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알레그리아'... 태양의 서커스가 한국에 오다!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가 돌아왔다! 2018년 흥행돌풍을 일으켰던 '쿠자'에 이어 4년 만이다. 지난 20일 막 오른 ‘뉴 알레그리아’. 스페인어로 기쁨, 희망, 환희를 뜻하는 ‘알레그리아’는 지난 10여 년 동안 40개국 255개 도시에서 1000만 명 이상을 매료시킨 대표작이다.

‘뉴 알레그리아’는 몰락해가는 가상의 왕국을 배경으로 권력을 다투던 인물들이 진정한 힘은 내면에서 나온다는 깨달음을 얻는 이야기. 다양한 국적을 가진 53명의 아티스트들이 텀블링, 저글링, 훌라후프, 아크로바틱 같은 현란한 곡예로 공연 내내 관객들 눈길을 사로잡는다.

손수 만든 96벌의 의상, 그리고 캐릭터마다 다채로운 메이크업으로 예술적 완성도를 높였다. 특히 팝, 재즈 등 온갖 장르를 넘나들며 흐르는 생동감 넘치는 음악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규모 또한 웅장하다 못해 놀라울 따름이다.

잠실종합운동장에 들어선 초대형 텐트, 25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강철 기둥 4개가 지지하는 빅탑(Big Top)은 높이가 19미터 지름은 무려 50미터에 달한다.

빅탑 주변엔 상점, 분장실, 대기실, 의상실, 식당, 장비실 등 공연에 필요한 모든 시설이 들어섰다. 2500 명 이상 수용할 수 있는 이동식 가변극장, 한 마디로 ‘움직이는 마을’이나 다름없다. 셋업에만 근 한 달이나 걸렸다 한다.

캐나다에서 탄생한 태양의 서커스는 1980년대 초 퀘벡의 한 길거리 공연자가 설립한 것. 그는 곡예 중심이던 서커스에 의상, 라이브 음악과 뮤지컬, 환상적인 무대장치를 보태 기발한 상상력과 기술력으로 세계적인 공연 예술로 재탄생시켰다.

창단 후 40년 가까이 1억 8000만 명 이상에게 잊지 못할 감동과 환희의 순간을 선사했다. 세계적인 명성에 걸맞게 많은 사람들이 버킷 리스트로 손꼽아 기다릴 만큼 아낌없는 사랑을 받아왔다.

하지만 태양의 서커스도 지구촌을 강타한 코로나19를 피해갈 순 없었다. 2020년에는 파산보호까지 신청했을 정도. 이번 무대는 가까스로 회생에 성공한 태양의 서커스가 본격적으로 세계 투어에 나서는 첫 무대라 의미가 새롭다.

태양의 서커스 고유 시스템이자 '움직이는 마을'로 불리는 초대형 텐트로 극장, 구내매점, VIP 텐트, 아티스트 텐트(백스테이지 공간), 키친, 사무실, 기술장비, 창고, 각종 편의 시설 등 공연에 필요한 모든 시설을 갖추고 있다. (사진=강종우 제공)
태양의 서커스 고유 시스템이자 '움직이는 마을'로 불리는 초대형 텐트로 극장, 구내매점, VIP 텐트, 아티스트 텐트(백스테이지 공간), 키친, 사무실, 기술장비, 창고, 각종 편의 시설 등 공연에 필요한 모든 시설을 갖추고 있다. (사진=강종우 제공)

‘서커스·환경·커뮤니티’… 사회적기업‘라 토후’와 지역재생

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이야기. 태양의 서커스 탄생과 성장배경에 퀘벡 사회적경제의 남다른 노력과 지원이 숨어있다는 사실이다.

몬트리올 도심에서 한참 벗어난 생 미셸(Saint-Michel), 태양의 서커스 본사는 여기에 있다. 30여 년 전만 해도 캐나다에서 가장 빈곤하고 범죄율이 높은 변두리 마을. 본디 석회석 채석장이었던 이곳은 1980년대 22만 평에 이르는, 축구장 90여 개 크기의 엄청난 쓰레기매립지에 파묻혀 버렸다. 우리로 치면 오랜 기억 속 난지도랄까.

온갖 악취와 오염물질이 동네를 뒤덮으면서 일자리도 사라지고, 아이들은 빗나갔지만 주민들은 지역을 떠나지 못했다. 주민 40%가 저소득층으로 가난과 소외를 견디며 힘겹게 살아갈 따름이었다.

