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수씨가 운행하는 교통약자이동지원센터의 장애인특별운송차량@제주투데이
제주교통약자이동지원센터 특별교통수단. (사진=제주투데이)

누구나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인 ‘이동권’. 이는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 병원 등 건강관리 측면에선 생존권의 의미와 연결된다. 학교와 학원 등 교육권과 문화향유를 위한 접근성과도 이어져 있다. 이처럼 이동권은 시민들의 지역사회 참여의 기본 조건이다.

하지만 휠체어를 타는 장애 당사자들에게 ‘이동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개인 소유 차량이 없는 제주도내 휠체어 이용자 장애인들이 원하는 곳으로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는 선택지는 사실상 단 하나뿐이다.

바로 제주교통약자이동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특별교통수단(장애인 콜택시)이다.

복권기금으로 운영되는 장애인 콜택시는 제주도가 설치, 위탁 운영 중이다. 뇌전증·안면장애·청각장애를 제외한 보행상 장애 정도가 심한 사람, 보행장애로 휠체어를 이용하는 65세 이상 어르신 등은 센터에 회원등록을 한다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이용료도 저렴하다. 10km내 500원, 기준 거리 초과시 최대 1000원이다. 

실제로 제주장애인인권포럼이 2019년 300명의 장애 당사자에게 월 평균 장애인콜택시 이용 횟수를 조사한 결과, 5회 이하가 106명(35.3%), 월6회-10회 52명(17.4%), 월11회-15회 46명(15.3%), 월 16회 이상(32%), 거의 매일 사용(20.3%)로 나타났다. 

비록 3년전 자료이지만 취재진이 만난 장애 당사자들의 이야기까지 고려하면 많은 장애인들이 교통약자차량을 매우 중요한 이동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하지만 여러 장애인은 이 제도에 대해 곳곳에서 불만을 터트린다. 특히 차량배차 대기시간이 너무 길다고 입을 모은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 당사자 현모(40대)씨는 “장애인 콜택시는 예측하기 어려운 교통수단”이라면서 “일반택시처럼 호출 직후 5~10분 안에 온 건 아직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다. 1시간 가량 대기하다 탑승을 포기하고, 지인에게 부탁해 이동한 적도 많다”고 말했다.

또다른 장애 당사자 이모(28)씨도 역시 “차량배차를 신청하고, 수십분 동안 기다리는 일은 일상”이라면서 “언제 배차될지 알 수 없으니 약속시간을 제대로 정하는 것은 사치”라고 토로했다.

일부는 차량대기 시간만 알 수 있어도 다른 불편함은 감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박현수(42)씨는 “요즘에는 앱을 이용해서 부르는 일반택시는 ‘몇분 뒤 도착’한다고 표시되고, 버스도 도착시간을 알려주지 않는가”라면서 “예상시간만 알게 돼도 삶의 질이 올라갈 것 같다. 차량을 대기하느라 버린 시간이 너무 많다”고 토로했다.

게다가 읍·면지역에는 대기차량이 많지 않기에 해당 지역 거주자는 더 오랜시간을 기다릴 수 밖에 없다. 게다가 휠체어 탑승자는 특별교통수단만 이용할 수 있기에 늘 부족하게 느껴진다. 

제주도내 교통약자이동지원센터 특별교통수단 차량에 휠체어 이용자가 운전기사의 도움을 받아 탑승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제주도내 교통약자이동지원센터 특별교통수단 차량에 휠체어 이용자가 운전기사의 도움을 받아 탑승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공급 ... 차량 1대에 223명꼴

장애인콜택시 대기시간 지연 문제는 해를 거듭할 수록 심화되고 있다.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특별교통수단의 운행 대수는 장애정도가 심한 장애인 150명당 1대다. 제주도내 특별교통수단과 임차택시는 2017년 각각 40대·10대, 2018년 41대·35대, 2019년 56대·39대, 2020년 66대·39대, 올해 66대·43대로 조사됐다.

제주도는 조만간 법정대수를 맞추기 위해 특별교통수단 2대를 증차할 계획이다. 이처럼 차량은 해마다 조금씩 늘고 있다.

그러나 상황은 크게 달라진게 없다. 이용객도 꾸준히 늘고 있기 때문이다. 

특별교통수단과 임차택시의 연도별 이용건수는 2017년 각각 12만7000여건·2만3000여건(총 15만여건), 2018년 14만4000여건·10만3000여건(24만8000여건), 2019년 15만8000여건·11만여건(26만8000여건), 2020년 16만3000여건·11만여건(27만3000여건)으로 조사됐다. 

지난해는 17만여건·12만3000여건(29만3000여건)으로 조사돼 연 이용객 30만건을 코앞에 두고 있다.

