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천년 제주는 남녘 끝 변방으로 “가고 싶어도 못가고, 가지 말자고 해도 안 되는 곳이 제주 섬”(충암 김정의 말)이었고, ‘변방에 우짖는 새’(현기영의 소설)에서 지적 되었듯이 바람 타는 ‘변방’이었다. 중앙의 변방으로써 쫓기는 자의 막다른 골목이요, 권력에 밀리는 자의 유배지였다.
공화국 수립 이후에도 그 역량이 국가 전체의 1%에 불과한 변방으로써 푸대접을 받아왔다. 푸대접이란 것은 이해관계를 놓고 다툴 때 역량이 강대한 다른 지역에 밀리기 십상이라는 이야기다. ‘하고자 해도 안 되고 하지말자고 해도 안 되는 제주 섬’이란 처지에 있다. 중심 권력의 관심에서 소외되기 때문이다.
이제 어떠해야 1%라는 힘의 열세를 극복하고 선진지역 섬이 될 것인가. 그 비결은 다른 지역이 갖지 못한, 그래서 우리와 경쟁할 수 없는 그런 자원을 발굴하고 그것을 살려 나가는 것이다.
여기에 2000년대 들어서면서 등장하는 태마, ‘평화의 섬’과 ‘자연환경’의 가치는 큰 의미를 갖는다. 특히 ‘세계7대자연경관’으로서의 제주의 가치는 제주 천년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 중심 가치라고 생각한다.
다른 지역과 경쟁되는 어떤 테마도 제주 섬의 미래를 보장해 주지 못한다. 다른 지역이 경합하는 한 그렇다. 특별자치도 이후 제주국제자유도시는 우리 제주의 비전이지만 다른 경쟁적인 지역(예컨대 인천 경제자유지역)이 등장하면서 퇴색되고, 혁신도시도 다른 지역 혁신도시와 경쟁하면서 밀리고 있다. 객관적인 조건 때문이 아니라 중앙 권력에 닿는 선이 약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선거를 통해 권력에 접근하는 정치 시스템에서 지역의 크기와 인구수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현재 대의민주정치의 논리이다. 정치놀음이다.
제주해군기지 건설의 경우 그것은 ‘평화의 섬’으로서의 제주의 이미지를 크게 훼손하고 제주 고유의 환경 가치를 파괴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도의회를 중심으로 한 지방정부와 시민사회의 열화와 같은 요구에도 불구하고 정부(해군) 당국은 요지부동이다. 역시 힘의 논리이다. 그래서 ‘제주 홀대론’이 제기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제주의 미래는 어떻게 설계해야 할 것인가. 길게 보자.
제주가 확보한 ‘유네스코자연환경 3관왕’에 다가 ‘세계 7대 자연경관’.
이 자연자원과 관련된 태마는 우리 공화국 어디에서도 견줄 수 없는 우리의 경쟁 자산이다. 세계자연경관 선정 7대 기준이 되는 항목이 섬, 화산, 해변, 국립공원(경관), 동굴, 폭포, 숲이었다. 이들 항목이 제주인들의 삶 그 자체와 어우러져 그 특유의 생활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이 조건을 두루 갖춘 지역으로 제주만 한 곳이 공화국 어디에 있겠는가.
이것이 우리의 경쟁력 자원이요, 희망의 잠재력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독특한 가치를 지키고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제주 천년을 설계하는 것이 옳다. 탐라 천년은 고립된 ‘독립’ 천년이었고 육지 부속도서로서의 천년은 ‘변방’으로서 ‘우짖는’ 천년이었다면 앞으로 천년은 세계 속의 열린 번영의 섬, ‘중심’으로서의 천년일 수 있다. 우리가 이 시점 21세기 초에 잘 설계하기만 하면 되리라.
그러기에 우리는 ‘세계 7대 자연경관’의 가치를 살려 제주 자연자원의 보전을 우리 제주 섬의 미래를 위한 최고의 자산으로 삼아야할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제주비전을 정립하고 미래를 디자인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 ‘세계 환경수도’의 구상은 매우 값진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세계 환경수도’. (이에 대한 논의는 지면의 제약으로 생략하는 터이지만)
이는 제주의 미래를 보장하는 제일의 태마라고 생각한다. ‘유네스코 자연환경분야 삼관왕’이나 ‘세계7대자연경관’의 반열에 오른 것은 그 출발점의 초석이 된다. 21세기를 ‘환경의 세기’라고 한다. 그만큼 오늘날 환경은 전 인류적 관심사이고 우수한 환경적 조건을 갖춘 지역이 중심으로 부상하게 된다. 그래서 ‘환경수도’는 앞으로 세계인이 찾아오는 시대의 중심이 된다.
지난 천년의 중심은 권력이 모이는 곳, 자본이 모이는 곳이었고 그 중심에서 소외된 제주는 ‘우짖는 변방’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 제주가 환경수도로 거듭난다면 ‘수도’(首都)라는 말 그대로 시대와 국가를 ‘선도하는 중심’이 되는 것이다. 이 어찌 감격스럽지 아니한가. 내년에 개최되는 제5차 WCC(세계자연보전총회)는 ‘환경올림픽’이라고도 하거니와 ‘환경수도’ 제주의 입지를 확고히 다지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노력들이 모이면 다가오는 제주 천년의 번영을 기약하는 길이 되지 않겠는가. 마부작침(磨斧作針)의 자세로 가자.<신행철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이 칼럼은 제주불교신문에도 같이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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