장받았다.

지역고용을 활성화시킨다는 측면에서 다수고용주그룹을 만들 수 있는 주체는 개인 또는 법인이외에 지자체도 포함된다. 상업, 산업, 농업 등 활동 분야의 제한은 없으며 법적 형태의 제한도 없다. 단, 제도 특성상 단체협약을 할 수 있는 주체이어야 한다. 고용주그룹은 반드시 비영리적 목적만을 가지고 운영되어야 한다. 상업적 활동을 하지 못하며 어떤 경우에도 근로자들을 그룹에 속하지 않는 기업에게 취업시킬 수 없다. 또한 근로자 고용은 반드시 안정적 고용형태인 무기계약(상용직) 형태를 취해야 한다.

제주지역에서 시간제 근로를 하고 있는 이 모씨(24).
제주지역에서 시간제 근로를 하고 있는 이 모씨(24).

다수고용주연합에서 근로계약 당사자는 고용주그룹이지만 개별적인 근로에서 근로조건에 대한 책임은 고용주그룹에 가입한 개별 기업이 진다. 근로시간, 야간 근로, 휴일 및 휴가, 보건과 안전, 여성, 아동, 청년 노동 등 사항에 대해 근로조건을 규정하고 적용한다. 각 개별 기업에서 근로자들은 기업이 운영하고 있는 단체운송수단, 단체 식당 등 공동이용 시설을 해당 기업의 일반 근로자들과 동등한 조건하에서 이용할 수 있다.

다수고용주연합은 자영업자와 근로자 모두에게 유리하다.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첫째, 언제나 필요할 때 검증된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다. 둘째, 고용에 따르는 추가적인 임금과 관리 비용을 근로자의 근로시간에 해당되는 만큼만 부담함으로써 비용을 경감할 수 있다. 셋째, 일반적으로 추가적인 고용을 할 때 소요되는 행정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넷째, 고용주그룹을 통해 고용과 인적자원관리에 관한 자문을 구할 수 있다.

근로자에게도 편익이 발생한다. 첫째, 이 제도는 여러 기업의 작업장에서 일하지만 계약상으로 한 고용주에 고용돼 있어 사회보장, 노동 조직 및 노사관계에 보다 간편한 형태를 가지게 된다. 둘째, 고용주그룹과 단체로 협상할 수 있어 개별적 고용에 비해 훨씬 더 높은 수준의 고용안정성을 가질 수 있다. 셋째, 고용주그룹이 근로자 임금에 대해 책임짐으로써 고용주그룹 중 한 사업체가 도산해도 근로자는 이전과 동일한 임금을 보장 받을 수 있다.

제주지역은 전국과 비교해도 비정규직 비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그래픽=오상원 국장)
제주지역은 전국과 비교해도 비정규직 비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그래픽=오상원 민주노총 제주본부 정책국장)

제주에서도 시간제 근로자(소위 아르바이트)나 플랫폼 노동자가 날이 갈수록 늘고 있다. 안타깝게도 청년들이 편의점이나 식당에 아르바이트로 근무하면서 불안하다 못해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도 허다하다. 시간제 근로자를 채용하는 사업체도 어려움을 겪긴 매한가지다. 사람을 찾기도 쉽지 않은 판에 근로시간 단축으로 경영을 포기하는 영세자영업자도 속출하는 형국. 지금이라도 시간제 근로자들의 노동권을 보장하는 동시에, 자영업자들에게는 채용부담과 인력수급 안정성을 꾀할 수 있는 처방이 시급하다. 어쩌면 이 다수고용주연합 같은데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는 않을까.

근로기준법 적용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2등 국민이 따로 없다?!

‘제주 노동자 3명중 1명은 가난할 수밖에 없다’(☞관련기사: 제주 노동자 3명중 1명이 가난할 수밖에 없는 까닭) 지난핸가 눈에 밟혔던 기사다. 제주지역 급여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을뿐더러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노동자가 2만 명을 웃돈다는 것. 심지어 산재사고·직장 갑질·노동복지·쉴 권리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근로기준법도 적용받지 못하는 5인 미만 사업장이 대다수라는 이유만으로. 읽는 내내 부아가 치밀고 괜스레 부끄러워 혼났더랬다.

제주지역 사업체 중 5인 미만은 5만 여개, 오래전에 이미 80%를 넘어섰다. 종사자는 6만3천여 명, 전체 24만7000여 명의 25.6% 정도다. 어림잡아 노동자 셋 중 하나가 이처럼 영세사업장에서 일한다는 말이다.

5인 미만 사업장만 여성 노동자 비율이 높다. (그래픽=곽이경 실장)
5인 미만 사업장만 여성 노동자 비율이 높다. (그래픽=곽이경 실장)

고용사정은 어떤가. 우선 높은 비정규직 비율. 전체 노동자 중에 비정규직은 37.5%이지만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60.5%로 과반을 훨씬 넘는다. 제주지역의 높은 고용 불안정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그뿐 아니다. 사업장 규모가 작을수록 임금도 줄어든다. 전국노동자 월평균 임금이 272만원인데 반해 5인 미만 사업장은 181만원으로 94만원이나 적은 편. 하지만 제주지역은 164만 원에 지나지 않는다. 전국에서 거꾸로 두 번째. 이 가운데 5인 미만 사업체 노동자 2만2000여 명(35.1%)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친다. 결국 남녀노소 상관없이 '고용복지 사각지대'에서 벗어나기 힘든 불편한 제주의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5인 미만 사업체 노동자 광역시도별 실태분석, 민주노총 부설 민주노동연구원)

실태분석에 참여했던 연구원은 “종합하면 제주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비율이 전국 대비 가장 높고 여성 노동자도 많다. 비정규직 비율도 전국 3번째로 높은 데다 평균 임금이 낮고, 최저임금 미달률, 장시간 노동 비율 등 나쁜 지표는 다 상위권을 차지한다” 꼬집는다.

정말 무언가 활로는 없을까? 제주도민들이 안심하고 안전하게, 그리고 안정적으로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도록.

이제 일자리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이 너무나 필요한 때다.

강종우 제주살림충전소장

뉴턴의 물리학 법칙에 따르면, 호박벌은 절대로 날 수가 없다. 날개 길이가 몸무게를 지탱할 만큼 길지 못하기 때문. 그런데 호박벌은 날아다닌다. 마찬가지로 통상의 경제학 이론으로는 협동조합은 장기적으로 실패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실제로 다양한 분야에서 협동조합이 활동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협동조합을 호박벌에 비유하기도 한다. 2000년부터 근로빈곤층 자활사업이란 말죽은 밭에 빠져 근 20여년간 시민경제를 업으로 삼아온 강종우 센터장이 제주살림충전 소장이란 새로운 직함으로 '호박벌의 제주비상'을 월 2회로 늘려 가장 약한고리조차 날아오르는 경제, 불가능해 보이는 희망을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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