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통첩 게임, 협동의 유전자를 타고난 인간

사람들은 과연 이기적일까? 이타적일까? 보통 경제학에서는 인간을 이기적이라 못박는다. 진화론은 이를 뒷받침해 왔던 대표적인 도그마. 진화론하면 누구나 적자생존(適者生存), 즉 경쟁과 도태를 떠올린다. 19세기 중반 당시 자본가들은 자유경쟁과 도태를 진화의 원리로 설명한 다윈을 구세주처럼 떠받들었다. 하지만 적자생존이란 용어를 맨 처음 사용한 사람은 사회학자 허버트 스펜서다. 경쟁만 강조한 줄 알았던 다윈마저도 “꿀벌과 같이 서로 협동하는 종이 있다. 협동하는 종은 경쟁하는 종보다 우월하다”라고 인정했다.

인간이 반드시 이기적이지만은 않음을 보여주는 게임도 여럿 선보였다. 그중 하나, 이름도 재미있는 최후통첩 게임.

전개형 게임으로 최후통첩 게임을 나타낸 그림. 1번 참여자는 공평(F) 또는 불공평(U)한 제안을 할 수 있다. 2번 참여자는 수용(A)하거나 거절(R)할 수 있다. (사진&설명=위키백과)
전개형 게임으로 최후통첩 게임을 나타낸 그림. 1번 참여자는 공평(F) 또는 불공평(U)한 제안을 할 수 있다. 2번 참여자는 수용(A)하거나 거절(R)할 수 있다. (사진&설명=위키백과)

A, B 두 사람이 있고 1만원이 있다고 가정하자. A가 B에게 일정 금액을 제시하고 B가 해당 금액을 받아들이면, A는 ‘1만원-제시금액’, B는 제시금액을 갖게 된다. 반대로 B가 거절하면 두 사람 모두 돈을 갖지 못한다. 만약 인간이 이기적인 존재라면 결과는 언제나 9999:1일 터. 그런데 실제 실험결과, 사람들 대부분은 상대에게 4000~5000원을 제시했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수천 번 되풀이됐지만 결과는 엇비슷했다. 결국 인간은 완벽하게 이기적이지도, 완벽하게 이타적이지도 않다. 이런 상호성이 인간 본성에 더 가깝다는 말이다.

또 다른 흥미로운 보고. 2019년 옥스퍼드대 인지진화인류학연구소의 조사결과, 전 세계 모든 문명이 반드시 지켜왔던 7가지 가치가 발견됐다. ▲가족을 돕기 ▲소속 집단에 충성하기 ▲호의를 갚기 ▲용감하기 ▲윗사람을 따르기 ▲자원을 공평하게 나누기 ▲타인의 재산을 존중하기 등이 그것. 연구팀은 “이 7가지 가치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키워드는 협동이다”라고 단언했다. 그래서 옥스퍼드 연구팀은 협동을 인류의 도덕이라고 일컬었다. 즉 협동은 인류가 문명을 이루고 살아온 이래 반드시 지켜야 했던 불문율이었던 것.

하지만 어느 날, 자본주의가 등장하면서 이 불문율이 처참히 무너졌다. 자본주의는 속삭였다. “지금부터는 각자도생의 시대야. 서로를 돕지 마. 네 옆 사람과 경쟁해! 경쟁에서 이기려면 옆 사람의 몰락을 기뻐해!”라고 서로에게 강요해 왔다. “사회? 그딴 거는 없다. 있는 것은 개인과 가족뿐이다”라는 마가렛 대처 영국 총리 말마따나 신자유주의는 철저히 사회를 억압하고 개인만을 숭배했다.

KBS 예능 '1박2일' 화면 캡처.
KBS 예능 '1박2일' 화면 캡처.

그래서?! 오늘 우리들의 모습은 어떤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사회’가 공고한 나라였다. 한 지붕 세 가족, 전원일기 같이 따뜻한 공동체를 그리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 그러다가 세계화를 부르짖으며 온통 신자유주의로 도배되면서 우리의 삶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TV 광고에서는 “모두 부자 되세요”를 외쳤고, 그럴수록 이웃은 사라져 버렸다. 마치 1박 2일의 복불복 게임처럼 “나만 아니면 돼”를 외치며 살아오진 않았던가. 그렇다면 끝없는 경쟁, 무한정글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절망은 그 본성을 거스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협동이란 유전자를 어느새 잊어버린 채 살아오진 않았나? 한번쯤 돌아볼 일이다.