사회적기업 '라 토후' (사진=강종우 제공)
사회적기업 '라 토후' (사진=강종우 제공)

변화는 이 지역 출신 여성 무용가의 작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한다. 쓰레기 매립지를 주민을 위한 예술공간으로 만들어 보자 제안했던 것. 주민들의 연이은 시위로 대책 마련에 골머리를 앓던 몬트리올 시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우선 이 매립지를 포함해 60만 평을 사들여 친환경공원으로 꾸몄다. 지하에 파이프를 설치해 오염된 물을 오수처리장으로 보내고 메탄가스는 화력발전소의 연료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공원은 주민들이 스스로 운영하도록 마을공유자산으로 돌려줬다. 당시로선 정말 혁신적인 대안이었다.

이윽고 1998년 퀘벡의 트레이드마크 ‘태양의 서커스’가 옮겨왔고, 2004년에는 지역재생을 위한 사회적기업 ‘라 토후’가 설립됐다. 라 토후는 서커스 예술 교육·창작·생산·공연을 위한 세계 최대의 지역문화 비영리법인. 지방정부와 함께 데자르뎅 같은 사회연대금융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었다.

‘서커스, 환경, 커뮤니티’. 바로 라 토후의 핵심가치다. 생미셸을 서커스 예술도시로 만들고, 쓰레기매립지에 들어선 친환경공원과 건물을 활용한 그린 비지니스를 확장시켰다. 특히 많은 예술가들이 이곳을 작업 공간으로 삼으면서 쓰레기매립지나 다름없던 낙후지역에도 문화와 일자리가 싹텄다.

그 동안 라 토후가 만들어 낸 일자리는 무려 5000여 개. 석회석 채굴과 쓰레기 매립으로 황폐해진 이 땅이 마침내 희망의 땅으로 바뀌었다. 문화와 예술이 넘쳐나는 창의도시로, 사람과 지구를 돌보는 지속가능한 포용도시로 탈바꿈한 것. 이처럼 생 미셸의 성공적인 지역재생이야말로 퀘벡주민의 아이디어와 지방정부의 노력, 그리고 사회적경제를 비롯한 시민사회의 협동이 일궈낸 놀랄만한 결과였다.

퀘벡의 힘, 포용적 거버넌스와 ‘조용한 혁명’

캐나다 속 작은 프랑스, 퀘벡(Québec) 주. 800만에 가까운 인구 가운데 프랑스계 사람들이 80%, 공식 언어도 프랑스어다. 스페인 몬드라곤, 이탈리아 볼로냐와 함께 사회적경제 3대 모델로 주목받아 왔다.

그만큼 퀘벡의 사회적경제는 활기차다. 2016년 현재 약 7000천여 개의 조직에서 사회적경제를 통해 20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연 매출액은 20조 원 가까이, 경제 규모로도 퀘벡주 GDP의 8%를 차지한다. 주민 70%가 각종 협동조합 조합원일 정도로 사회적경제가 일상생활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

케나다 퀘벡 사회적경제 관계도
케나다 퀘벡 사회적경제 관계도

퀘벡에서 사회적경제가 본격적으로 떠오른 건 1995년부터다. 그때만 해도 캐나다의 경제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신자유주의 확산에 따른 고용 감소, 재정 적자로 한창 몸살을 앓고 있던 참이었다. 이에 대응하여 나선 것이 바로 사회적경제 민관협력기구, 샹티에(Chantier)다. 프랑스어로 ‘작업장’이라는 뜻을 가진 샹티에는 퀘벡 사회적경제를 상징하는 조직이다.

당시 실업률이 치솟기 시작하자, 주 정부는 재정위기와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을 샹티에에 요청했다. ‘퀘벡의 경제·사회 미래에 관한 연석회의(Summit on the Ecomonic and Social Future of Quebec)'는 그 일환으로 열린 것. 이 자리엔 지방정부 뿐 아니라 사회적경제조직, 민간기업,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 등 퀘벡의 정치·사회·경제 주체들이 모두 머리를 맞댔다.