지난해 이용 현황을 기준으로 한다면 차량 종류를 막론하고 1대당 연간 약 2600건을 소화해야 하는 실정이다. 비록 통계에 따른 계산이지만 한 달에 223명이 차량 1대를 이용한다는 계산까지 나온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애매모호한 탑승기준도 긴 대기시간에 영향을 준다는 의견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도내 특별차량 운전기사 A씨는 “출퇴근 시간에는 어쩔 수 없이 배차가 늦은 탓도 있다. 몇 년 전부터 탑승기준이 바뀌어 65세 노약자도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이용자 수가 대폭 늘었다. 차량은 한정돼 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대기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휠체어 이용자는 특별교통수단 말고는 선택지가 없다. 장애인이지만 휠체어 이용자가 아닌 사람은 임차택시를 이용하는데, 그들도 특별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가 있기 때문에 여유차량이 없으면 특별교통수단으로 배차가 된다. 대기시간이 길어지는 데에는 이러한 이유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귀포시 대정동에서 제주시로 건너가는 손님을 기다리는 박철수씨의 차량. 이런 장거리는 운전원들이 대체로 기피한다고 박씨는 말했다.@제주투데이
제주교통약자이동지원센터 특별교통수단. (사진=제주투데이)

#. 바우처 택시 장애인 이동권에 큰 역할 할까

하지만 교통약자이동지원센터 측은 대기시간을 예측할 수 있는 시스템을 지금 당장 도입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제주교통약자이동지원센터 관계자는 “대기인원은 대기자가 요청하면 알려줄 수 있지만 시간은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에 알려줄 수 없다”면서 “차량 이용자가 일 평균 1만1000여건인 상황에서 지금 시스템으로는 사실상 불가능”이라고 전했다.

센터 관계자는 이어 차량 대기시간 예측 시스템 도입에 대한 질문에 대해 “민원 건수가 하루 평균 1000~1100건인데, 한두명 대기시간 관련 민원은 넣는다고 해서 시스템 전체를 바꿀 수 없지 않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통계에 따르면 성산.표선 등 권역지역은 30분 이상 대기시간이 소요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시내권은 오래 걸리는 경우가 드물다. 현재 대기목표 시간을 26분에서 35분으로 설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주도는 이와 관련, 차량 대기시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바우처택시 사업을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평소 일반인 대상으로 영업하던 일반택시가 비휠체어 교통약자의 이용요청이 들어올 때 함께 하는 서비스다.

장애인 등 교통약자는 책정된 특별교통수단 요금만 지불하고, 차액요금은 보전해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현재 임차택시 43대는 운영을 마치고, 오는 6월부터 바우처 택시 150대로 전환한다는 구상이다.

제주도 교통정책과 관계자는 “기존 임차택시는 임대료 등으로 예산이 많이 소진됐다. 바우처 택시를 도입하면 예산 절감은 물론, 차량 수도 대폭 늘어 대기시간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비장애인의 일반택시 대기시간에 비해서 35분은 여전히 긴 시간이다. 통계 상 시간과 직접 체감하는 시간은 다르다. 증차는 한계가 분명하다. 단순히 차량을 늘린다고 해서 근본적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 "다른 이동수단 체계 마련하고, 일반택시 접근성 높여야"

이 같은 문제에 장애인콜택시의 확충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다른 이동수단의 접근성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장애인 콜택시의 문제들은 다른 이동수단이 마땅치 않은 점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김도현 노들장애학 궁리소 연구활동가는 이날 제주투데이와의 통화에서 “ 차량을 늘리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지만 사실상 지자체 입장에서는 인건비 및 유지비 등 운행비를 고려해야 한다”면서 “운행비 중 70%는 국비 지원을 받는 방식으로 지역의 넓이를 고려해서 차량대수를 늘리는 조정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냈다.

그는 그러면서도 ”하지만 장애인콜택시에 대한 문제는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라면서 ”제주에서는 저상버스 도입률이 전국 평균인 약 36%인데, 배차간격까지 길어지면 대기시간이 길어진다. 버스가 언제 올지를 가늠할 수 없으니 차라리 장콜을 이용해야 효율적인 상황이 대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김 활동가는 이어 "저상버스 운전기사도 장애인 이용객이 흔치 않으니 대비가 되어있지 않은 경우도 같은 맥락"이라면서 "저상버스 도입률을 올리면 장애인들의 교통수단 선택지의 폭이 넓어질 것이고, 장애인콜택시 쏠림 문제는 일부 해소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지원센터 차량에만 집중하지 말고, '유니버설 디자인'을 도입한 범용택시의 접근성도 높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대중교통에 대한 기본설계가 어긋난 상황에서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주장이다.

고현수 더불어민주당 제주도의원은 “제주는 애초 대중교통 체계자체가 교통약자에 대한 고민 없이 짜여져 있기 때문에 예산을 들여 특별운송수단을 운영한다고 해도 장애인 이동권을 증진하는 데엔 한계가 있다”면서 “비용과 정책적 측면에서는 대중교통을 완벽히 설계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고 의원은 “그래서 장애여부에 구애받지 않고 이용가능한 '범용 모빌리티'가 필요하다. 기본설계가 어긋난 상황에서 문제를 수월하게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서 “지원센터 차량에만 매달리면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해외에는 이 같은 사례가 많다. 장애 등 일체의 차별 없이 모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유니버설 디자인’이 적용된 일본의 UD 택시, 대만의 유니캡, 영국의 블랙 캡 등이 대표적이다. 휠체어가 들어가는 뉴욕의 일반택시 옐로우캡 역시 장애인 등록 없이도 아무나 길가에서 택시를 잡아 탈 수 있다.

택시에 슬로프가 달려있어 휠체어 탑승자가 택시를 이용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올라탈 수 있는 구조다. 누군가에게 부탁해 트렁크에 휠체어를 싣고 부축받지 않아도 혼자 탑승할 수 있는 것이다.

고 의원은 “이용수요 증가에 따른 대기시간 지연 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UD 택시를 도입하는 등 수요를 분산한다면 어느 정도 나아질 것”이라며 “민간에서 추진하기 어려우니 행정이 민간과 함께 공동 출자기관을 만드는 방법도 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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