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잔혹사-1]금모래해변은 어쩌다 '시한부' 해수욕장이 됐을까
“말도 안 돼요. 캠핑하기도 좋고 가끔씩 찾아오고 있는데, 왜 이런 해변을 없애버려요?”
화순 금모래해변에서 휴식을 취하는 한 도민에게 금모래해수욕장을 이용할 수 없게 될 텐데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묻자 돌아온 답이다. 대부분의 도민은 이처럼 화순항 건설 사업으로 인해 금모래해변이 지도에서 사라질 날이 머지않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화순리에 거주하는 주민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해변에서 만난 20대 마을 청년은 금모래해변이 사라지게 될 텐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해수욕장이 사라져요? 왜요?”라고 되물었다. 마을의 미래에 대해 주민들이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금모래해변과 황우치해변. 제주도민은 화순항 건설로 인해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모래해변 두 곳을 잃게 됐다. 해양수산부와 제주도는 화순항 건설 사업에 대해서 제대로 공론화 한 적이 없다. 정부와 제주도는 단계적으로 화순항 건설 사업을 추진해 왔다. 그때마다 그 부분적인 내용만 밝힐 뿐이었다. 금모래해변의 완전 매립은 먼 미래의 일로 치부했다. 그 미래가 이제 코앞으로 다가왔다.
화순항은 건설용 골재, 유류, 비료 등을 나르는 물류항이다. 화순항 기본계획(2021~2030)은 화순항을 원자재 중심항으로 설정하고 이 같은 기능을 활성화하기 위해 금모래해변을 매립할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매립 이후, 항만시설을 설치하게 된다. 물류 이동시설, 저장 시설 및 항만 관리 시설이 들어서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금모래해변 매립에 앞서 해양수산부와 제주도는 화순항 내 해경부두 옆에 국가어업지도선 부두(관공선 부두)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관공선 부두가 들어서면 금모래해변은 부두에 완전히 갇혀버린다. 해변 50m~60m 앞에서 선박들이 오가게 되며, 수심 유지를 위해 수중 모래를 준설해야 한다.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수질과 경관이 망가진다. 금모래해변은 자연스럽게 해수욕장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관공선 부두 건설 이후, 금모래해변 매립은 사실상 외길이다. 현실적으로 금모래해변의 해수욕장 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하지만 제주도 해운항만과는 여전히 지역 주민과 도민을 기만하고 있다. 이상권 해운항만과장은 7월 13일 제주도의회 환경도시위원회 회의에 출석해 금모래해변에 대한 질의에 “4차 항만기본계획 수정계획을 수립할 때 육지부와 접하는 부분은 친수 지역으로 조성해 공원 조성하고 해수욕장은 존치하는 방안으로 추진하면 될 것 같다"고 답했다.
해수욕장을 망가뜨리는 부두를 해변 바로 앞에 건설하면서 "해수욕장은 존치하는 방안으로 추진하면 될 것 같다"고? 지나치게 무책임하며 항만 관련 전문성까지 의심되는 발언이다. 이상권 과장은 "금모래해변을 보존하기 위해서라도 사업을 진행하면서 현장 모니터링을 지속 실시해 나가겠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관공선 부두 건설과 금모래해변의 보존은 양립하기 어렵다.
용머리해안에 콘크리트 방파제...1969년 박정희 정권의 화순항 기본계획조사 보고서
제주 서부지역 해수욕장 중 빼어난 경관으로 이름이 높던 금모래해변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화순항 건설 계획으로 두 곳의 모래해변(금모래해변과 황우치해변)을 잃게 된 이 상황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화순항 건설계획은 박정희 정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9년 박정희 정권의 화순항 기본계획조사 보고서는 4개의 화순항 건설 플랜(도면)을 제시했다. 4개의 플랜 모두 금모래해변을 매립토록 했다.
심지어 보고서 상 플랜1은 용머리해안에서부터 방파제를 축조해 해군기지 등을 조성하는 계획까지 담고 있다. 용머리해안을 단순히 자연적인 방파제로 본 것이다. 다행히 용머리해안에 콘크리트를 들이붓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연 환경의 가치보다 개발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던 반세기 전의 기조는 현재까지 이어지며 자연환경 훼손을 야기하고 있다. 원형을 유지하게 된 용머리해안 역시 화순항 건설 사업이 야기하는 환경 오염에 취약한 것은 마찬가지다.(관련 기사☞[단독] 용머리해안 조간대 오염...원인은 황우치해변 백사장 조성공사?)
플랜1에 따라 용머리해안에 콘크리트를 들이부었다면 2010년에 지정된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포함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방파제가 연결되지 않았을 뿐 용머리해안과 그 일대는 화순항 건설로 인한 환경 오염과 훼손에 시달리고 있다. 용머리해안에 접한 황우치해변은 모래가 쓸려나가 지반이 드러났고, 사구가 빠르게 침식됐다. 화순항 건설로 인해 빼어난 주변 경관이 망가졌다.
실제 용머리해안과 산방산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에 서면 코앞의 수중방파제와 화순항이라는 거대한 토목 건설 현장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세계지질공원 명소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지경이다. 황우치해안의 사구 침식은 현재도 진행중이지만 대책이 없다. 200억원에 가까운 예산을 들여 용머리해안 인접 바다에 설치한 수중방파제는 모래 유실과 사구 침식을 막는 데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
제주도는 황우치해변 모래사장 복원공사를 하면서 레미콘 차량 3600대 분량인 22만㎥의 모래를 황우치해변에 쏟아부었다. 그러나 그 많은 모래는 사업종료 2달 만에 바다로 쓸려나갔다. 쓸려나온 모래는 수중 생태계를 훼손했다. 마을 어장은 황폐화됐다. 제주도는 어민에 대한 금전적 피해 보상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그뿐이다. 제주도가 사구 유실 방지를 위해 하고 있는 일은 모래 유실을 막는답시고 막을 덮어두는 것이 전부다. 그마저도 흉물스럽게 방치하고 있다. 몇 년을 더 이런 상태로 두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제주도가 세계지질공원 명소라고 자랑하는 용머리해안 코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