사실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 협동과 나눔의 사칙연산

같이 모여서 하는 일엔 항상 오해와 갈등이 생긴다. 서로의 입장이 다르고 가치지향도 다르기 때문이다. 둘이 동업하다 서로 좋던 사이가 깨지기 쉽고, 셋이면 둘이 하나를 따돌리고, 넷이면 패를 갈라 대립하고, 대여섯을 넘어서면 세 대결로 치닫기 일쑤다. 어찌 보면 사람 사는 동네에선 자연스런 현상이라 치부할 수도 있다.

협동, 팀, 손, 협업, 사회적경제 자료사진(사진 출처=픽사베이)
협동, 팀, 손, 협업, 사회적경제 자료사진(사진 출처=픽사베이)

그릇된 생각도 자주 눈에 띈다. 자기랑 뜻이 맞는 사람하고만 협동하자 모이는 것. 하지만 정작 그건 협동이라 말할 수 없다. 결사(Association)라 해야 맞다.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필자 같은 꼰대일수록 쉽게 빠지는 착각이다. 결사와는 달리, 협동(Cooperation)이란 처음부터 자기와 다른 사람과 함께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여러모로 다르지만 그래도 서로 같이 원하는 걸 함께 만들어가는 실천의 장(場)이다.

협동의 협(協)자는 힘력(力)자 셋이 합하는 모양, 여러 힘을 모으고 주장도 모아서 함께 한다는 의미다. 나눔이란 자신을 비우는 작업, 내 물건을 나누고 내 주장도 나누어 같이 쓰자는 취지다. 그래서 협동은 합하고 곱하는 기운을 강조한 나눔의 다른 말이며 나눔은 빼고 나누는 기운을 강조한 협동의 다른 말이다. 협동의 원리를 생각하기 때문에 여럿이 함께 힘과 지혜를 모으고 나눔의 원리를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의 힘과 지혜를 내려놓기도 한다.

설사 협동조합이라 해도 일하는 직원 사이에, 직원과 임원 사이에, 임원과 임원 사이에, 임원과 조합원 사이에, 조합원과 조합원 사이에, 조합과 지역사회 사이에 늘 오해와 갈등이 따르기 마련이다. 문제는 오해와 갈등 자체가 아니다. 오해와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나가느냐가 핵심이다. 협동과 나눔의 원칙은 피할 수 없는 오해와 갈등 앞에서 비로소 그 빛을 발한다. 그 지점에서 협동조합의 역량이 날것으로 드러난다.

협동의 힘 – 이탈리아 볼로냐를 다시 본다

올 12월이면 협동조합기본법 제정 10주년을 맞는다. 게다가 UN이 ‘세계 협동조합의 해’로 지정한 지도 벌써 10년을 넘어선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비주류에 머물러 있지만 유럽에서는 오래 전부터 협동조합이 보편적인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대표적인 곳이 이탈리아 볼로냐. 볼로냐가 속해 있는 에밀리아로마냐 주는 1950년대까지만 해도 다들 가난했다 한다. 그런데 지금은 1인당 소득이 4만 유로(약 5800만 원) 정도,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부유한 지역으로 탈바꿈했다. 이처럼 경제적으로 윤택해진 원동력은 어디에 있을까? 이 드라마틱한 변화의 동력이 다름 아닌 협동조합이다. 현재 에밀리아로마냐 주에 있는 협동조합 수는 총 8000개에 이르고, 지역총생산(GRDP)의 30%를 협동조합 경제가 차지한다.

특히 볼로냐는 이탈리아 협동조합의 수도라 불린다. 협동조합이 도시의 산업과 일상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곳이다. 볼로냐에서 협동조합은 소비자뿐 아니라 농업, 건설, 노동, 서비스 등 전 분야에 걸쳐 있다. 시민 60% 정도가 한 곳 이상의 협동조합에 가입돼 있다. 협동을 통한 생활방식에 익숙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인 셈이다.