그해 10월 '자, 연대로 나아가자'라는 제목의 보고서가 주 정부에 제출됐다. 연석회의는 사회적경제 정의에서부터 각종 정책과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했다. 보육과 돌봄, 주거, 환경, 문화 등에서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 설립을 적극 독려하기도 했다.

이후 10여 년 동안 보육서비스에서 2만5000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졌고,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 1만호가 새롭게 지어졌다. 협동조합을 위시한 수많은 수많은 사회적경제조직이 생겨났고, 이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의 취업도 늘었다. ‘조용한 혁명’이라 불리는 퀘벡 사회적경제의 황금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단순한 연대조직에서 출발한 샹티에는 한시적인 기구였다가, 이제는 정부 내 상설기관으로 자리를 잡았다. 사회적경제가 일자리 창출과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입증된 결과였다.

이 같은 실험은 캐나다 연방정부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2004년 폴 마틴 당시 총리 역시 사회적경제를 핵심 사회정책으로 삼겠다고 할 정도.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큰 흔들림은 없었다. 더구나 2020년 현 집권당인 보수당이 발표한 '2차 사회적경제 발전을 위한 5개년 실천계획 2020-2025'는 중도우파 정당에서 발표한 1차(2016-2020) 때보다 오히려 발전했다.

이처럼 퀘벡 사회적경제는 여러 차례의 정권교체를 겪으면서도 사회적경제와 노동운동 등 광범위한 시민사회와 정부의 파트너십을 잘 유지해오고 있다.

썅티에가 대변하듯이 공익성, 상호 존중과 배려를 바탕으로 지역사회 모든 주체들이 참여하는 포용적 거버넌스 구축이야말로 지역재생과 일자리창출 전략의 핵심이다. 시민사회와 정부 간의 정책대화(policy dialogue)를 통해 정책설계와 집행, 그리고 평가까지 공동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비공식경제에서 공식경제로... 사회적경제, 주류로 떠오르다!

팬데믹 이후 사회적경제를 주류에 편입시키려는 움직임이 돋보인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와 국제노동기구(ILO) 등은 각종 선언, 결의안, 정책 재정비를 통해 사회적경제를 다시금 주목하고 있다.

무엇보다 사회적경제가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비롯해서 2019년부터 휘몰아친 코로나19 팬데믹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그 효과가 입증됐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6월 ILO는 제110차 국제노동총회에서 사회연대경제에 대한 공식 정의를 채택했다. 자본보다 사람과 사회적 목적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원칙을 기반으로, ‘비공식 경제’에서 ‘공식 경제’로의 전환을 추구하고, 경제의 모든 부문에서 운영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사회연대경제(SSE)는 집단 또는 일반 이익에 봉사하기 위해 경제, 사회 및 환경 관련 동에 종사하는 기업, 단체 및 기타 기관을 포함한다. 이들은 자산과 잉여금, 이익의 분배 및 사용 과정에서 자본보다는 자발적 협력과 상호 원조, 민주적·참여적 거버넌스, 자율성과 독립성, 그리고 사람을 우선으로 하는 원칙에 기초한다. ...(중략) 그들은 자신의 기능과 본질적인 가치들을 실천에 옮기고, 사람과 지구를 돌보는 일, 평등과 공정성, 상호의존성, 자기관리, 투명성과 책임성, 그리고 양질의 일자리를 추구하는 것 등이 있다. 국가 상황에 따라 사회연대경제기업은 협동조합, 협회, 공제조합, 재단, 사회적 기업, 자조 단체 및 사회연대경제의 가치와 원칙에 따라 운영되는 기타 단체를 포함한다.”

 

강종우 제주살림충전소장

뉴턴의 물리학 법칙에 따르면, 호박벌은 절대로 날 수가 없다. 날개 길이가 몸무게를 지탱할 만큼 길지 못하기 때문. 그런데 호박벌은 날아다닌다. 마찬가지로 통상의 경제학 이론으로는 협동조합은 장기적으로 실패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실제로 다양한 분야에서 협동조합이 활동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협동조합을 호박벌에 비유하기도 한다. 2000년부터 근로빈곤층 자활사업이란 말죽은 밭에 빠져 근 20여년간 시민경제를 업으로 삼아온 강종우 센터장이 제주살림충전 소장이란 새로운 직함으로 '호박벌의 제주비상'을 월 2회로 늘려 가장 약한고리조차 날아오르는 경제, 불가능해 보이는 희망을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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