볼로냐 시민들은 "시장에 간다" 라기 보다는 "쿱(cooperativa·협동조합)에 간다"고 말하길 즐겨한다. 체인형 대형마트가 주변에 있어도 지역상품을 구입하기 위해 협동조합 마트를 이용한다. 자신들의 지역제품을, 자신이 조합원으로 가입한 마트에서 산다. 왜 협동조합 상품을 많이 살까. 이유는 간단하다. 값싼 가격과 좋은 품질, 집과의 거리, 매일 만나는 동네 사람들과의 교류 등등. 협동조합은 단지 상품을 구매하는 곳만이 아니다. 시민들이 서로 소통하고 생활을 나누며 추억을 쌓는 장소이기도 하다.

또한 볼로냐의 협동조합들은 혼자보다는 함께하는 법에 익숙하다. 협동조합 간 협동도 잘 이뤄진다. 시정부와 지역 협동조합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돌봄사업연합 ‘카라박’프로젝트가 좋은 사례. 교육과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협동조합인 카디아이뿐만 아니라 급식노동자협동조합 '캄스트', 건축노동자협동조합 '치페아' 등 3곳이 컨소시엄으로 보육시설을 운영한다. 시설비용은 협동조합이 공동으로 부담하고 운영비는 지방정부에서 지원받는 방식. 볼로냐에선 라치코냐 등 11개 어린이집이 이렇게 운영된다.

이탈리아 최대 협동조합연합체 ‘레가코프’도 마찬가지다. 협동조합의 협동조합인 레가코프엔 이탈리아 전역에서 1500개 이상의 협동조합이 가입했고 2만 5000명의 직원과 40여만 명의 조합원이 소속돼 있다. 개개 협동조합은 수익의 3%를 협동조합개발기금으로 낸다. 모은 돈으로는 새로운 협동조합을 결성하거나 소규모 협동조합의 성장을 돕는다. 실제 한 건설기업이 부도나자 직원들이 레가코프의 지원을 받아 협동조합기업으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결국 생산자 사이의 협동,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의 협동,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의 협동으로 모두가 더불어 잘 사는 지역경제 선순환이 일어나는 것. 하나의 협동조합은 비록 작고 연약하지만 개개의 협동조합들이 연대함으로써 세계경제위기 같은 큰 파고도 능히 견딜 수 있었다. ‘작지만(small), 지역(local)에서, 개방(open)적으로, 연결된(connected)’협동의 힘. 에지오 만자니 교수의 지적처럼, 어쩌면 변방의 섬 제주가 찾아나가야 할 길은 바로 이것, 협동의 힘이 아닐까.

다시 커뮤니티...더 풀뿌리에 다가서자!

생뚱맞은 상상 하나. 아무 일 하지 않아도 돈이 ‘넝쿨’째 들어오는 부자들과는 다르게, 뼈 빠지게 일해 봐야 서민들이 고작 손안에 쥘 수 있는 건 가난하고 고달픈 일상일 뿐. 침몰하는 삶을 되살릴 수 있는 대안이 정말 없을까. 그건 아마 서로 돕고 보듬는 ‘넝쿨’같은 풀뿌리가 아닐까. 큰 나무가 되려면 가는 뿌리라도 내려야 한다. 여기저기 뿌리내리는 고된 과정을 거쳐야만 언젠가는 숲을 이룰 수 있는 것. 온 마음과 온힘을 쏟아 부어야 한다. 마을마다, 동네마다 ‘풀뿌리’ 협동조합 그물망을 담쟁이처럼 엮어 나가자. 공동체(Community)를 기반으로 지역살림경제를 뿌리내려 보자. 마치 ‘인드라망’처럼

새삼 ‘담쟁이’가 그리운 날이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 도종환-

 

강종우 제주살림충전소장

뉴턴의 물리학 법칙에 따르면, 호박벌은 절대로 날 수가 없다. 날개 길이가 몸무게를 지탱할 만큼 길지 못하기 때문. 그런데 호박벌은 날아다닌다. 마찬가지로 통상의 경제학 이론으로는 협동조합은 장기적으로 실패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실제로 다양한 분야에서 협동조합이 활동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협동조합을 호박벌에 비유하기도 한다. 2000년부터 근로빈곤층 자활사업이란 말죽은 밭에 빠져 근 20여년간 시민경제를 업으로 삼아온 강종우 센터장이 제주살림충전 소장이란 새로운 직함으로 '호박벌의 제주비상'을 월 2회로 늘려 가장 약한고리조차 날아오르는 경제, 불가능해 보이는 희망을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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